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민 Sep 04. 2020

공모전 당선과 녹음

(feat. 이렇게 쓰면 떨어집니다)

공모전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건가.

사람이 작정하고 쓰면 안 되고, 별 기대 없이 한 번 그냥 내볼까 싶으면 되나 보다.

욕심이 없으면 마음 따라 글도 툭툭 부담을 털고 가벼워져서 그런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공모전이 몇 차례 있었다.
사실 나는 공모전이란 세 글자를 보면 도전 의식보다는 수줍게 내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간형인데, 브런치에는 왠지 살짝 끼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을 주는 공모전들이 종종 있었다.  

님들 저도 좀...

어차피 매주 한 편씩 쓰는 글, 어디 나도 이 주제로 써볼까. 주제가 마음에 들어 글감이 바로 떠올랐고, 그렇게 사심을 앞뒤로 차곡차곡 발라 구워 낸, 제법 공들인 글들은 각각 소고기 미역국과 홍합 미역국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반면에 머뭇거리다가 막판에 그래도 내보기는 할까 싶어서 별 기대 없이 후루룩, 국수 말듯 만들어 낸 것들은 희한하게도 용케 간택을 받았다. 그 하나가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이었고, 두 번째가 이번 나는 작가다 공모전이었다.


솔직히 작년에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하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완전히 안 했다면 거짓말이고, 굉장히 귀여운 정도로만 기대했다.)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아 뭐 나까지 되겠나 싶었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뛰어다니던 어린이 시절부터 글쓰기에는 좀 자신이 있었는데, 이거 있지도 않은 명함을 어디다 내밀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무림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았다.

약간 이런 느낌이었어요...

올해는 처음이니 좀 지켜보면서 배우고 다음 해에나 한 번 도전할까 하는 생각으로 몇 달 흘려보내다가, 그래도 이 기회에 그간 쓴 걸 정리해서 책을 만드는 경험을 하자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만든 게 <철학하는 엄마>였다. 진짜 큰 기대가 없었기에 참 기뻤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글 자체로는 뛰어난 분들이 훨씬 많은데, 글이 아니라 책 기획을 뽑는 거라 눈에 들었다고. 공부한 분야가 비인기 전공이라 상대적으로 좀 희소성이 있지 않았을까.


이번 <나는 작가다> 두 번째 공모전은 ‘실패와 두려움’이라는 경험이 주제로 내걸렸다. 정말 읽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낸 놀라운 얘기를 들려주시는 분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닥치고 있자고 생각했다. 이런 진중한 주제로 괜히 까불지 말자.


그러다가 결국 막판에 까불었다.
사람들이 모두 어디론가 우르르 달려가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저도 같이 가요.


브런치북 수상도 했으면 다른 분들께 더 널리 기회를 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 처음엔 그런 오만한 생각도 솔직히 했었다. 그런데 그건 그야말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일단 그들은 나를 뽑아 줄 생각이 전혀 없다. (대체 네가 뭔데)

그리고 나는 내 글로 생계유지가 가능한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다. 운이 좋아 한 번 기회를 얻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 도태될지 모르는 생초보일뿐이다. 그러므로 공모전이라는 이름을 두고 나는 아직 점잔 피울 입장이 못 된다. 그러므로 여건이 되고 마음이 간다면, 꼴값 떨지 말고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응해보자 마음먹었다.


원래는 쓸 글이 있으면 시간을 오래 두고 쓰고 고치는 편인데, 이 글은 마감을 앞두고 주말 오전에 가볍게 툭 뱉어냈다. 인간 존재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그런 경험이라든가 감동과는 거리가 먼, 그냥 가볍고 유쾌한 실패기였다. 그래서 정말 기대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당선 메일을 받고서 아 오늘이 발표였구나 하는 당황 반, ‘아 진짜 저를요?’ 하는 고마움 반의 마음으로 메일을 읽었다. (브런치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라는 제목의 메일은 언제 봐도 반갑다.)


밀크 PD님이란 분이 계시다. 실로 마음이 우윳빛깔일 것 같은.

공모전 개최 글에 달린 각종 질문이며 댓글에 친절하게 하나하나 따뜻한 답글을 정성스레 달아주시는 걸 보고 이 분은 인류 5대 성인(聖人)인가 싶었던 그 밀크 PD님께서, EBS에 녹음을 하러 오라고 하신다.

그러나 여기는 줄무늬(Germany). 게다가 코로나 이 망나니 자식이 여기저기서 개지랄을 떨며 돌아다니고 있다.


갈 여건이 못 되니 나는 그냥 건너뛰는 게 아닐까, 내 글은 아마 방송되기는 힘들겠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있었다.

(실은 나 대신 지인을 보낼까 싶어서 혼자 아바타 이상형 월드컵하고 있었음)


그런데 그냥 내 목소리로 녹음해서 보내라고 하시는 거다. 읭. 진짜요. 


아이들이 24시간 붙어있던 시기라 낮에는 녹음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자다 깨서 새벽 세 시에 물 한 잔 여자답게 쭉 들이켜고 시베리안 허스키 목소리로 녹음했다.

실은 피디님께서 내가 녹음본을 주면 피드백을 주시겠다고 하셔서, 이건 그냥 가녹음이구나 생각하고 자유롭게 고개도 이쪽저쪽 스트레칭하며 읽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고개가 움직이면 소리 방향이 달라지더군요. 해외에 계신 관계로 집에서 녹음하실 분은 참고 바랍니다. 그리고 저처럼 그냥 냅다 책상에 폰 놓고 녹음하지 마시고, 폰 사면 따라오는 마이크 달린 이어폰이라도 꼭 사용해서 녹음하세요.)


그런데 재녹음 안 하고 그냥 쓰시겠단다. 읭. 진짜요.


아 뭐 새벽에 일어나 잠긴 목소리로 다시 떠들기 딱 귀찮은데 잘 됐다 싶어 냉큼 콜을 외쳤지만, 방송분을 들어보니 소리가 엄청나게 울리는 데다 첫 단어 ‘마흔’부터 목이 갈라져서 감미로운 삑사리로 시작한다.
소개부터 듣기 어려울 정도로 오그라든다. 귀에는 감는 기능이 없어 망정이지 귀를 질끈 감을 뻔했다.


맨 정신에 들으니 괴롭다.

팟캐스트 녹음본 들으면서 든 생각. 내가 왜 저 지랄이지.


어쨌든 이렇게 팟캐스트 데뷔.


http://www.podbbang.com/ch/1772869



#흑역사로남을것같은강렬한삘이온다

#그래도고맙습니다




참고로 소고기 미역국, 홍합 미역국이 되어 제게 돌아온 글들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쓰면 떨어집니다. 
(사심의 무게만큼 글도 더럽게 길어졌네요. 분량부터 정신을 차립시다.)

소고기 미역국. (2020 <우리가(家)한식> 공모전)

https://brunch.co.kr/@jinmin111/94


홍합 미역국. (EBS 나도 작가다 1차 공모전: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https://brunch.co.kr/@jinmin111/91



잡글 쓰는 김에 광고도 하나 하고 갈게요.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e-book이 나왔습니다!!!!! 요를레히!!!!!
우선은 리디북스 단독으로 진행하고요, 이후에 다른 온라인 전자책 사이트에도 책을 업로드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굽신굽신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출간 이후 + 강연 소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