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위

<내 마음 아는 사람만 두로와>

by 땅꼼땅꼼


대략 8년 만에 중국어 말하기 시험인 TSC시험을 치렀다.

OJT를 포함해 1시간 남짓의 시험 시간 동안, 역시나 버벅대다 나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하! 그건 이렇게 대답했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 한 덩어리.

그날 자려고 누워서도 내내 이불킥 해댔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이번엔 문제가 다 들렸다는 것,

뒷부분에 한자로 표기된 지문을 읽을 줄 알았고, 그래서 짐작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어는... 계속해야만 는다.


20년도 더 된 그땐(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때였다) 중국어가 그냥 좋아 어찌어찌하다 보니 채팅 친구들을 알게 되고, 상해에 사는 중국인, 말레이시아 자매, 일본인을 '중국어'라는 공통점으로 알게 되었다.


2년 남짓 채팅만 하던 우리는 어느 날 "상해 푸동공항에 모이자!"라고 누군가 제안했고, 그렇게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내 중국어 실력이 한참 뒤처졌기에 여행 기간 내내 버벅대고 할 말을 다 못 했지만 그때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했다.

(이를 들은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뭘 믿고 상해로 갔느냐고 했다. 프로필이 여자였어도 남자일 수도 있고 그러다 장기라도 떼가면 어쩌려고 했었느냐며... ㅋㅋㅋㅋ 그런 생각을 1도 안 해본 나는 뒤늦게야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이게 다 범죄영화를 많이 본 탓이다 ㅠㅠ)


그 모임을 꾸준히 이어갔어야 하는데 여행 후에 오히려 연락이 끊어졌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말레이시아 자매는 배낭여행을 하면서 도착지에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생활하곤 했는데, 그들이 아시아에 머물 땐 연락이 되더니 유럽으로 옮겨가며 그 모임의 알람이 점자 뜸해지다가 아예 끊어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중국어에 대한 흥미를 잃고 결혼과 육아 등을 하며 띄엄띄엄 간단한 중국어 회화 하는 정도로 쑥 떨어졌다.


흥미를 잃었지만 늘 중국어를 솰라솰라 잘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수업받기를 시작한 것.

이제 다시 꾸준히 해야지.




일본어와 영어(이미지 출처 : Pixabay)


"엄마. 사람들은 이상하지?

영어를 잘하면 '천재'라고 하면서 일본어를 잘하면 '오타쿠'라고 해."


TSC시험을 본 날 밥을 먹으며 시험 후기를 말했더니 이어지는 큰애의 탄식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하도 많이 봐서 일본어 회화를 곧잘 하는 큰애는, 친구들 사이에 '오타쿠'로 통하는 모양이다. 이 때문에 사춘기를 겪었던 초5 시절에는 의기소침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친구들이 못하는 일본어를 학교 친구들 중 가장 잘한다는 자부심, 그리고 친구들과 좀 다르다는 차별점을 느끼는 눈치다.


영어 숙제 중인 큰 애


영어도 일본어처럼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착착 귀에 들리고, 그러다 말문이 트이고 하면 딱 좋을 텐데, 그건 또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만큼 영어 애니를 많이 본 것도 아니고)


언어에 대해 순위를 매긴다는 느낌은 나도 많이 겪어봤다.

중국어를 한창 배우던 때 HSK 시험도 보고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나는 영어 토익이나 토플 등급이 없다는 이유로 매번 부서에서 어학 등급 '깎아먹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진급 시기가 되면 또 영어 공부를 해야 했고, 중국어는 자연스레 뒷전이 되었다.


그나마 지금은 영어든, 중국어든 말하기 시험으로 변해 조금 더 수월해졌지만, 직장인이 되어서도 학생 때보다 더 많이 해야 했던 영어 문법 공부를 생각하면..

sticker sticker



언어에 대한 순위는 여전히, 쉽게 변하지는 않는 듯하다.

애들이 흥미로워하는 일본어에 대해, 그러한 분위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영어 #일본어 #중국어 #TSC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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