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의 시시한 시읽기

by 이진민


시 필사 모임을 하고 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엄마 때문에 어릴 적에 심심치 않게 불경을 필사하라는 과제를 받아 들고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마법주문 같은 알 수 없는 글자들을 묵묵히 적어 내려갔던 나는 (열 살짜리 어린이가 관세음보살을 절로 찾게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참고로 관세음보살님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신다고 한다. 엄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시스템이었다고 할까.) 사실 필사라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을 탑재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음식 맛도 제대로 못 느끼면서 우적우적 씹어 넘기는 데만 집중하는 것처럼, 내가 뭘 쓰고 있는지 가끔 아득하게 정신을 잃으면서 우적우적 쓰는 행위, 그런 게 필사 아니야?


소설을 필사하는 것이 한때 작은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좋아하는 소설을 한 문장 한 문장 베껴 쓰면서 제대로 잘 써진 단단한 문장들의 맛뿐 아니라 속도감이며 표현, 구성과 배치의 묘미를 음미할 수 있다는 그 모든 장점에 충분히 수긍하면서도 정작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쥐꼬리 털의 모낭세포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 모든 장점을 격파하는 하나의 단점, 바로 '길이'였다. <태백산맥> 필사라니, 내 앞에 그야말로 태백산맥이 터억 버티고 서는 느낌이었고 <토지> 필사라니, 만석꾼 최참판댁 땅을 내가 다 갈아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엄습해 왔으며 <혼불> 필사라니, 그걸 다 쓰다간 내 혼이 모두 불타올라 하얗게 재가 될 것 같았다. 손사래가 절로 쳐졌다. 남의 글은 읽고, 내 글을 쓰자.


그런데 시?

오, 시.

시라면 나같이 게으르고 불만 많은 인간에게 딱 적절할 것 같았다.

이 세계의 빈틈을 볼 줄 아는 눈과 번득이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조탁하여 내놓는 말 덩어리.

정철의 관동별곡 같은 게 아닌 다음에야 부담 없는 길이에다, 시인들이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빚어낸 보석 같은 문장들. 소설가들의 문장도 사람을 홀리지만 시인들의 문장은 밀도가 다르다. 언어를 악기처럼 다루는 사람들의 문장이란 정말.


올해 2월, 옆 나라 폴란드의 그녀가 시 필사 모임을 한 달만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2차 가자는 소리에 손 번쩍 들듯 그렇게 콜을 외쳤다. 사실 나는 머리가 빠개지는 전공책을 읽느라 늘 허덕여야 했으므로 시나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 못하고 살았다. 철학서에도 물론 명문이 즐비하고, 그 행간이 모여 이루는 놀라운 세계를 열고 들어갈 때의 환희에 가까운 희열이 있다. 하지만 그곳의 문장들은 대체로 딱딱하고 회색이다. 시나 소설의 그 말랑말랑하고 오색찬란한, 펄떡이는 문장들을 들이켜고 싶은 마음을 늘 그렇게 누르며 살아왔더니 사람이 영 딱딱하게 회색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말라가는 심장에 인위적으로 찰랑거리는 샘을 좀 파보고 싶었다.


열 명 정도가 각자 좋아하는 시 두 편을 갖고 모여서, 하루에 한 편씩 배달되는 시를 각자 편안한 시간대에 옮겨 쓴다. 그렇게 자기가 적은 시 사진을 올리고 단톡방에 짤막한 단상을 남기는 형식. 한 달만 해보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시즌제로 중간에 한 주 정도 휴식기를 가지면서 이제 6월로 4번째 모임을 맞았다. 멤버들은 큰 줄기가 유지되면서 살짝씩 모이고 흩어진다. 이름만 알 뿐인 사람들이지만 그래서 더 솔직한 마음을 내놓는다. 그 내밀한 문장들을 읽으며 응원의 마음과 조심스런 친밀감이 쌓이고 있다.


그렇게 즐겁게 시를 맛보고 있다.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면서 시 자체를 아기 얼굴 보듯 찬찬히 음미하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속속 전해져 오는 단상들. 같은 시를 읽고 전해 듣는, 비슷한 온도의 각기 다른 단상들을 머금어보자니 꼭 뒤통수로 아침햇살이 내리쬐는 느낌이다. 하루치의 햇빛을 이미 새벽에 냠냠 먹고 시작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사실 글보다 글씨를 쓰는 게 제격. 지금까지 60여 편 넘는 시를 조금씩 떼어먹으면서, 입에 머금고 글로 써 내려가면서, 개인적으로 한동안 좀 헝클어졌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좀 더 입에 넣고 천천히 굴려보고 싶은 문장들도 많이 수집했다. 구슬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사실 이 매거진을 만든 이유는 내가 요즘 다른 글 작업이 많아서 예전처럼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못 올리기 때문이다. 이 단상들이라도 짤막하게 나누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옮겨 적은 시와 그 시에 잠시 걸어두었던 내 마음을 여기에 짧게 옮겨 두는 걸로, 이렇게 잔머리성 틈새 연재를 시작해 본다.

시에 대한 해석은 난데없을 수도 있고 감상 역시 내 멋대로다.
시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머리엔 꽃을 꽂은 채 헛다리를 짚고 서있을 지라도, 이렇게 시를 내 작은 그릇에 담아 우물우물 먹어보는 일이 즐겁다. 그러니 분석적인 마음은 잠시 내려두시고 같이 머리에 꽃을 꽂는 마음으로 보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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