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리딩 1월 큐레이션으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넣었습니다. 원래 리딩리딩의 큐레이션이 되는 대상은 출간된 지 2년 내의 신간인데, 이 책은 2015년 가을에 국내에 첫 출간된 책이에요. 애써 외면하다 결국은 읽게 된 이 책이 저에게는 너무 압도적이었고 개인적으로라도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후보로 올렸는데, 대표님께서 오히려 이 책을 써 줬으면 한다고 답을 주셔서 이번 큐레이션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리딩리딩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유료 사이트라 서평 전문을 이곳에 올릴 수는 없어서, 여기에 올리는 서평은 조금 생략되거나 다른 이야기가 추가된 버전임을 밝힙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성실하게 챙겨 읽는 타입은 아니다.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대상으로부터는 일단 눈알을 다른 데로 돌리고 최대한 늦게 찾아보는 몹쓸 취향이 있다. 이 책은 그럼에도 마음을 단단히 고정했다가 챙겨 읽은 첫 번째 책이다. 전쟁과 여자라는 묵직한 키워드가 정치철학 전공자인 나를 끌었다.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살아남은 여성 200여 명의 목소리라니. 수상이 발표되었던 해에 바로 리스트에 올려두었지만 사기까지 오래 걸렸고, 사놓고 읽기까지 또 한참 걸렸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책 표지에 박힌 이 엄청난 문장 앞에서 대체 이 책을 집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책이 데려다 줄 세계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모피어스가 내민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앞에 둔 네오처럼 망설였다. 결국 약처럼 꿀꺽 삼킨 책은 말할 수 없이 썼지만 약효는 나를 압도했다. 이 약은 진작에 먹었어야 했다.
나의 모교는 유대인 계열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예루살렘 근방에는 무수히 폭탄이 터졌고 내전은 끊임없이 있었기에, 그 안에선 전쟁이라든가 민족 같은 개념에 대해 얘기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정의라는 개념 역시 교정의 공기 속에 분자 타입으로 흩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 정의라고 하면 유명한 두 마이클 님(마이클 월쩌와 마이클 샌델)을 배출했는지도. 분쟁을 다루는 수업시간에는 유일한 분단국가 출신인 나의 의견을 종종 묻곤 했다. 그럼에도 전쟁은 늘 나의 삶과는 멀었다. 전쟁은 미디어와 교과서 안에, 주로 지명과 숫자로 들어 있었다.
학부 때 내 전공은 정치외교였다. 사관학교가 아니고서는 전쟁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우는 과였을 텐데, 교실에서 전쟁은 대체로 두 종류의 상자에 담겨 담백하게 전달되었다. 역사라는 낡은 갈색 상자, 아니면 전략이라는 차가운 금속 상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와 미국에서 배울 때가 달랐다. 한국 교실에서 마주한 첫 질문은 “어떻게 살아남을까”였고 미국 교실에서 만난 첫 질문은 “어떻게 세계를 이끌어 갈 것인가”였다. 지금은 여성 비율이 많이 늘었지만, 내가 공부할 때만 해도 칠판 앞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이들은 대개 남성이었다. 신화의 세계에선 군신인 아레스보다 전쟁의 여신인 아테네가 더 유명했지만, 땅 위에서 전쟁이란 기록이며 공부까지도 대개 남성의 영역이었다.
이 책이 전쟁을 전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 담담한 인터뷰들은 “요란한 구호나 거창한 웅변 하나 없이 조용히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돌아보게” 한다. 책이 담고 있는 당시의 소비에트 군대에서는 백만 명가량의 여성들이 참전해 싸웠다고 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으며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책 속에는 전쟁터에서 키가 커가는 철없는 소녀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예뻐 보이고 싶었던 아가씨들, 남편을 찾아 군복을 입고 전선을 헤매는 아내들, 전쟁이라는 미친 상황 속에서 자식들을 향한 절절한 마음을 비명처럼 내지르는 어머니들이 들어 있다.
남성들의 전쟁도 분명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겠지만, 여성들의 전쟁은 성별 때문에 그 고통이 더욱 다층적이다. 전쟁과 여자라는 조합이 그렇다. 전쟁터에서 여자는 숙녀보다는 병사가 되기를, 즉 여성성이 거세되기를 요구받지만, 한편으론 참혹한 전쟁터에서 그 전통적인 여성성으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는다. 게다가 남자들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공을 쌓아 훈장을 받았어도,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오랜 시간 남자들과 치열하게 군인으로 생활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고통받는다.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책 안의 여성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심장약을 먹고 구급차에 실려가면서도, 다음에 또 와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가슴에 박혀 녹슬어가던 못을 뽑아내듯 그 오랜 침묵을 뽑아내고 싶어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것을. 책에도 언급되듯 작고 하찮은 것들이야말로 삶의 온기이자 빛이다. 대의며 명분 같은 것이 아니라.
책 속에는 유독 소녀 병사들의 이야기가 많다. 고등학생들, 혹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 보드라운 영혼들은 죄다 남자들 몸에 맞춰진 커다란 군복과 군화에 어떻게든 몸을 끼워 넣고 씩씩하게 전쟁터를 누빈다. 얼마나 어린 나이에 갔으면 전쟁터에서 키가 크고, 전쟁터에서 첫 생리를 맞는다. “여자 몸으로 최전선에 갈 필요가 있느냐, 여자 몸으로 ...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들에 그들은 당차게 대답한다. 조국을 사랑한다고, 전선으로 보내달라고. 그녀들은 몰래 숨어서 전선행 열차에 오르고, 테이블에 짧은 메모만을 남기고 전쟁터로 향한다. 그리하여 한창 자라고 꿈꾸어야 할 나이에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임무를 맡는다. 삶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맛보지 못한 나이에 그렇게 떨리는 손끝으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보다는 예쁘지 못한 모습으로 죽을까 봐 두려웠다던 소녀들. 그렇게 그들은 애국심으로 들끓어 참전했던 전쟁에서 영혼이 온통 할퀴어진 채 살아남는다.
그녀들은 전선에 나가면서 가방을 사탕으로 가득 채워갔고,
소총을 무기가 아니라 마치 인형은 안은 것처럼 들었고,
솔방울로 앞머리를 구불구불하게 말고 잤으며,
전리품으로 모은 붕대로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놀라운 저격병이었지만 좋아하던 빨간 목도리 때문에 하얀 눈밭에서 눈에 띄어 목숨을 잃은 소녀, 극한의 긴장 속에서 하룻밤 만에 탐스럽던 머리가 노파처럼 하얗게 세버린 소녀, 첫 생리를 전쟁에서 맞고는 허벅지에 흘러내린 피를 보고 부상당한 줄 알고 당황하는 소녀 병사의 이야기에서 내 마음은 물처럼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떤 책이든 보통 연필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읽는데, 밑줄 때문에 이 부분을 다시 보는 일이 두려워 도저히 밑줄을 그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엄마가 되니 특히 엄마들의 얘기가 슬펐다. 나의 아이들이 명랑하게 노는 옆에서, 나는 눈 앞에서 다섯 아이를 모두 잃고 정신이 나가버린 어느 엄마의 이야기를 읽었다. 낄낄거리는 독일군 병사들의 총에 네 아이들이 하나하나 맞아 죽었는데, 젖먹이였던 마지막 아이에 관해서는 도저히 내 손으로 다시 옮길 수가 없다. 인간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나는 온몸이 호수에 잠긴 것처럼 울었다.
책 안에는 도저히 읽기 힘든 이야기들도 많지만 (백병전의 소리와 감각을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보석처럼 빛나고 분처럼 향내 나는 이야기들도 들어있다. 전쟁 속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아기를 낳고 사랑을 한다.
(생략)
책은 많은 부분이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 있다.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한 느낌 때문에 몰입감도 공감도 크다. 몇 문장만 들어도 누구나 가슴에 쓴 물이 들 것이다.
“내가 전쟁터에서만 예뻤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엄마, ‘아빠’가 뭐예요?”
“- 이 사람들은 여자들이라고요!
- 여자는 무슨 여자예요, 군인들이고만....”
“딸아, 네 짐은 내가 싸놨다. 집에서 나가 주렴... 제발 떠나... 너한텐 아직 어린 여동생이 둘이나 있잖아. 네 동생들을 누가 며느리로 데려가겠니? 네가 4년이나 전쟁터에서 남자들이랑 있었던 걸 온 마을이 다 아는데......”
“어쩌면 나는 두 개의 인생을 살았는지도 몰라. 하나는 남자의 인생, 다른 하나는 여자의 인생...”
전쟁이 끝나고 비로소 맞게 된 평온한 삶 앞에서 그녀들은 기쁨과 함께 공포를 느낀다.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는 소녀들. 지뢰를 제거하는 법은 알지만 문법 같은 것은 모두 잊었다는 학생들. 훈장 같은 것을 모두 감추어야 삶이 더 평온할 수 있었던 여성들. 전에는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살아갈 일을 두려워하게 된다. “기껏 증오하는 법을 익혔는데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는 말이 슬펐고, “남들에겐 평범한 것들을 나는 새로 배워야 했어. 평범한 보통의 삶을 기억해내야 했어. 정상적인 삶을!”이라는 절규를 통해 나의 정상적인 삶, 나의 일상을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았다.
나는 독일에 살고 있다. 책에는 독일군이 적군으로 나온다. 책에 수없이 등장하는 증오와 번민의 대상인 ‘파시스트’들. 그들의 나라다. 내가 아이들과 매일 지나치는 길에는 전쟁에서 사망한 동네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에 마음이 내려앉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종종 돌에 새겨진 이름과 숫자를 큰소리로 읽으며 그 앞에서 발랄하게 놀곤 한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책 안에서 죽어간 갓난아기며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루한 일상이 기본으로 주어진 삶을 산다는 것은 이토록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구나, 생각하며.
알렉시예비치의 뒤를 이어 그 이듬해인 2016년, 다소는 파격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밥 딜런의 노래 <Blowing in the wind>가 듣고 싶어 찾아 들었다. 평소에 이 노래를 듣고 울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Yes, 'n'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얼마나 많은 폭탄들이 오가야 그것이 영원히 금지될 수 있을까?)
Yes, 'n'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인간이란 앞으로도 얼마나 더,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야 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늘 전쟁의 불씨를 끌어안고 살고 있는 세계 유일의 휴전국인 한국 사회가,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위해 이 책을 용기 있게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에, 이 끔찍한 잔상들을 털어낼 수 있게 뭔가 평범한 일상이 담긴 아름다운 책이 읽고 싶었다. 김혼비 작가님의 <아무튼, 술>을 집어 들었다.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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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 찾아 올려 둡니다.
"How many videos a man search by to find the original version of the song"이라는 너무나 위트 있는 댓글 때문에 잠깐 웃을 수 있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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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좋아하신다면 이 클립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개인적으로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러 갔다가 완전히 매료되었던 곡입니다.
책 속에는 처절했던 레닌그라드 봉쇄 때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요. 독일이 872일간 레닌그라드를 봉쇄하는 동안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도 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면서, 포성이 들리는 가운데 악상을 얻어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뼈만 앙상히 남은 레닌그라드 교향악단 단원들이 무료 연주회를 열어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 주었다고 하네요. 극도로 먹을 것이 없어서 벨트와 가방을 끓여먹으면서도, 인간다움을 지키려고 결코 문을 닫지 않았던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었다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이야기에 울컥했습니다. 열람실에는 책을 펴놓은 채로 굶어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요.
군대가 행진하는 듯한 위풍당당한 모티브가 계속 머릿속에 남는 곡.
https://www.youtube.com/watch?v=_z8TZjcqY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