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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Jun 27. 2023

독일 시골마을 산책길

기억하기 위해 쓰는 글

   내게 무척 중요한 것이 둘 있다. 산책과 낮잠. (술과 안주 아닙니다. 저를 그런 사람으로 보시면 정답이긴 한데 아무튼 아닙니다.) 매일 낮잠을 자는 건 아니지만, 잠깐 눈 붙이고 싶을 때 그대로 다른 세계로 갔다 올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여간해선 포기하기 어려운 것이다. 글 쓰고 강의하며 그렇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산책도 다른 세계에 갔다 오는 일이다. 독일 시골에 살고 있는 내게는 특히 그렇다. 고맙게도 문 열고 몇 발자국 나가면 바로 초록이다. 현관문을 밀고 나섰을 때, 서늘하게 기분 좋은 그 맑고 상쾌한 공기가 와르르 밀려들면 오늘 분량의 에너지를 채우는 느낌이다. 공기는 신기하게도 매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나는 칸트 같은 사람이 아니므로 마음 내킬 때 집을 나선다.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틀림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같은 길을 새벽에 만나고 낮에 거닐고 저녁에 음미하는 것은, 마치 익숙한 사람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듯 설레는 일이다.


   어둠이 기분 좋은 담요처럼 깔릴 무렵에 나가면, 세상의 모든 색이 다 담긴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의 무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아빠랑 놀겠다고 고무공처럼 통통 튀면,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시 밖으로 나오곤 했다. 빠르게 돌아가던 모든 것이 태엽을 더 이상 감지 않고 느슨해지는 시간. 그런 시간의 세상 구경은 질리지 않는다. 하루치 익은 세상이 얼마나 변했나 살피며 걷는 동안 하늘에는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훈색이 깔린다. 그동안 좋아하는 색을 묻는 질문에 소녀 시절 갈색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팔레트 하나를 다 돌았는데, 요즘 제일 좋아하는 색은 훈색이다. 저물녘에 세상만사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색. 인격이 있다면 아마도 가장 다정할 것 같은 색.   

질리지도 않고 찍어대는 노을 사진

   저녁 산책은 세상이 나에게 이제 쉬라며 담요를 덮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아침 산책은 세상이 밤새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계 안으로 내가 풍덩 뛰어드는 느낌이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새벽 산책이다. 아무도 헤집지 않은 촉촉하고 싱그러운 공기 속으로 가만히 헤엄쳐 들어가는 느낌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낼 때의 조심스러운 만족감과 닮았다. 이슬을 가득 머금은 세상은 짜면 주르륵 물이 흘러내릴 것 같다. 버석거리는 내 삶에도 잠시나마 물기가 돈다.

이슬과 안개 장착하고 수분감 폭발하는 우리 동네

   보통은 작은 강을 끼고 밭이 넓게 펼쳐진 길을 걷는데, 해가 일찍 뜨는 여름이면 그늘져 시원한 숲길을 걷기도 한다. 집에서 나와 첫 번째 모퉁이를 돌면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황홀하게 지저귀는 작은 숲길이 나온다. 보호구역 팻말이 붙은 숲이라, 길 바깥쪽 어두운 덤불 속에서는 가끔 심상치 않은 소리도 들린다. 씨앗과 열매가 그대로 보이는 귀엽고 작은 배설물들을 간혹 보며 걷는다. 잎사귀 사이로 빛조각이 들어와 발치에서 찰랑거린다. 이따금씩 조그만 날벌레들이 내게서 나는 인간의 냄새가 신기한 듯 근처로 와서 한참을 호기심 있게 머물다 간다. 시원하고 달콤한 공기를 얼굴 가득 느끼며 걷는 기분이란.


   숲길은 공기가 달고 밭길은 풍경이 달다. 5월 말이 되면 밀싹이 푸르게 돋아나 싱그런 열매를 맺는다. 밑밭이 바람에 보드랍게 흩날리는 풍경은 내가 늦봄에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가끔 사슴이 밀밭 속을 강종강종 뛰어다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초여름이다. 이맘때의 밀밭은 같이 보고 싶은 색을 낸다. 내가 아는 세상의 연두색 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의 연두. 금빛과 흰빛이 스며 보송한 느낌으로 찰랑거리는 작은 연둣빛 바다. 사진으로는 색감이 잘 안 잡힌다. 이 색감을 제일 잘 잡아낸 것은 아마도 고흐의 그림이 아닐까. 예전엔 그림을 보면서 밭에 어쩜 저런 색을 썼을까 하고 감탄했는데, 독일에 와서 살아보니 밀밭은 원래 그런 색이었다. 사진으로는 풍경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고, 화가만이 자연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아아 이 색이 아닌데 더 예쁜데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밭이 빵처럼 익는다.

보드라운 연두는 먼저 청록으로 변한다. 그토록 예쁠 수가 없는 그 말간 청록색은 하루하루 햇빛을 머금고 노랗게 익어간다. 처음에는 계란과자 색깔처럼 뽀얀 노란색이다가, 매일 누군가 노란 물감을 한 방울씩 더 넣은 듯 노란색이 짙어진다. 그러다 어느샌가 황토색이 슬금슬금 들어와 섞인다.


   갈색은 익어가는 색이다. 햇볕 아래 내 아이들이 익어가듯 밀도 비슷한 색을 내며 익어간다. 작년엔가, 며칠 동안 아침에 비가 쏟아져 아침 산책을 거르고 오랜만에 나가보니 밀밭이 완전히 구수한 빵 빛깔로 익어있던 적이 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나도 저 구수한 빛깔의 빵을 구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던 색. 그 밀을 베어낸 자리는 우리 농촌에서 가을걷이하고 난 들녘처럼 정겨운 노란빛이 남는다.

조금씩 익어가는 밀밭. 왠지 맥주 한 잔 생각나는 풍경입니다.

   독일의 밭은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간다. 유채가 비워준 자리에는 흰꽃을 오종종 매단 콩이 심기고 아기 옥수수들이 발돋움한다. 루타바가라고 부르는 신기한 녀석들이 (무와 양배추와 감자가 섞인 맛이다) 땅 속에서 몸을 토실토실 불리기도 한다. 내가 다니던 산책길에는 체리가 열리는 작은 과수원도, 아스파라거스가 쑥 솟아오르는 도톰한 밭두렁도 있었다. 공터에 민들레가 번져 노란 점들을 하나씩 찍다가 커다란 노란 연못을 이루는 것을 보기도 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곱게 빗어놓은 듯, 다음에 올 생명들을 기다리면서 기계로 곱게 갈아둔 기름진 밭을 보는 것도 좋았다. 저기엔 누가 오려나.   


   유채가 눈동자를 노랗게 물들일 만큼 자랐다가 자리를 비워준 곳에는 요즘 아기 옥수수들이 늠름하게 자라고 있다. 어린것들은 왜 이리 귀여울까. 밭마다 초록의 색감이 다르다. 싹이 나 자라기 시작한 어린 옥수수는 쨍한 연초록이고 밀밭은 흰 물감을 조금 섞은 듯한 연청록이다. 그 옥수수가 좀 더 자라면 푸릇푸릇한, 그야말로 이게 녹색이다 싶은 녹색을 띤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자라면 옥수수는 여기저기 붉은 털실로 몸을 치장하고 머리 위에는 노르스름한 홑이불을 한 겹 덮는다. 억새 같은 들풀이 펼쳐진 땅은 옅은 갈색이나 보라가 사뿐히 내려앉은 연두색이다. 그 모든 색감의 녹색들이 어우러진 밭은 예쁜 조각보 같다.  

세상에, 아기 옥수수가 일주일만에 자란 것 좀 보세요

   초여름은 들판에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산책을 하면서 선물을 받아갈 수 있는 시간. 바이에른 전통 복장인 Dirndl(디언들이라고 발음한다)을 입을 때 여자아이들은 머리에 화관을 쓰곤 하는데, 그렇게 작은 화관을 머리에 쓴 소녀들이 가끔 보인다. 손잡고 느긋이 산책하는 노부부 손에도 종종 작은 꽃다발이 들리는 걸 볼 수 있는 계절.

 무리지어 깨끗하게 핀 은방울꽃도 예쁘고 쇠라의 점묘화처럼 어우러져 핀 꽃들도 예뻐 죽겠고

    새벽에 나오면, 꽃들도 아직 아침 단장 전이라 수줍게 봉오리를 오므린 것들이 있다. 꽃잎을 날개처럼 뒤로 접었다가 이슬을 툭툭 털고 공작새처럼 쓰윽 펴는 아이들도 있고, 솜씨 좋은 집 만두처럼 끝을 오므려 작은 회오리 모양으로 틀었다가 살금살금 여는 아이들도 있다. 호수 쪽으로 나가는 길에는 꽃잎을 옆구리에 붙이고 차렷-하는 듯하던 꼬마 데이지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작은 해님 모양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조그만 몸짓이 무척 귀엽다.

접었다가 폈다가 (저쪽에 1시 방향으로 아직 꽃잎 접고 늦잠자는 친구 보이시나요?)
바닥에 붙어 낮게 피는 애기메꽃은 아침마다 별이 되었다가 낮에는 둥근 접시가 됩니다

    내 허리만 한 높이로 서서 바람 불면 파도소리를 들려주는 억새풀들은 (이해를 돕기 위해 억새과라고 썼지만 실은 벼과라고 한다. 수크령, 김의털 같은 귀여운 이름들을 갖고 있다.) 작은 동물들을 비밀처럼 품고 있다. 특히 느지막한 오후에 산책하면 연신 길섶에서 화들짝 놀라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밭두렁에 엄지와 검지를 맞닿아 만들 수 있는 크기의 작은 구멍들이 보인다. 대체 어떤 아이들인지 너무 궁금해서 그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걸어가도 녀석들이 빠른 건지 내 눈이 시원찮은 건지, 연신 소리는 들리는데 보이는 건 없다. 옮기는 발걸음마다 옆에서 정말 어찌나 부산스러운지. 그렇게 놀라게 하는 게 미안해서 며칠간 아침에 나왔더니 다들 새근새근 잠들었는지 조용했다. 그렇게 발치가 조용하니 왠지 웃음이 났다. 너희들 다 자고 있구나.


    그러다 하루는 대낮에 먼발치에서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그 구멍의 주인일 법한 녀석을 만났다. 들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탄성이 나올 만큼 너무 귀여운 아기 족제비였다. 예쁜 연갈색 등에 하얀 배를 가진 아이가 긴 꼬리를 땅과 평행으로 살짝 세우고 뽀르르 지나갔다. 이맘때는 토끼도 많고 사슴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토끼는 생각보다 건장해 (음?) 보이고, 사슴이 경쾌하게 들판을 가로질러 뛰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최근에는 산책을 하는데 옆에서 뭐가 아작아작 하길래 쳐다봤더니, 비버가 무밭에서 무청을 신나게 잡숫고 계셨다. 코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느긋하게 한참을 아작거리더니, 입안 가득 줄기를 물고 뒤뚱거리며 길을 건너 작은 강으로 퐁당 들어갔다. 배가 엄청나게 부풀어 있었는데 아기를 가진 것 같았다.

좌) 어쩜 저렇게 동그랗게 뚫어 놨을까. 콘센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화 한 편이 저기 들었다. / 우) 비버님 순산하세요

    저녁 무렵에 나오면 동물들을 많이 만난다. 어제는 베어낸 풀밭 위를 후다닥 질주하는 갈색 토끼와, 화려한 색을 자랑하며 밀밭 위를 낮게 날아가는 장끼를 보았다. 까마귀는 101 마리의 까마귀를 찍어도 될 만큼 늘 많다. 은빛 구름이 하늘을 꽉 채운 어느 흐린 날에는 새들이 스파이럴 하는 피겨 선수처럼 날개를 쫙 펴고 하늘 은반 위에서 활강하는 모습도 보았다. 강에는 사이가 좋아 보이는 오리 부부도 있고, 작은 호수에는 백조들도 떠다닌다.

식사 중에는 저렇게 허공에 다리를 휘저으며 개그감을 선보인다

    동네 산책길에는 동식물만 가득한 게 아니라 향기도 가득하다. 쌓여있는 나뭇가지와 흙에서는 간밤에 마신 위스키 향이 풍겨오고 (음?), 갓 벤 풀냄새도 달콤한 유채꽃 향기도 계절 따라 황홀하다. 말간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자전거를 타고 스쳐가는 청년에게서는 비누향이 훅 풍겨온다.


   5월 초가 되어 해가 강해지면서부터는 풀이 햇볕에 익는 달콤한 냄새가 살짝 난다. 저녁 무렵에 나가면 물 내음이 진해지고, 열기가 식으면서 식물들이 내뿜는 달콤한 청량감이 생겨난다. 물론 물 냄새가 비릿하게 풍겨오는 날도 있고, 거름 냄새가 피어오르는 날도 있다. 한여름에 너무 익은 딸기를 따서 버려둔 밭고랑을 지날 땐 엄마가 집에서 뭉근하게 졸이던 딸기잼 냄새가 났다.


    며칠 전에는 길을 걷다 깜짝 놀랄 만큼 조그맣고 키가 작은 개양귀비 꽃을 발견했다.

크기 비교

   그 작은 것을 보면서 작고도 온전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빛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거칠 것 없이 태양의 입맞춤을 듬뿍 받는 식물들은 ‘번성’이라는 단어가 이미지로 구현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꽃 자체의 색감은 세탁기에 여러 번 돌린 듯 다소 바래 있다. 지쳐 보이는 꽃잎에서 스포트라이트 속 사람들을 떠올리곤 한다. 반면 그늘에서 피워 올린 꽃은 조금 작고 가늘어도 그 안에 생의 모든 에너지를 응축한 듯 놀라운 색감을 보여준다. 꽃 안에 그렇게 사람들의 삶이 보일 때가 있다.

색감 비교

   길 위에서 어떤 날에는 고흐를 만났고, 어떤 날에는 모네를 만났다.

   길을 걷다 보면 작은 것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만 큰 것은 그 자리에 박혀 있는 것을 본다. 감탄할 만큼 큰 나무들이 많다. 넌 이 자리가 맘에 드니. 세상 만물이 그렇듯 너도 세상에 던져져 눈 뜨니 이곳이었겠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까. 너도 그리워하는 게 있니.


   나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작은 것이라, 곧 거처를 옮긴다. 쓸 원고는 산더미지만 지난 6년간 나를 다정히 안아준 이 산책길이 그리울 때 꺼내볼 수 있는 글을 써두고 싶었다. 사진을 잔뜩 넣어서.


   매일 만나도 질리지 않는 풍경, 못난 마음이 위로받는 풍경이었다. 매일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수치와 욕망을 바람에 말리고, 정직하게 커가는 것들을 보며 반성하는 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심정이 되었을 때, 마음속에 찰랑거리는 것을 질질 흘리며 이 길에 들어서면 이 아름다운 길은 자비로웠다. 말없이 안아주고, 그곳에 버리고 싶은 것들을 쏟아두고 가는 걸 허락해 주었다. 길 위에서는 무슨 생각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의 눈덩이를 굴리다 버려두고 오면 기분이 나아졌다. 어떤 날은 외로워하고 어떤 날은 즐거워하고 어떤 날은 그저 감탄하며 걸었다. 어떤 기분으로 나갔든 돌아올 무렵엔 마음이 비슷한 모양으로 다듬어져있곤 했다.


   산책은 흩을 산(散)에 꾀 책(策)을 쓴다. 예전부터 산책은 우리를 죄고 있던 생각들을 흩는 일이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조이고 풀으며 걸었다. 카드를 흩었다 다시 섞는 셔플(schuffle)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렇게 밀밭 위에 내가 가진 패들을 늘어놓고 한숨을 쉬기도 했고, 넓게 펼쳐진 하늘에다 생각의 카드들을 흩어두고 한 장씩 골라 단정한 순서로 만드는 일도 즐겼다.   

    이사 가면 또 새로운 산책길을 친구로 삼겠지만 이 길이 종종 그리울 것 같다. 옆동네니까, 정 그리우면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보러 와야지. 원래도 집을 나오면 보통 한 시간쯤 걸었으니 다음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되겠다.


   이 길 위에 내 책이 다섯 권이나 들어 있다.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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