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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r 22. 2022

독일 기차에는 어린이 전용칸이 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이 글은 <해외특파원이 발견한 제3의 공간>이라는 브런치 매거진에 싣기 위해 쓴 글입니다. 방문객이 아니라 거주자의 입장에서, 해외 여러 곳에 실제 거주하는 엄마들이 고국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제3의 공간을 향한 영감을 건져 올리기 위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모아두는 공간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 여행이란 것을 포기하고 산지 2년째지만 프랑크푸르트로 여행할 일이 있었습니다. 20대 대통령 선거 때문이었죠. 제가 사는 독일 뮌헨 인근에는 영사관이 없어서, 투표를 하려면 가장 가까운 프랑크푸르트 영사관으로 약 400km 거리를 가야 합니다. 그동안은 자동차를 이용했어요. 중간중간 내려서 간식도 먹고 운전도 교대로 하면서 가면 보통 5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아이들은 먼 거리를 꼼짝달싹 못하고 묶여서 가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았습니다. 특히 둘째는 휴게소에서 쉬고 다시 차를 탄 지 5분 만에 다음 휴게소를 부르짖곤 했지요.
 
이번엔 아이들도 제법 컸고 환경도 생각할 겸 기차를 이용해 보기로 했어요. 기차로는 뮌헨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4시간 반이 걸리니 이동시간은 비슷하지만, 운전을 안 해도 되니 피곤도 긴장도 덜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워낙 기차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제법 컸기 때문에 기차를 이용할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어렸을 때 너무나 편안하게 기차를 이용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독일 기차에는 다섯 살 이하의 어린이를 둔 가족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용칸이 있었던 것이죠.

요것이 바로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구역이 있다는 표시

우선 관련된 제도를 좀 살펴볼게요. DB, 즉 도이치반(독일 철도공사... 정도 될까요) 홈페이지에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할 때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잘 정리되어 있는데요. 아래에 영어로 된 화면을 옮겨 왔습니다.

https://www.bahn.com/en/offers/travelling-with-children 캡처 화면

1. 일단 열차 요금은 14세까지 무료입니다. 5세까지는 티켓도 필요 없고, 6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이는 무료이긴 하지만 다음의 부가적인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우선 1) 15세 이상의 보호자(보호자가 15세라니, 귀엽죠)가 동반해야 하고, 2) 티켓 예매시 함께 타는 어린이가 몇 명인지 적시하고 좌석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청소년 혹은 어른 한 명이 무료로 4명의 아이를 동반할 수 있고, 아이가 4명이 넘는 경우라면 패밀리 티켓을 끊어서 싸게 이용하는 방법이 따로 있어요.


2. 공간면에서는 크게 두 가지 옵션, 1) 5세까지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family compartment (어린이 전용칸), 그리고 2) 14세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family area (패밀리 구역)이 있어요. 여기에는 소정의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 참고로 제가 오늘 소개할 것은 전자, 즉 어린아이들을 위한 전용칸입니다.


1) 어린이 전용칸: 5세까지의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신청할 수 있는 구획된 공간. 대체로 유아차를 놓을 수 있는 공간과 기저귀를 갈 수 있도록 벽면에서 펼 수 있는 기저귀 교환대, 아이들이 기어 다니고 놀 수 있는 공간, 분유를 데울 수 있도록 childproof socket(감전 위험이 없도록 마개가 있는 소켓)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2) 패밀리 구역: 이건 기차의 한 칸(예전 용어로는 한 량) 전체를 아이가 있는 가족들에게 배당해 놓은 건데요. 아이들이 좀 떠들어도 서로 눈치 볼 필요 없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상호작용하면서 놀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주로 기차의 입구 쪽, 즉 캐리어를 보관하는 구역과 화장실이 가까운 곳에 배치되는데 기차의 종류에 따라 8석에서 24석까지 있으며, 대상은 14세까지의 아동이 있는 가족입니다.  

순서대로 1)과 2)의 픽토그램. 패밀리 구역을 찾으려면 각국 언어로 쓰여진 파란띠가 둘러진 구역을 찾으면 됩니다.   


어린이 전용칸이 있는 기차와 없는 기차가 있으니 사전에 잘 체크하고 기차를 골라야 합니다. 보통 짧은 구간을 가는 지역 노선(regional rail)에는 없고, 도시와 도시를 잇는 ICE(intercity express)의 경우에는 거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티켓을 예매할 때 저렇게 전용칸을 선택하면 돼요. 이렇게 옵션을 선택할 경우 보통은 가족당 8유로, 1등 칸에는 10.60 유로의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금액(가족당 만 원 정도만 더 내면 됩니다)이고, 정말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습니다. 저희는 이번 여행에 갈 때와 올 때 모두 전용칸을 신청해서 너무 편하고 즐겁게 기차를 이용했어요.


3.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중단하고 있지만 원래는 주말 노선을 타게 되면 이렇게 아이들이 즐겁게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들이 함께 올라 차일드 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요. 이건 사전 예약 필요 없이 그냥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4.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줍니다. 보통 식당칸에 가면 아이들을 위한 구디백(goodie bag)이 준비되어 있는데요. 각각의 백 안에 어느 것이 들어있는지는 랜덤인데, 보통 아래와 같이 놀이 책자, 종이로 기차나 공룡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아트지, 게임, 그림 도구, 장난감, 쿠폰 같은 것들이 서프라이즈로 들어있다고 합니다. 저희 아이들은 콜라를 사러 갔다가 귀여운 기차 장난감들을 받아와서 의자 틈 사이에다 한없이 굴리고 놀았습니다.  


5. 그 외에 도이치반 홈페이지에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면 좋을 정보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제 마음에 드는 걸로 두 개 골라봤습니다.  

빨간 모자나 라푼젤, 브레멘 음악대 등 그림 형제의 동화들을 따라갈 수 있는 루트가 있네요
이건 저희 동네 근처에 있는,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성입니다. 이번 여름에 가보려고 해요.

제도를 살펴보았으니, 여기서부터는 저희 가족의 실제 이용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일단은 집에서 S-Bahn(Schnellbahn or Stadtschnellbahn: 뮌헨 시내와 외곽을 도는 일종의 도시철도)을 타고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어요. 이 중앙역에서, 뮌헨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열차를 타야 하거든요. 열차 티켓을 사면 집이나 숙소까지 갈 때 타야 하는 연결편인 대중교통, 즉 버스나 S-Bahn/U-Bahn, 트램 같은 것은 하루 종일 그 열차 티켓 한 장으로 추가 요금 없이 모두 자유롭게 이용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뮌헨 시내로 가는 교통편,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다닐 때에도 밤까지 모든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죠.  

기차역은 늘 설레는 공간입니다 :-)

아래 사진에서 왼쪽으로 둥그렇게 나온 공간이 어린이 전용칸입니다. 오른쪽 사진처럼 불투명한 유리문을 닫게 되어 있어서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되어 있고요. 보시다시피 기저귀를 갈 수 있고 휠체어도 들어갈 수 있는 널찍한 화장실이 바로 옆칸에 붙어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한 번 둘러보시죠.(feat. 불안정한 카메라 워크)

아담하지만 가족끼리 여행하기에는 아주 넉넉한 공간이었어요.

영상에서 보시듯 네 명이 마주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하나, 벽 쪽으로 간이식 테이블이 붙은 2인 좌석이 하나, 총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2인 좌석은 옆에 유아차를 세워 놓기에도 빈 공간이 넉넉해서,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온 부모가 나란히 앉아 이용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 공간을 통째로 6석 모두 저희 가족에게 배정해 주었더라고요. 테이블은 가족 놀이용으로 쓰고, 뒤쪽의 2인석은 저와 반려인이 돌아가면서 급한 일처리를 하거나 조용히 독서하거나 잠시 눈을 붙일 때 사용했습니다.


벽에 옷을 걸 수 있는 행거가 부착되어 있어서, 부피가 큰 겨울 코트를 걸어 놓고 편히 앉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스크린에는 지금 기차가 어디를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다음 역에 언제 도착하는지 각종 정보와 지도가 떠서 그것도 좋았고요. 아이들이 만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월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게임도 하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편안히 여행을 즐겼고, 저희도 편히 맥주도 한 잔 하고 독서도 즐기면서, 또 간간이 일도 하면서 편안히 여행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끼리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 스트레스 없이 편히 있을 수 있었다는 점이 참 좋았어요.  


제 소셜 미디어 계정에 어린이 전용칸 이용 후기를 남겼더니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기에 긴 포스팅으로 자세히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독일에 계시는 분들께는 좋은 정보가 되기를, 그리고 한국에는 좋은 레퍼런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차에도 어린 아이나 초등학생들을 둔 가족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런 공간을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행이 고플 분들을 위해 유럽 좀 맛보시라고 마지막으로 프랑크푸르트의 모습들 전합니다.   

뢰머 광장 정의의 여신상 (초상권 때문에 싣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뢰머 광장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과 역 부근의 샌드 아티스트
세인트 폴 교회와 그 앞의 노천 카페
멀리 보이는 프랑크푸르트의 상징 카이저돔(프랑크푸르트 대성당), 마인강(라인강의 지류)
뉴스에 가끔 나오는 유럽 중앙은행, 저희가 시간을 보낸 프랑크푸르트 역사 박물관 외벽
독일의 대표적 봄 알리미, 크로커스가 피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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