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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y 15. 2019

존 할아버지의 요술 보자기

존 롤즈, 무지의 베일

보물상자를 발견했어요.

열어보니 번쩍이는 황금과 보석이 가득, 장신구들이 그득.


어떻게 나눌까?


흥부가 말했어요.

“우리 집은 가난해요. 배가 고파 제비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자식 놈들이 스물다섯이나 된답니다. 염치없지만 저에게 조금 더 베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별 쥐똥같은 소릴 다 듣겠네. 아이구, 나한테 저 황금을 몽땅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꽃신은 곱기도 하지. 우리 마누라 주면 좋아하겠다. ”

심술보가 더덕더덕 붙은 놀부가 탐욕스러운 얼굴로 말했어요.

“이보시오들. 나에게 투자하시오. 나한테 저 황금을 몽땅 준다면 곧 열 배로 불려 돌려드리겠소.”

허생이 말했습니다.


“저기, 다른 건 몰라도 저기 있는 예쁜 꽃신은 제가 갖고 싶어요.”

콩쥐가 수줍게 말했어요.

“어머, 저 신 내 취향인데. 나한테 양보하면 안 돼요? 내가 신발을 좀 좋아하거든요.”

신데렐라가 일어나 꽃신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어요.


“너희들, 시끄럽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저건 다 내 거야.”

구석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말했어요.

“뭐라고요? 그렇게 욕심을 내면 사자 아저씨가 잠자는 동안 우리가 아저씨 귓구멍으로 들어가 버릴 거예요.”

조그만 개미들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왁자지껄. 시끌시끌. 으르렁.


미소를 띠며 창 밖만 바라보고 있던 존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우리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게 어때요? 짜잔, 이것 보세요. 나한테는 요술 보자기가 있어요.”


“요술 보자기요?”

“네. 우리가 가장 근사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보자기예요.”

“그런 보자기가 있어요? 어떤 요술을 부리나요?”

“궁금하면 모두 써 볼래요?”


존 할아버지는 촤르륵, 인원수대로 부드러운 회색 보자기를 꺼내어 모두의 머리에 씌워 주었어요.


“어어?”

“음?”

“어어? 내가 누구였더라?”


할아버지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어요.  

“이 요술 보자기를 뒤집어쓰면 내가 누구인지, 상대는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게 된답니다.”


“허허, 이거 요물일세.”

허생이 말했어요.


“자, 이제 여러분 앞에 황금 열 덩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나누는 게 좋을까요?”


모두의 머릿속은 재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가장 힘센 순서대로?

아니야. 내가 가장 약한 사람이면 어떡해.

그럼 나이 순서대로?

아니야. 보자기를 벗었는데 다들 나이가 나보다 많을 수도 있잖아.

그럼... 음...
 

“음... 이런. 내가 누군지 모르니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결정할 수가 없네.”

사자가 말했어요.


“음... 딸린 식솔이 많은데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당분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주어야 하지 않겠소?”

와, 이 말이 누구 입에서 나온 줄 아세요? 바로 심술꾸러기 놀부 아저씨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존 할아버지가 묻자 놀부 아저씨가 대답했어요.

“그게,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요. 그러자니 내가 제일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면 어쩌나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우리 집에 딸린 식솔이 많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집도 찢어지게 가난하면 어쩌나 싶고... 흠흠.”


보자기를 뒤집어쓴 허생이 말합니다.

“그렇군. 만약에 내가 가장 가난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저렇게 생각할 것 같소.”


콩쥐도 거들었어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결정한다면, 우리 중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신데렐라도 맞장구를 치네요.

“그래요. 집에 금이 많이 쌓여있는 사람은 잠시 양보하고 당장 배고파 쓰러질 사람에게 주는 게 맞죠. 근데 우리 집에 금이 있으려나? 기억이 아리송한데... 내가 재투성이로 되게 가난했던 것 같기도 하고, 으리으리한 성에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존 할아버지가 방긋 웃으며 모두에게 물었어요.

“그럼 모두들 이 의견에 찬성하나요? 가장 배고픈 사람이 먹고살 수 있도록 나누고, 거기에 토를 달지 않겠다는 의견에?”


“네, 제가 누군지 모르지만, 손해를 보고 싶진 않군요."

"음. 내가 제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니 그게 맞네.”

“옳소. 그리 합시다.”


그렇게 모두는 존 할아버지의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상자 안에 든 보물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나누었어요.


존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면, 개개인이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을 추구함으로써 가장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답니다. 그것이 이 보자기가 부리는 요술이지요.”


그렇게 왁자지껄, 아슬아슬한 말들이 오갔던 자리는 평온하게 정리가 되었답니다.

이거야말로 할아버지의 보자기가 부린 요술이 아닐까요?




아이들을 위한  마디 

우리 교실에 보물상자가  떨어진다면 어떻게 나누고 싶은가요?

싸워서 제일 힘이  사람이 차지하는  좋을까요?

아니면 공부를 제일 잘하는 친구부터?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이 정하는 대로?


 함께 눈을 감고  할아버지의 요술 보자기를  것처럼 생각해보는  어떨까요?

 할아버지가 기쁘게 방긋 웃어주실 거예요.


어른들을 위한 한 마디

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존 롤즈(John Rawls, 1921-2002)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 나오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설명한 동화입니다. 정의의 여신상이 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이 '무지의 베일'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미술관이나 광장, 법원 같은 곳에서 만나는 정의의 여신들은 보통 눈을 가리고 있죠. 지위나 신분, 가진 것 등 외면에 현혹되지 않고 모든 편견의 소지를 차단한 채 공정한 심사를 하겠다는 뜻으로요. 베일은 아무래도 비치는 느낌이 강해서 '무지의 장막'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1950년대 이후 정치 영역이 효율성에 잠식당하고 있을 때, 롤즈는 이 베일의 비유를 통해 '합리적인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려 하고, 그 결과 정의를 추구하게 된다'는 설명으로 당시 점차 자리를 잃어가던 정의 개념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 되는 법이지요.


롤스는 "사상체계의 제1 덕목이 진리이듯이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은 정의"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사상체계가 아무리 일목요연하게 잘 짜여졌더라도 거짓이라면 폐기되어야 하듯이, 사회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라도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당시 특히 효율성을 강조하던 공리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어요. 그의 주장은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명분 아래 무시되거나 뒤에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는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롤스는 훌륭한 정치철학자인 동시에 마음 따뜻한 선생님으로 하버드에서 오래 재직하며 로버트 노직, 주디스 슈클라 등과 더불어 정의에 대한 논쟁을 이끌었습니다.


아이들이 허생전의 허생을 모를 것 같아서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는데요. 그래도 이를 계기로 허생이라는 인물에 궁금증을 갖는 친구가 있다면 또 그건 그대로 즐겁지 않을까 싶어 그냥 두었습니다. 그나저나 흥부 자식이 몇 명인지 아리송해서 찾아보니 세상에. 흥부 씨, 부인께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뒤에 나올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님께 좀 혼나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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