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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04. 2021

놀이터로 모험을 떠나자!

북부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모험 놀이터

마스크를 쓴 일상을 지내온 지도 2년을 꽈악 채워가고 있네요. 미국은 성인 백신에 이어서 5-11세 백신 접종도 시작하여 한시름 놓고 있었는데......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네요. 아무쪼록 이번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를 기도해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상으로의 온전한 복귀를 기대하며 아이들이 안전하고 그리고 신나게 놀 수 있는 미국의 특별한 놀이터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왼쪽에 샌프란 시스코 오른쪽에 UC 버클리가 보이지요-

제가 살고 있는 북부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는 샌프란 시스코입니다. 이 지역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학교가 두 군데 있는데요. 샌프란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면 스탠포드 대학교가 있고요. 샌프란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가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가 있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놀이터는 UC 버클리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바닷물이 들어오는 만(Bay)을 마주보고 있어 경치가 기가 막힌 해안정박소(Marina)에 위치한 놀이터예요.



파노라마로 촬영한 사진을 보시면 놀이터 옆으로 물가가 펼쳐져 있어요 (우) 놀이터 옆에 해안가


이 놀이터가 특별한 이유는 멋진 경치 덕분이 아니라, 바로 전형적인 놀이터가 아닌 '모험 놀이터 (Adventure Playground)'라는 컨셉 덕분이예요.


그렇다면 모험 놀이터는 어떤 곳일까요?

'모험 놀이터(Adventure playground)'는 '폐지 놀이터(Junk playground)'라고도 불리는데요. 이 아이디어는 20세기 초 나치의 지배하에 있는 덴마크에서 시작되었어요. 국내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유행한 컨셉인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생각보다 역사가 길어서 깜짝 놀랐어요.


덴마크의 조경가 쇠렌슨(Carl Theodor Sørensen)은 아이들이 전형적인 놀이터에서 뿐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공간에서 노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얼마나 다양하냐면 [시골 지역 아이들을] 보니까 기존에 위험하고 지저분해서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공사판이나 재활용 처리장에서조차.......어라?!!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게 잘 놀더라는 거예요!!


그런 장난감들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엇에 홀린 듯이, 또는 그냥 못 견디게 지루해하며, 덜덜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장난감, 흔들흔들 걸어다니는 장난감, 빙글빙글 돌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장난감 따위를 몇 시간이고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결국 상자 몇 개, 찢어진 식탁보, 두더지가 쑤셔 놓은 흙더미, 조약돌 한 줌만 있으면 되는 옛 놀이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 놀이를 할 때면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하엘 엔데 <모모> p.102


1931년, 그는 도시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시골 아이들의 경험, 넓찍한 곳에 여러가지 자재들을 널어놓고 아이들이 스스로 창의적, 독립적으로 놀이를 만들어가는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아이디어에 불을 지피게 되어요.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난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43년 '폐지 놀이터'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덴마크의 건축가 단 핑크(Dan Fink)와 함께 덴마크 코펜하겐 엠드럽(Emdrup) 주택 단지에 최초의 폐지 놀이터 만들어내지요.

  

엠드럽 폐지 놀이터 (출처: http://glasgowhousing.academicblogs.co.uk/assemble-baltic-street-playground/)


이후 영국의 조경가이자 아동 인권가인 마조리 앨런 여사가 덴마크 엠드럽 놀이터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자신의 나라에도 이러한 아이디어를 들여오게 됩니다. 이후 청년 운동가들(Youth Workers)들의 지지와 함께 영국의 런던 곳곳에 전쟁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장소들을 중심으로 '모험 놀이터'가 세워집니다. 전후 기간 전쟁의 무자비한 흔적들을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바꾸어 치유와 저항의 의미를 살리고자 하였지요. 덴마크에 이어 영국, 그리고 유럽 각지로 모험 놀이터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현재 1000여개의 모험 놀이터가 세워지고 독일 한 나라에서만 세워진 모험 놀이터가 400여개라고 합니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1979년 세타가야의 하네기모험 놀이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400여개의 단체가 모험 놀이터 만들기에 관여하고 있다고 해요. 국내에서도 2016년부터 순천시의 기적의 놀이터를 중심으로 모험 놀이터가 곳곳에 세워지는 추세를 발견하여 반가웠어요.


미국에도 일찍이 모험 놀이터가 세워지긴 했는데 유럽이나 일본처럼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어요. 여기 놀이터는 버클리 시(City)에서 관리를 하지만, 보통 이런 실험적인 놀이터는 비영리 단체가 관리해서 재정 문제로 문을 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땅덩이가 엄청나게 커다란 미국이지만 (달랑?)  9개의 모험 놀이터가 있다고 해요. 이 글에서 소개해드릴 놀이터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9년 미국에서는 2번째로 세워졌던 모험 놀이터입니다.


코로나 시대 놀이터 운영 방침

코로나로 인해서 현재에는 토요일,일요일에만 운영되고 마스크 착용이 요구되고 사회적 거리 제한이 시행되고 있어요.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두기는 유연하게 권고하는 반면 방문 인원은 아주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었어요.



25명은 금요일까지 온라인 사전예약으로 받아두고요. 나머지 25명 (+@)은 당일날 선착순 방문으로 1시간 세션에 보호자들 포함하여 총 50명으로 제한합니다. 온라인 예약없이 당일 방문으로 가실 경우, 원하는 시간에 입장을 못하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옆에 있는 일반 놀이터에서 슬렁슬렁 놀다보면 다음 세션 예약 리스트가 금방 열리니까요. 보통 30분 전에 예약 리스트가 열리니까 애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부모님들은 시간 확인 하시고 예약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두시면 됩니다. 시간이 되면 놀이터 관리하시는 자원봉사자께서 예약 리스트에 올린 이름을 호명하고 인원을 확인하고요.


놀이터 들어서자마자 맨발로 뛰어노는 건, 이곳에서 노노노!

입장하는 그룹에서 보호자 1명이 이곳에서 일어날 사고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도록 본인과 동반 미성년 자녀에 대해서 Waiver 서류에 서명을 해야해요. 미국에서는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경향이 강한데요. 키즈카페나 트램폴린/방방장 이런 데에서도 입장 전에 꼭 이런 서류에 서명해야 해요. 이 놀이터에는 특히 못, 망치, 톱 등 위험 요소가 아주 많으니까 이러한 절차가 당연한 듯 합니다. 그리고 마스크와 더불어 항시 신발 착용은 필수랍니다.  


자, 이제 입장 절차를 마쳤으니 본격적인 놀이공간을 살펴볼까요?



모험 속으로, 고고고!




놀이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플레이 리더들이 대기하고 있는 작업소 형태의 카운터가 보여요. 어린이들에게는 평소에 허락되지 물건들, 그리고 여자인 저도 평소에는 쓰지 않는 물건들, 망치나 톱이 잔뜩 보여서인지 어른인 저도 뭔가 금단의 구역에 온 것만 같이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카운터에서는 필요에 따라 앞치마(작업복), 물감과 붓, 혹은 못(한번에 3개씩)을 가져갈 수 있어요.


(좌) 작업도구가 담겨있는 통 (가운데) 프로젝트를 위한 다양한 재료들 (우) 플레이 리더의 도움으로 클램프와 톱을 사용하여 나무를 자르는 중

카운터 앞 쪽으로는 작업도구들을 모아놓은 통이 여러개 모여 있어요. 통마다 톱, 망치, 나무 고정해주는 기계(클램프)를 가지고 자유롭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어요. 놀이터 주변으로 나무 판자도 잔뜩 쌓여있어서 작업하고 싶은 걸 골라오면 되고요. 작업물은 집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아이들의 프로젝트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 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놀이터 어느 곳에나 탕탕탕 못질해도 되고, 아무 곳에나 슥슥슥 색칠도 가능합니다! 자유롭게 자기 마음 가는대로!  


안전 요원이기도 한 플레이 리더들은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만 다가오는 소극적인 보조자의 역할을 합니다. 이 놀이터의 주체는 바로 아이들이 되어야 하니까요. 저희 첫째 아이의 경우, 클램프 쓰는 방법을 몰라서 옆에 있는 플레이 리더에게 물어보았는데, 친절하게 사용법을 알려주었답니다.  


열심히 놀이터를 만들어가는 아이들 *주의사항: 따라 다니다보면 마르지 않은 물감이 묻을 수 있습니다 ㅋㅋㅋ


40여년간 이렇게 이 모험 놀이터의 모습은 아이들의 손길에 따라 변해왔을 꺼예요. 나무판이 덧대어지고, 없었던 계단이 생기고, 손잡이가 만들어지고, 다리가 생기기도 하고, 깃발이 그려지고, 색이 칠해지고......조그만 손들이 열심히 못질을 하고 붓질을 해서 만들어진 놀이터. 엉성한 구조물의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놀이터의 주인들인 아이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의 공간을 진심으로 애정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놀이터 곳곳에 40여년간 이곳을 지나간 아이들의 손길이 느껴져요!

하지만, 못질과 붓질만 하는 곳이라면 조금 심심하겠지요? 놀이터에는 '모험'에 걸맞는 특별한 기구들도 많았는데요. 앞서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구조물과 다리들이 있고요. 아이들이 올라탈 수 있는 거대한 거미줄, 타이어 구조물, 외줄타기 등이 있고요.

울 첫째 완전 신났지요-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짚라인(공중 하강 체험)인 듯 합니다. 이건 신체능력이 어느 정도 발달한 6세 이상, 보호자의 도움없이 탑승이 가능한 아이들만 탈 수 있어요. 어른도 탑승 가능한데, 저는 안 탔어요 ㅋ


짚라인을 타고 나면 출발지점으로 의자를 끌고 와서 다음에 탈 사람을 배려해주어요.

놀이터를 방문한지 몇 주가 지났는데요. 글을 쓰며 사진을 쭉 훑어보니 다시금 모험의 세계로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어요. 어른인 저도 이런데 그 순간 현장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이들이 (놀이)경험의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선구자적 역할을 해주는 모험 놀이터.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힘써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해외특파원들의 다른 글을 통해 모험 놀이터의 해외 사례를 더 찾아보세요!


영국 특파원 서화님의 모험 놀이터:

https://brunch.co.kr/@happydora79/33#comment


해외특파원 매거진에 속해있는 글은 아니지만 미국 특파원 선희님께서 작성하신 뉴욕의 모험 놀이터:

https://brunch.co.kr/@sunheean0305/15


독일 특파원 진민님의 동네 놀이터 소개글이예요. 곳곳에 모험 놀이터의 특색, 야생미(!)가 묻어나네요:

https://brunch.co.kr/@jinmin1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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