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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Dec 28. 2021

2021년 12월 27일

돌아보고, 바라보는

녹아 없어진 것 같은 2021년.
돌아보니 1년 내내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 글을 썼다. 글 속에서 즐겁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삶이 충만해져야 하는데, 글을 쓰면서 삶이 조금씩 고갈되어 버석거리는 느낌. 그래도 씨앗처럼 기다리고, 라디오처럼 요리하고, 안개처럼 사랑하고, 지박령처럼(음?) 글을 쓰고, 1년의 끝에 다다랐다.  


녹아 없어지는 한 해 안에서도 녹지 않고 평생 남을 순간들이 있었다. 오래 마음에 품고 있던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서 많이 기뻤다. 자신 있게 쓴 책이어서, 책을 내놓을 때의 불안감 같은 것도 거의 없었다. 다행히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세상에  퍼센트 좋기만  일은 없다. 이름이 조금씩 알려질수록 마음이 조금씩 시끄러워졌다. 내가 과연 사람들에게 알려져도 좋은 존재인 걸까, 기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안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있는 자리를 만들  있는 인간인가 하는 의문도 덩달아 생겼다. 책이 여러 사람에게 닿아 관계가  늘어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면서도 살짝 벅찬 일이었다. 기쁨 , 불안 반이 짬짜면처럼  그릇에 담겨 배달되어 왔다. 오른손에는 망치를 들고 경계를 허물면서도 왼손으로는 벽돌을 들어 내가 부순 담을 다시 쌓으려는 기괴한 마음이었달까. 인간이란 원래 스스로 갈피를  잡는  특기인 존재지만, 마음이 동시에 오른쪽과 왼쪽을 향해 슬금슬금 전진하는 느낌.


한국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지만 독일에 있다는 사실이 대체로 고마웠던 것 같다. 가끔 한국이 신경질적으로 그리워지는 날이 있었지만 거리감이 주는 평온이 있었다. 한국에 있으면 접속사들을 깨물고 자꾸만 혀끝에 놓이는 문장들을 삼키면서도 쉴 새 없이 뭔가를 말해야 할 텐데, 이곳에 있으면 말이 없어도 좋았다. 한국에 있으면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사람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랬지만, 이곳에 있으면 그냥 모든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해의 다짐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조금 더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거였다. 한 해의 끝에서 돌아보자니 한 마디로 잘 모르겠다. 사실 관계라는 게 그렇게 한 해 정성을 들인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도 하고, 긴 시간의 끈 위에서 당겨졌다 묶였다 풀렸다 하는 거니까. 그리고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서 새로운 관계에 에너지를 쓰면 이전의 관계가 잔잔해지는 어쩔 수 없는 부작용도 있다.


욕심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욕심을 낸 해였나 싶어서 사실은 약간 반성하고 있다. 나란 인간은 냇물보다는 호수형 인간인데, 약간 무리해서 물방울을 튀기며 깔깔깔 흘렀나 싶은 겸연쩍은 마음. 혼자 수면을 조금씩 높였다 내렸다 하면서 찰랑찰랑 그 자리에 있는 편이 역시 나답지 싶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많은 분들을 만났고 그 경험들이 나쁘지 않았다. 관계와 마음 같은, 한 사람이 다루기 어려운 영역에 다짐을 건다는 것의 무력함을 깨달았으니 그 깨달음으로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2022년의 키워드는 휴식과 도전이다. 올해 2모작 하느라 힘들었던 머리통을 좀 쉬게 하고 싶다. 천천히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몇 가지 해보고 싶다. 재밌어 보이는 단어들이 몇 개 머릿속을 굴러다니고 있다.


올해 알게 된 아주 좋은 분이, "작가님은 또 태어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다. 진심이다. 미역으로라도 다시 태어나고 싶다. 질문하신 분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걸 듣는 건 슬프지만, 슬픔과 별개로 나에게는 살아서 그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그런 마음이 있다. 다시 태어나서 또다시 언어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도 하면서 살고 싶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일단 남은 날들을 재미있게 살아야겠다. 언어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도 하면서.

그러니 2022년 어디 드루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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