추위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에겐 피하고 싶은 계절. 그렇지만 또 그 나름의 멋스러움과 장점이 있기 마련.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과메기다.
청어나 꽁치를 반건조한 발효식품이라지. 동쪽 해안, 특히 포항 구룡포에서 주로 나는지 대부분 그쪽의 상표를 달고 나온다.
어머님께서 애들을 키워주시느라 같이 사는 동안엔 겨울이 시작되는 이맘때에 꼭 과메기 야채세트를 주문해서 먹곤 했다.
"처음에 너희랑 과메기 먹었을 때는 이게 무슨 맛인가 싶더라. 비리고 냄새나고."
그런 어머님께서는 시간이 흘러 고향으로 가신 후에는 오히려 해마다 첫 과메기를 꼭꼭 챙겨주시곤 한다.
음력 생신으로 매년 생신 날짜가 조금씩 바뀌는데, 12월 중순에서 1월 사이 생신이 있어 찾아뵙는 날이면 어김없이 과메기를 준비해 놓으셨다. 올해도 역시!
과메기만으로는 그다지 매력 있지 않다. 비려서 몇 조각 집어먹지도 못할 터. 다디단 겨울 알배추와 생김, 미역, 초장, 생마늘, 쪽파 등등. 한 쌈 싸서 씹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그 다양한 맛과 향이 하모니를 이루는 탓에 비리다 느끼는 맛이 담백하고 고소함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어머님은 시장에 직접 가셔서 생미역으로 사 오는지라 그 향과 맛이 더욱 도드라진다. 보기엔 거무죽죽하고 정리안 되어 마치 미친 X가 머리를 풀어헤친 모양새지만
바다에서 나는 건 웬만하면 잘 먹는 나에겐 그런 것쯤 괜찮다. 그 맛만 참 좋다.
(그 미역을 뜨거운 물에 한번 데치면 그 초록초록의 미역이 된다고 하셨다)
"혼자서는 많아서 엄두가 안 나는데, 너희들 온다니까 준비하지. 덕분에 나도 먹고 얼마나 좋아."
다 차려둔 음식 앞에서 매번 젓가락만 드는 며느리의 다소 민망한 마음을 헤아리시는 듯 부러 '덕분'이라고 표현해 주시는 어머님, 그런 어머님 덕분에 잊고 있다가도 매년 겨울을 맞는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겨울 하면 과메기가 떠오르고, 과메기는 어머님을 기억하게 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과메기를 처음 먹은 건 신입사원 때다,
평소 말이 거의 없으시나 묵묵히 곧잘 챙겨주시곤 한(츤데레라고나 할까) 선배님께서 나를 비롯한 남자 신입사원을 데리고 서울 종로의 허름한 한 가게로 갔다.
"과메기 먹을 줄 알아?"
나는 먹어본 적 없어서 그 맛을 알지 못했지만, 선배님의 호의 앞에 못 먹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해 따라나섰던 참이다.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건, 나와 함께 간 동료도 실은 과메기를 먹어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푸릇한 알배추 위에 생김과 미역을 올리고 과메기 한 점, 쪽파와 미나리, 생마늘을 넣고 초장으로 마무리.
처음 씹혔을 때의 비릿함을 아직 기억한다.
어머님께서 '그걸 무슨 맛으로 먹나' 했던 그 의미를 그래서 너무나도 공감했다.
그러나 이내 입 안 가득 퍼지는 비릿함이 오히려 달큼하니 맛있었다. 내 손은 쌈을 싸느라 바빴고, 턱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나와는 달리 역시나 그날 처음 과메기를 접했던 동료는 한 점 먹은 후로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말았다. 그리고 2차로 근처 국밥집을 갔던가. 여튼 처음 만난 과메기는 정말 맛있었고, 그 맛을 이제 해마다 어머님과 같이 할 수 있음에 좋다!
내가 다닌 회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휴가를 반납하고 농촌 오지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활동을 했었다. 그걸 취재해서 사보에 소개해야 하는 게 내 역할.
당시 포토그래퍼였던 여자 실장님은 먹성도 좋고, 붙임성이 좋아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사진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딸 수 있었다.
강원도 정선이던가. 봉사활동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포토그래퍼 실장과 나는 강릉에 들러가기로 했다.
"한여름이고 여기까지 왔는데 바닷가 한 번은 가야죠!"
그렇게 난생처음 강릉에 갔고,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갔던 곳은 경포대였던 듯하다. (미래의 시댁이 될 줄 몰랐지^^)
빵빵하게 공기가 찬 튜브를 빌려 바다 위에서 동동 한 후 포토그래퍼가 말했다.
"강릉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게 있어요."
처음 먹어본 도루묵 찜이었다. 신기하게도 포도알처럼 올망졸망 빽빽하게 뭉친 알들이 선명하게 보였고,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폭죽 터지듯 툭툭 터졌다.
재미있는 식감이다 했는데... 그게 도루묵이라는 생선이란다.
20년 전쯤 처음 먹었던 도루묵은 이제 시댁이 강릉이고, 매년 찬바람 부는 때면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어머님 덕분에 좋아하는 메뉴가 되었다.
어머님이나 신랑 말로는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강릉에선 도루묵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했다. 그만큼 흔해서 어부들은 해변가에 내던지기도 했다고. 갈매기들이 먹었을 그 생선을 외지인인 우리는 신난다고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었을 테다.
기후 변화 탓인지 생태계 변화 탓인지 그 흔했던 도루묵은 이제는 꽤나 비싼 생선이 되어 대접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