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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Oct 29. 2020

코로나 시대, 독일의 학교와 유치원은 이런 모습입니다

코로나 속 독일은 한국과 뭐가 다를까 (feat. 뭣이 중헐까)

[코로나 시대, 지금 우리 아이의 학교, 유치원은 어떤가요?]

지금 이 순간,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 대해 '기록'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2020년의 아이들은 각 국가별로 어떤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까요?
해외 특파원들이 각 국가에서 아이를 키우며 직접 경험한 유치원, 학교 교육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의 방법론적 논의를 넘어 아이들 간 경험의 격차를 줄이고 교사의 권리,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각 국가에서는 어떤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소개할 해외 특파원들의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들어가며


이번 시리즈는 각국 해외 특파원들이 지금 우리 아이의 학교, 유치원에 대해 르포 형식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내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그대로 담기로요. 이미 홍콩, 프랑스, 폴란드, 미국 등지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남겨 주셨는데요. 보통 주제가 정해지면 뽀로로 달려들어 글을 써재끼는 평소와는 달리, 이번에 저는 당황의 시간을 길게 가졌습니다. 왜냐고요. 쓸 게 별로 없었거든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뒤태)


지난 글 코로나 시대의 독일은 어떻게 아이들을 어루만질까 이후로 독일에서는 오히려 제한적 조치가 상당히 풀려 있는 상황이었어요. 유치원의 경우 부모가 유치원 건물 안에 들어갈 때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 빼고는 거의 예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지난달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의 경우는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할 뿐 다른 나라에 비하면 쓸 게 너무 없었거든요. 사실은 쓸 게 별로 없다는 그 자체가 독일의 특성이 아닐까 싶어 그렇게 글을 쓰고 있었는데, 최근 유럽에서 2차 유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독일에도 확진자 수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쓸데없는 방식으로 글감을 새로 주다니...

차례로 2020년 4월 3일, 9월 14일, 10월 26일의 상황 (출처: Berliner Morgenpost Coronavirus Monitor)

1) 가장 왼쪽 사진은 지난봄(4월), 유럽 각지에 휴교령이 내리고 독일 내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던 시기의 모습입니다. 그때는 특히 독일 아래쪽에 위치한 이탈리아가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죠. 자료는 확진자만 다루고 있지만 그때는 초기라 대응이 어려워 사망자가 많았으니까요.  

2) 중간 사진은 저희들이 이 르포 시리즈를 쓰기로 결정했던 지난달 중순(9월)의 모습입니다. 동그라미 크기가 많이 줄고 귀여워졌죠. 독일은 전역에서 확진자 수도 그리 많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시기였어요. 독일인들이 글쎄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옥토버페스트도 취소했단 말입니다. 대신 왼쪽에 보이는 프랑스 풍선이 심상치 않게 부풀고 있었죠.

3) 가장 우측은 이번 주(10월 말) 사진입니다. 가족오락관 폭탄 옮기기 게임이 연상되듯 영국, 프랑스, 벨기에, 체코 모두 풍선이 터질 듯 빵빵해졌고, 그 사이에 낀 독일의 동그라미도 엄청나게 커졌죠. 확진자 수를 나타내는 좌측의 그래프로 봤을 때는 지난봄 막대기 높이의 두 배가 이미 넘어간 모습입니다. 꽥.


그래서 현재 저희 동네에서는 3단계가 발동 중입니다. 새로운 확진자 수가 7일간 50명이 넘어가는 지역이면 3단계가 시행돼요. 저희 동네는 작은 시골마을이라 별 탈은 없는데 관할 지역인 다하우에 확진자가 많아졌거든요. 하지만 지난 봄보다 숫자상으로는 훨씬 심각한 데도 전면적인 락다운을 하지 않고 지자체들의 결정에 따라 유치원이며 학교, 한글학교도 일단은 조심조심 굴러가고 있는데요. 그간 대처 방법을 연구하며 맷집을 키워 온 경험, 그리고 닫아 걸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을 껴안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궁리해야 한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아래 왼쪽 사진은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로비에 붙어있는 코로나 신호등(현재 빨간불, 3단계)이고요. 오른쪽은 저희가 1단계일 때에 3단계까지 시행될 수 있는 조치들을 유치원과 학교 측에서 사전에 미리 고지해 준 통신문입니다.

좌: 코로나 신호등, 현재 3단계 빨간 불 / 우: 단계별로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시행되는 조치들

통신문을 들여다보면 강도가 세진만큼 의무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독일의 대응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좀 있어요. 아마 그 부분이 독일의 두드러진 특성이겠지요. 저는 이 부분을 “뭣이 중헌디” 정신으로 잠정 결론지었습니다.


도표 속 사항을 보자면 3단계에서 선생님과 스태프들은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6세까지의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룹을 소규모로 재조정하는 것은 고려하되, 친구들과 교사-학생 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그룹 내에서의 거리두기 규정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전처럼 짝꿍과 옆자리에 앉고 선생님과도 친밀하게 어울립니다. 손 씻기와 손 소독, 환기 등은 의무 사항이지만 매일매일 책걸상이나 교실을 소독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고요.

방역에 좀 더 철저하고 엄격한 시선을 가진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갸우뚱한 부분이 많죠. 하지만 지난봄부터 독일의 대처를 바라보고 있는 저로서는 이들이 어떤 기준을 갖고 이런 규칙을 만들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아요. 본가에 일이 있어 지난달 급히 한국에 귀국해서 자가격리 면제자로 2주 머물렀던 경험이 그 대비를 좀 더 뚜렷하게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풀어보도록 하죠.


한국 방역과 독일 방역, 무엇이 다를까


한국과 독일은 양국 공히 방역에 있어 모범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입니다. 최근 한겨레 기사로 이런 것도 보이더군요. 두 나라 모두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리스트를 보니 신뢰도가 떨어지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만 -_-

그런데  제가 느끼는 한국의 방역과 독일의 방역에는 이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 제거하기 vs 힘을 비축하며 지켜내기


한국은 이 몹쓸 것을 빨리 치워버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느낌입니다.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척척, 엄청난 노력과 자원을 들여 업무를 수행하는 느낌이었어요.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인천 국제공항에 상주하는 수많은 (다크서클의) 인력들을 보고 감탄과 동시에 참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아유,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고생하셔서 어쩌나. 공항에서 승객들 검사하고 대기시키고 밖으로 내보내는 긴 과정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대기하는 동안 주시는 맛있는 샌드위치며(기내식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샌드위치는 이렇게 좀 만들어라 독일인들아!) 쓰고 폐기하라고 주시는 물품들이 고맙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코로나 이 망할 것 때문에 세금을 이렇게 많이 써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성 판정을 받은 뒤에도 거주지를 신고하고 셀프 체크 앱을 까는 등의 다양한 절차를 통과한 후에야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나와서도 세심한 관리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자가격리 면제자였기에 늘 앱으로 상황을 보고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한 번 꼭꼭 이상이 없는지 다시 체크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문자도 엄청나게 오고, 온 공무원 사회가 힘들게 애써주시는 느낌이었달까요.


반면에 독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믿기 어려운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한국이 코로나 위험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2주 자가격리도 없었고, 코로나 테스트를 받지 않아도, 아무런 앱을 깔지 않아도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죠. 한국인이라면 식겁할 시스템입니다. 저도 자유로운 건 좋은데 많이 불안했어요. 집에 가서 아이들도 만나야 하는데 저를 이렇게 그냥 두실 건가요, 이런 느낌. 외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코로나 테스트를 실시해 주는 간이 진료소가 있었는데(그것도 공항 밖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 테스트를 받고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한 4-5일쯤 걸려서 이메일로 받을 수 있었고요. 인천공항에서는 우주복 같은 옷을 입은 분들이 코에 깊숙이 넣어서 한 번(아아아아아악 눈물 찍), 목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검체를 채취했는데 독일에서는 마스크 쓰고 가운을 단출하게 입으신 분께서 목에서만 한 번 꾹 눌러 채취했기에 눈물 없이 미소를 유지하며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테스트를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한참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1분 정도 기다려서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제가 당황했네요.


이 일련의 과정들을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독일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는 베토벤의 높은음자리표처럼 일을 대충대충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슈베르트의 높은음자리표가 몹시 귀엽습니다. 라벨과 브람스는 사랑꾼이군요.

저렇게 대충대충 해서 무슨 전염병을 막겠다고...

그런데 왜 나름대로 잘 막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거지?

저는 이게 참 신기했어요. 독일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필요한 조치들을 하며 살지만, 그렇게까지 전력을 다해 아등바등 애쓰는 느낌은 받지 못합니다. 주말에 확진자 수가 급감하는 이유는 병원과 보건 인력이 주말에는 쉬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아니 이런 비상시국에 이것 저것 다 따져가면서 어떻게 전염병을 막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런 힘 빼기의 기술이 독일의 특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 굉장히 민감한 느낌입니다. 수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느낌. 그런데 독일은 ‘비율 중점을 둔달까요. 절대적으로 모두 없애겠다는 느낌보다는 최소한  정도 비율로  관리하자, 이런 느낌을 저는 받습니다. 이모저모를 따져서 자기들 생각에 필요한 만큼의 조치를 취하고, 나머지 힘은 빼고 비축하는 느낌. 예를 들어 제가 자유롭게 공항 밖으로 나올  있었던 것은 한국이 코로나 위험국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죠. 하나하나 따지고 살펴서 물샐  없이 관리하면  안전하겠지만,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을 검사하고 관리하는  인력과 자원을 쏟아붓는 일에는 그다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같아요. 한국 공항에서 수많은 분들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며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서 느꼈던 미안하고 불편한 감정은 독일 공항에서는 거의 들지 않았고, 불안하기는 해도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마음 편했습니다. 실제로 인천공항 검역 창구에서 자리를  비우시려던 분들이 다시 앉으시면서 “새로 비행기가 내려서 당장 식사는  어렵겠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교대할게요.”라고 말씀하시는  들었거든요.


그래도 전염병 앞에 비율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생각이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분명 계실 텐데요. 저도 처음엔 이해가 안 가고 좀 답답했죠.

독일에서도 지난봄에 우왕좌왕, 이 낯선 전염병의 방문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바이러스가 암만 무서운 속도로 퍼져도 주말에는 코로나 검사도, 병원도 쉰다는 점이었어요. 우리나라 같으면 24시간 돌려서 빠르게 파악하고 빠르게 차단할 텐데, 아니 사람 목숨보다 주말이 중요한가, 왜 이렇게 느려 터졌나 싶은 마음이 솔직히 안 들 수 없었지요. 그런데 저만 마음이 급하고 독일 사람들은 그런대로 참을만한 모양이더라고요. 거기다 “이 시기의 보건 인력들이 우리의 영웅인 것은 맞지만 영웅의 칭호를 쓰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오자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그들도 영웅이기 이전에 어린아이의 엄마이고 노모의 아들이고 한 집안의 가장들일 수 있으니까요. 영웅이라는 찬사로 책임감을 계속 보태버리면 영웅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인류를 구해야 할 테니까요. 치명률이 높지 않은 바이러스로 장기전을 벌여야 하는 거라면, 영웅들을 자꾸 양산하지 않는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때 비로소 들었습니다.


앞서 <최선을 다해 제거하기 vs 힘을 비축하며 지켜내기>라는 표현을 했는데요. 물론 우리나라도 제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소중한 목숨과 일상을 지켜내기’ 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없애기에 초점을 두느냐, 지키기에 초점을 두느냐는 실제로는 좀 다르게 와 닿는 것 같아요. <인력을 갈아 넣은 물 샐 틈 없는 누수 관리(한국) vs 조금 누수는 발생하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에 집중(독일)>이라고 하면 좀 더 와 닿을까요. 빈틈없는 제거에는 아무래도 힘이 더 드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좀 더 획일적으로 대상을 압박하는 모양새기도 하고요. 우리로서는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 양쪽을 경험해 보니 생각이 좀 많아지더군요. 우리나라에서의 경험은 착륙 직전의 기내방송(꼼짝 마!)부터 시작해서, 유럽인들로서는 확실히 억압적이라고 느껴질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것이 불필요하다거나 혹은 잘못되었다거나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한 가지 문제를 대하는 두 가지의 다른 (그것도 효율적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치명률이 높지 않은 장기전이라면 우리도 힘을 좀 빼고 삶을 좀 돌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요.


이제는 이런 독일인들의 생각이 아이들의 유치원과 학교 생활에 어떤 식으로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 시대, 독일의 학교와 유치원은 이런 모습입니다


10월 26일 자 슈피겔 지에 따르면 독일 교육 당국은 코로나 팬데믹 속의 학교와 유치원에 대해 이런 세 가지 기본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1. 학교와 유치원, 데이케어 센터나 방과 후 돌봄을 제공하는 곳들이 가능한 오래 열릴 수 있도록 한다. (즉, 락다운에 있어서 가장 최후로 고려하겠다는 입장)    
2.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같은 공간에서 수업하는 방식을 최우선(top priority)으로 고려한다.   
3. 학생들은 코로나 팬데믹의 전파자가 아니며, 수업을 받을 권리의 당사자다. (이건 정치적 선언이 아니고요. 각종 연구 결과를 통해 이 방향으로 뜻이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든 독일에서든 아이들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요. 한국인인 저로서는 보호라고 하면 당연히 ‘아이들을 코로나의 감염으로부터 보호(물리적인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독일에서는 물리적 보호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수업권 보호(권리의 보호)’에 굉장히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모습이 어떤지,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곳의 얘기를 좀 들려 드릴게요.


1) 초등학교 


앞서 3단계가 시행되었지만 그룹을 소규모로 줄이되, 그룹 내의 거리두기 규정은 없다고 말씀드렸죠. 또 손 씻기와 손 소독, 환기 등은 의무 사항이지만 매일매일의 교실 소독은 의무가 아니라고요. 저는 이 조치들 안에 앞서 말씀드린 내용, 즉 조금 누수가 발생하더라도 힘을 비축하면서 지켜야 할 가치를 생각하는 독일의 자세가 그대로 엿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룹의 규모를 줄여서 전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그래도 지켜야 할 가치들(친구들과의 자유로운 어울림, 선생님과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고민한 흔적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제거를 최우선으로 둔다면 당연히 아이들은 뚝뚝 떨어져 앉아야 하고 밥이나 간식도 함께 먹을 수 없고, 선생님과도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금 누수의 위험은 있더라도 일단은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그 소중한 가치를 살리고 싶었던 거겠죠. 저희 첫째는 11월부터 20명이었던 반을 열 명씩 둘로 나누어 격일로 돌아가며 학교를 나가게 되었어요. 독일 교육 당국은 일단은 이렇게 규모의 축소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학교의 가치를 지키려는 것 같습니다. 또 쉽게 할 수 있는 손 소독과 환기는 의무사항으로 두고, 많은 인력(이라고 하지만 보통은 선생님 개인이나 청소를 맡으시는 분께 어마어마한 부담이 가겠죠)이 요구되는 매일매일 책걸상 및 교구, 장난감 소독하기는 의무사항으로 두지 않았다는 점 역시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걸로 보여요. 너무 힘들게 사람을 갈아 넣는 일은 적절한 선에서 부담을 줄여주는.   


그리고 두둥, 10월 21일 자로 뮌헨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의 (독일에서는 한국 학제로 4학년까지가 초등학생입니다) 마스크 착용 의무는 해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니 확진자가 고층 건물 올라가듯 올라가고 있는 이 시기에 이 무슨 아름다운 조치냐 싶었는데요. 학부모들은 환영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좀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좌: 뮌헨지역 초등학생들의 수업 중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를 알리는 뮌헨 시청 / 우: 쥐드도이치자이퉁의 관련 기사

초등학생들의 감염 사례를 조사한 보건 당국에 따르면 1) 모든 사례가 처음에 어른으로부터 옮은 것이고 아이들 간에 옮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이런 조치를 내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감염자가 나와서 문을 닫게 된 경우도 사회 전체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판단했고요. 2) 또 어린 초등학생들은 고학년과는 달리,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활발하게 다른 사람을 만나며 돌아다니지도 않고 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더욱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3) 이 외에도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기타 집단에 비해 적절한 발달과 학습에 큰 장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라고요.


즉, 이런 겁니다. 마스크가 코로나 예방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저학년의 경우에는 이를 상쇄할만한 실익이 있다고 보는 거죠. 어린아이들은 적극적인 전파자 집단이 아니며, 마스크를 씀으로써 가장 피해를 입는 집단이라고 결정한 겁니다. 가장 책임이 없는 이들이 (즉 아이들)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 그러므로 이런 ‘예외적’인 조치가 가능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었어요. 단 한 군데의 누수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의 정책에 비해 눈에 띄는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데이케어 센터와 방과 후 돌봄 센터까지 이 결정에 해당되는데, 사실 방과 후 돌봄 센터에서 아이들이 몇 시간 내내 뛰어놀면서 계속 마스크를 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긴 했어요. 차라리 집에 와서 마스크 벗고 편히 놀게 해주자 싶어서 돌봄 센터에 보내지 않기로 하는 집도 심심치 않게 봐 왔고요. 당장 마스크 쓰고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턱 막히는데, 체육 시간에 마스크 쓰고 운동을 하거나 돌봄 센터에서 많으면 다섯 시간씩 입을 가려 두고 뛰어 놀라는 게 어린아이들로서는 어렵기도 하겠죠. 아이들이 체육 시간에 토한다는 얘기도 들려 오고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뮌헨시의 결정이고, 각 지자체들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어느 선에서 이 의무를 시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바이에른 주 총리인 마커스 죄더는 “마스크를 쓰는 편이 대면 수업을 더 오래 지속시켜 줄 것”이라는 상반된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 결정은 시의회나 학부모회 연합 등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아이들의 수업권과 건강하고 밝게 자라날 권리를 위해 어른들은 보다 더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안전 수칙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는 모습에서, 저는 사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학교 가는 길이 너무 신나는 제 아이의 모습입니다. 저희가 사는 하임하우젠은 뮌헨 인근 지역이지만 초등학생의 마스크 착용이 여전히 의무사항입니다. 독일에서는 사람이 많지 않은 밖에서는 마스크를 안 써도 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어 있어요. 학교 부근에 도착하면 마스크를 꺼내 쓰고, 바닥에 그어진 금을 따라 거리를 두고 천천히 들어가서 입구에 계신 선생님께 손 소독 지도를 받습니다. 아니 곧 들어가서 어울리고 마스크를 벗을 건데 저 거리두기가 무슨 소용이냐 싶기도 한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초등학교인 그룬트 슐레뿐 아니라 미텔 슐레, 즉 청소년 형 누나들까지 함께 있는 학교라 뭐 그런갑다 합니다. 쉬는 시간에는 환기를 위해 아이들이 모두 밖에 나가서 놀게 한다고 하네요.


지난봄 휴교령이 내렸을 때, 저희 동네 초등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하지 않았어요. 1) 학부모들이 옆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업 내용이 유출되면 교사의 권위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와 2) 학생들의 경우 기기와 인프라 부족, 선생님의 경우 기술 부족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는데요. 사실 독일의 인터넷 인프라는 그닥 좋지가 않아서 (말하자면 한숨이...) 지난봄에 온라인 수업을 시행했던 독일 학교들의 디지털 원격 수업에 대한 평가는 매우 참혹했다고 슈피겔 지가 보도한 바 있습니다. 독일뿐 아니라 호주,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멕시코, 싱가포르의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온라인 수업 만족도에서 독일이 당당하게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고요. 으하하.


기술의 독일이라고 하지만, 독일 사회는 우리나라처럼 하이테크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닙니다. 곳곳에 고색창연한 물건들이 난무하고 (저희 집 인터폰은 그레이엄 벨이 처음 발명한 전화가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그런 물건입니다.) 아직도 집에 들어가려면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고 돌려야 하며, 인터넷 설치에 기본적으로 한 달이 걸리는 나라예요. 옛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기에 일상생활에서도 직접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가 중요하게 사용되고요. 따라서 나이 드신 교사분들 중에는 이메일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뭐든 척척 빨리 받아들이고 휘리릭 잘 만들어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이 제대로 될까 궁금한 마음이긴 합니다.


여름휴가 기간을 지난 뒤 이웃 프랑스에서 확진자가 후욱 늘어나자,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에 대비해 각 가정의 인터넷 환경을 조사하고 온라인 수업에 관한 의견을 묻는 설문을 돌리더라고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은데, 11월부터 부분적으로 Microsoft Teams를 사용한 온라인 수업이 시행될 거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격일로 하루는 대면 수업, 하루는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지는 소위 하이브리드 러닝(hybrid learning)을 한다는 얘기죠. 제대로 잘 운영될지, 만족도는 어떨지, 살짝 기대되고 있습니다. 사실 집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할 수 없는 부모들의 경우에는 이런 방침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도 합니다.


  2) 유치원


저희 둘째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3단계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는 없습니다. 6세 이하의 아이들은 독일 지역 그 어디서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고요. 예전에는 빨강반, 파랑반, 초록반, 보라반, 하양반 등등 온갖 색깔이 다 섞여서 놀았다면 지금은 그룹별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외부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서 아이들 생일 파티에 집에서 만든 케이크를 보낼 수 없다는 점 정도가 (대신 마트에서 파는 개별 포장된 작은 베이커리는 가능해서 그런 걸로 바꿔 보낸다고 하네요) 바뀐 점이에요.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고, 최근에는 그룹을 소규모로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3일은 아이를 1시간 일찍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좌: 코로나로 왠지 덕보고 있는 개별 포장 케이크들 / 우: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다소곳한 자세로 손을 씻고 있는 아이

3) 확진자가 나온 경우


저희 동네 국제학교에서 10월 초에 확진자가 나왔다기에 거기에 자녀를 보내고 계신 분께 학교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들어봤는데요. 저는 학교가 잠시 문을 닫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놀라운 답변이...


우선은 제1 콘탁(영단어 contact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과 제2 콘탁이 나눠진다고 합니다.

제1 콘탁: 같은 반 아이들 중에서 가까운 거리에 앉은 아이들, 선생님, 같은 차량을 타는 아이들 — 코로나 검사 후 2주 격리 시행
제2 콘탁: 같은 반에서 수업하는 나머지 아이들 — 코로나 검사 실시, 등교 가능


확진자 대처 부분은 사실 좀 의문이에요.

저는 힘을 좀 비축하더라도 ‘선택과 집중’이랄까, 촘촘하게 관리할 곳은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확진자가 나온 경우엔 좀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조치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가 사립학교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처 방식에 있어서 물이 줄줄 새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이 학교는 고학년 학생들도 다니는 학교기 때문에 3단계가 시행되면서 수업 시간 중에도 마스크를 쓴다고 하고요. 우리로 치면 고3인 12학년 같은 경우는 앞으로 출석일수와 학업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내년 졸업까지 12회 정도 코로나 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뭣이 중헐까 


이곳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어서 현재 가벼운 락다운을 실시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 중인데요. (그리고 마지막 퇴고를 하고 있는 이 순간, 실제로 다음 주부터 한 달간 락다운을 실시한다는 선언이 나왔습니다. 좀 더 빨리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유럽에서는 독일이 그나마 제일 나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빨리 락다운을 결정했다고 봅니다.) 이 지긋지긋한 역병의 기간 동안 그래도 마음이 어느 정도 편한 것은 상당 부분 독일의 시스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직을 해도 실업수당이 나오고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아주고 교육해 주는 시스템, 아이의 학업에 좀 문제가 생긴다면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1년 더 같은 과정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아이의 반에는 현재 6세와 7세 친구들이 섞여 있는데, 오히려 1년 천천히 가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락다운을 또 한다고 했을 때 걱정되는 건 아이들의 독일어 발달인데요. 필요하면 1년 더 하면 되겠지 하고 느긋하게 마음먹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1. 스피드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도움의 손길이 조직적으로 갖춰져 있는 시스템. 사회가 전체적으로 ‘빨리빨리’의 시스템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근본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생각한다는 점이 위기에서도 마음을 어느 정도는 느긋하게 해 주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일례로 남편이 다니는 연구소의 얘기를 좀 나눌까 하는데요.

이메일에서 보듯, 만약에 학교나 유치원이 닫는다면 연구소 전체에서 각각의 개인에게 적합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34일간의 (한부모 가정인 경우 67일간) 유급 휴가를 줄 수 있다는 안내가 왔고요. 더 놀라웠던 것은 지난달에 연구소의 대표(돌아가면서 리더를 맡는다고 합니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었어요.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아마 한두 달 내로 다시 락다운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당장은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지 말고, 당신들이 그 락다운 기간을 가장 건강하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데 시간을 써라. 휴가를 쓰고 싶으면 휴가를 쓸 것을 기쁘게 장려한다. 아직은 하이킹을 하거나 산책을 할 수 있을 때, 좀 더 자연에서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 또 다른 힘든 시기가 우리 앞에 놓여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돌보고 건강에 신경써서 그 시기를 대비해야 한다. 부디 새로운 연구를 시작해서 자신을 다그치려는 생각을 버려라.”  

(대표님, 초면에 사랑합니다.)

이윤을 내야 하는 회사가 아니라 연구소라는 점이 이런 조치나 말들을 가능하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저로서는 저 말을 듣는데 귓속으로 박카스가 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듣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는 말들.


그리고 최근에 또 하나 뭉클한 순간이 있었는데요. 우리 동네 유치원들을 돌아 다니며 꼬마들에게 영어 수업을 해 주시던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방과 후 클래스에 자꾸 태클이 걸리자 안타깝게도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겠다는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재미있는 온라인 수업도 꾸리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셨지만 급변하는 환경에서 이 일로는 안정적인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셨나봐요. 그래서 단체 대화방에 그런 결정을 알리고, 남은 수업료를 환불해 주겠다는 장문의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랬더니 보시다시피 그 밑에 진심어린 응원과 함께,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냥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시는데 써 달라는 댓글들이 줄줄. 무뚝뚝한 독일인들이 가끔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고 그러네요. 뉴욕에서는 코로나로 수업 퀄리티에 문제가 생기자 사립학교와 학부모 간에 소송이 만발하더라는 소식을 듣다가 (물론 잘못되었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안타까웠죠.) 눈물날 뻔 했습니다.  


또 한 가지 독일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고마운 부분은 전체적으로 2. 사람들이 뚝뚝 떨어져서 행복하게 산다는 점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이웃이기도 하고 사실 많은 부분이 비슷하기도 한 두 나라가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뭘까요. 저의 개인적 견해를 밝히자면 프랑스는 상당히 중앙집권적인데 반해 독일은 지방분권적이라는 겁니다. 프랑스만 해도 큰 도시를 중심으로 나라가 구성되는 느낌이고, 다녀보면 아름답고 반짝반짝한 도시 중심부와 그렇지 못한 빈민가가 굉장히 대비되거든요. 독일은 대도시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고, 어디를 다녀봐도 대체적으로 골고루 촌스럽습니다(쿨럭). 그러나 딱히 정말 못 봐주겠다 싶을 만큼 허름한 곳은 없는 느낌이에요.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프랑스는 왜 저렇게 풍선이 터질 듯이 부풀어 있을까 하는 것도, 저는 상당 부분 이 점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독일이 ‘적절히 관리하면서 힘을 비축하는’ 전략을 쓸 수 있는 것도 사실 저는 이런 ‘뚝뚝 떨어져 살기’라는 특성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고요. 한국이 ‘최선을 다해 제거하기’라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저는 대도시에 집중된 어마어마한 인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코로나의 시대가 우리의 삶의 방식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국에 살기로 결심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게 뭘까?”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마주쳤던 질문인데요. 진행자들이 꼽은 것은 “편의점을 비롯한 24시간 서비스,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 배달 서비스나 대리 운전, 고객이 왕인 고객 중심 서비스, 당일 배송 및 총알 배송” 같은 것이었어요. 대중교통 정도를 제외하면 저는 ‘고맙지만 조금 슬픈 장점들’이라고 생각해요. 좋게 말하면 스피드나 편안함이 키워드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모두 사람을 갈아 넣는 일들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사람을 갈아 넣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아야 하나 싶기도 한데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이 표현이 저어되는 까닭은 실제로 사람들이 갈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계에, 스크린 도어에, 그 밖의 많은 장소에서요.) 다행히 여성 진행자분께서 “총알 배송 같은 건 장점이 아니어도 되는데, 안 그래도 되는데...”라는 말씀을 해 주셔서 위로받았어요. (2016년 여름 방송분이었으니까, 지금처럼 택배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상황에 대한 공감이 아직 사회적으로 크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김소연 시인은 <마음사전>이라는 책에서 ‘편안하다’와 ‘평안하다’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가로 치르지만, 나의 평안함은 누군가와 함께 누리는 공동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저는 이 구분이 참 마음을 울렸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요한 일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불편을 감수하는 자세를 왠지 디폴트로 탑재하고 있습니다. 너무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사람을 갈아 넣는 일을 너무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편안한 것만 찾지 말고 모두가 평안할 방법을 고민해 볼 순 없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코로나 시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코로나 속 우리의 편한 일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수고와 노력, 고생을 먹고 지탱됩니다. 우리가 사재기를 하지 않게 해 주었던 총알 배송, 주말도 거르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해 준 보건 인력들, 온라인 수업을 위해 낯선 기기며 프로그램들과 씨름해 오신 선생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건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방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온라인 수업 퀄리티가 대체 저게 뭐냐고 말들이 많습니다. 좋은 비판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내 입에서 나오려는 게 과연 필요한 비판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우리가 엄마의 보호를 받는 아이들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잠 설쳐가며 고생하시고,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학교로 뛰어가서 별 것 아닌 물건을 전해 주고, 늘 어디있는지 확인하고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도 해 주는.

엄마는 뭐든지 다 해 주는 사람, 나에게 그런 수고를 해 주는 게 당연한 사람인 줄 알지만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 엄마가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서 이만큼 나를 건강하고 편안하게 키웠고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에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만, 나는 우리 엄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 그런 마음.


똑같습니다.

밤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애쓰시는 택배 노동자들이나 보건 인력들을 볼 때 고마운 마음에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만, 그분들이 그렇게 사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기의 안녕을 챙기고 타인의 안녕도 존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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