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
2021. 5. 20.
서안나, ‘곡선의 힘’
서안나 시집 <립스틱 발달사 (2013, 천년의 시작)> 중에서
남한산성을 내려오다
곡선으로 휘어진 길을 만난다
차가 커브를 도는 동안
세상이 한쪽으로 허물어지고
풍경도 중심을 놓아 버린다
나는 나에게서 한참 멀어져 있다
나는 곡선과 격렬하게 싸운다
나를 붙잡으려
내가 쏟아진다
커브 길을 돌아
나에게 되돌아오는
몇 초 동안
나의 슬픈 배후까지
슬쩍 열어젖히는
부드러운
곡선의 힘
나를 붙잡으려고 내가 쏟아지는 순간.
무게중심을 잃고 관성과 싸우는 일.
멀어지려는 힘과 끌어당기려는 힘이 서로 격렬히 싸우는 순간.
운전 중 급커브를 돌면서 매번 그런 힘과 힘의 줄다리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한 번도 그 의미를 이렇게 인생에 빗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시인들의 눈은 얼마나 귀한지요.
관성을 가지고 달려온 삶이 기울어져 나의 온 생이 쏠리는 것 같을 때,
세상이 한쪽으로 허물어지고 늘 보던 풍경도 흔들려 낯선 모습이 될 때.
시에서처럼 그게 단 몇 초의 순간이고 그 순간이 지나 내가 다시 나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에서 이런 순간이 단 몇 초일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힘든 순간일수록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원심력과 구심력이 싸우다가 결국 너무 강한 원심력이 나를 밀어내는 바람에 우리는 종종 궤도에서 이탈하기도 하죠. 그야말로 사투일 수 있는, 그런 힘과 힘의 일전(一戰). 몇 초 동안 나의 슬픈 배후까지 슬쩍 열어젖힌다는 말이 그래서 눈에 오래 남습니다.
남한산성 드라이브 코스는 잘 몰라서 한계령의 그 은은하게 오바이트 쏠리는 헤어핀 커브들을 떠올리며 읽었습니다. 이렇게 쏟아져 가며 나의 관성과 격렬히 싸우는 일은 분명히 고달플 겁니다. 무너지고 넘어져 버릴 것 같은 그 긴장이 버거울 거고요. 하지만 이게 곡선이 아니고 직선이었다면, 그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일은 더욱 힘들거나 불가능할 것이고 또 내려가는 건 너무 가팔라서 공포스럽겠죠. 그래서 곡선의 힘은 참 오묘한 것 같아요. 빠르고 단단한 직선 주로가 좋은 건 줄 알고 살았지만, 이렇게 부드럽게 휘어진 곡선길을 따라가는 게 꽤 괜찮은 거구나 느끼는 걸 보니 제가 굽이굽이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사실 우리가 지혜에 이르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을 얻는 길은 직선주로일 수도 있겠지만, 지혜에 가닿는 길은 반드시 구불구불합니다. 깨달음이 오는 순간은 언뜻 직선으로 내닫는 빛처럼 느껴지겠지만, 내가 그동안 갈지자(之)로 비틀거리며 담아온 것들 없이는 그 깨달음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생각해보면 아마 그림이 그려지실 겁니다. 관성과 통념에 균열을 내는 질문을 던져 사람을 비틀거리게 하고, 말과 말이 서로에게 구불구불 오가면서 결국에는 깨달음의 종착지에 도달하게 만드는 그런 과정.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곡선의 힘과 아름다움이 우리를 만들고 지탱합니다.
급커브를 지날 때 저희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꼭 놀이기구에 탄 것처럼 좋아해요. 관성에 도전받는 것을 즐기는 거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저도 제 삶의 관성에 도전받는 일을 저렇게 웃으며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덧.
이 시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2021. 4. 30.
김재진, ‘넉넉한 마음'
김재진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2015, 꿈꾸는서재)> 중에서
고궁의 처마 끝을 싸고도는
편안한 곡선 하나 가지고 싶다.
뾰족한 생각들 하나씩 내려놓고
마침내 닳고 닳아 모서리가 없어진
냇가의 돌멩이처럼 둥글고 싶다.
지나온 길 문득 돌아보게 되는 순간
부끄러움으로 구겨지지 않는
정직한 주름살 몇 개 가지고 싶다.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속이며 살아왔던
어리석었던 날들 다 용서하며
날카로운 빗금으로 부딪히는 너를
달래고 어루만져 주고 싶다.
여기에서도 곡선의 힘을 느낍니다.
직선으로 돌진하는 일이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곡선으로 둥글게 닿아가는 부드러움이나 그 안에 담기는 시간의 의미 역시 쉽게 가질 수는 없는 거겠죠. 직진하는 물은 결국 폭포라는 아찔한 절벽을 뛰어내려야 하지만 굽이굽이 곡선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강은 평화롭게 바다에 가 닿는다고 하니까요.
다만 필요한 뾰족함을 모두 잃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둥근 돌은 쌓아 올리기 어렵지만 모난 돌은 차곡차곡 쌓아 올려 커다란 성을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 시를 읽고 같은 필사 모임에 계신 문지영님께서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에는 계단 안쪽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계단 양옆 돌에 살짝 빗금이 가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날카로운 빗금은 너를 위해 밖으로 물을 흘려주기 위함이라고, 꼭 너와 부딪히려고 날카로운 빗금을 그은 게 아니라는 변명이 하고 싶어진다고요. 직선도 곡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정말 멋지지 않나요. 날카롭게 그어진 직선의 빗금마저 저렇게 부드럽고 둥근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다시 경주에 간다면 그 '부드러운 직선'을 꼭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