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민 Jun 07. 2022

꽃말

스물일곱 번째 시

2022. 5. 11.

이문재, ‘꽃말'

이문재 시집 <혼자의 넓이(2021)> 중에서


[꽃말]


나를 잊지 마세요

꽃말을 만든 첫 마음을 생각한다

꽃 속에 말을 넣어 건네는 마음

꽃말은 못 보고 꽃만 보는 마음도 생각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아예 꽃을 못 보는 마음

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

꽃을 못 보는 그 마음도 생각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꽃말을 처음 만든 마음을 생각한다

꽃을 전했으되 꽃말은 전해지지 않은

꽃조차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마음

마음들 사이에서 시든 꽃도 생각한다 




꽃말을 만든  마음,  속에 말을 넣어 건네는 마음.
 마음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마음속에 간질간질 봉오리 같은  생기는  같습니다. 현상만을 재빠르게 파악하는 것만도 힘이 드는 시절에, 이렇게  보이게 접어서 곡선으로 건네는 마음이라니. 여운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기호처럼 해석되는 향기겠지요. 마지막  줄의 향이 깊어서 여러  읽었습니다.    


꽃말까지 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색깔이나 꽃에 붙여놓는 이름 자체가 때로는 하나의 시 같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신비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

 

여기저기 살다 보니 영어 이름은 영어 이름대로, 독어 이름은 독어 이름대로, 한글 이름은 또 한글 이름대로 사람들의 깜찍한 생각이 엿보여 즐겁습니다. 이를테면 사립문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라는 뜻에서 문 둘레, 즉 민들레라고 이름 붙인 사람들과 삐죽삐죽한 잎사귀 모습이 사자 이빨을 닮았다고 꽃에다가 사자 이빨(dandelion(dent-de-lion), Löwenzahn)이라는 이름을 달아 준 사람들의 귀여운 생각 차이. 꽃의 생김새가 마치 봉(鳳)을 닮았다고 봉선화라는 상서로운 이름을 선물한 사람들과, 톡 터지니 함부로 만지지 말라며 Touch-Me-Not이라고 다정한 경고를 붙인 사람들의 마음. 같은 꽃을 두고 하얀 눈을 떠올리기는 했는데, 눈으로 만든 작은 종(Schneeglöckchen)으로 보았던 사람들의 고운 눈과,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처럼(snowdrop) 보았던 사람들의 맑은 눈.

독일의 봄도 꽃들이 알려주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봉선화는 찾기가 어려워서 민들레와 설강화만 가져왔어요. 이제 벌써 여름의 초입이지만, 이 글을 썼을 당시에만 해도 동네에 민들레가 가득한 공터가 있었거든요. 노란 금화가 가득한 동화 속 풍경처럼 얼마나 놀랍고 예쁘던지요.

민들레 꽃말은 감사와 행복이라고 합니다. 사랑점을 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랑의 신탁'이라는 꽃말도 있다고 하네요.

설강화는 독일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꽃입니다. 민들레보다 개나리보다 훨씬 먼저, 아직 날이 추울 때 하얗게 피어요. 고개를 드는 법이 없는 수줍은 아이들인데, 조용히 무리 지어 핀 앙증맞은 모습이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습니다. 이 꽃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작가님이 계셔서 찍어뒀던 사진인데 이렇게 여기에도 올려보네요. 하얀 눈이 내렸다가 이렇게 작은 눈종이 울리면 눈이 녹고 봄이 오나 봅니다.  

얘가 우리말로 설강화라고 부르는 Schneeglöckchen, 혹은 스노우드랍이에요. 여러분이 보시기엔 눈이 내리는 것 같나요, 아니면 눈으로 만든 작은 종 같은가요.

최근에 예쁘다고 생각한 색깔의 이름은 훈색이에요. 주로 멀리 저녁노을이 질 때 하늘에 비추는 분홍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연분홍색에 노란빛이 더해진 색을 말한다고요. 아이들 이름을 연두와 파랑이라는 예쁜 색이름으로 지은 후배가 색깔 이름이 352개나 수록된 토실토실한 책을 선물해 주었거든요. 거기에서 발견하고 가장 좋았던 이름입니다.

이런 거겠죠? 저녁 산책길에 훈색이라는 이름도 모르고 찍었던 사진들.

다양성을 의미하는 걸로 우리는 무지개색이라는 합의된 기호를 쓰곤 하죠. 그런데 그저 일곱 가지 색으로 정의하기엔 세상의 색들이 얼마나 더 다양하고 무궁무진한가, 눈에 보이는 이토록 많은 색을 열 가지 남짓한 카테고리 안에 넣어서 표현해 온 나의 시선은 얼마나 무신경하게 경직된 것이었나 하는 깨달음을 그 책을 통해 얻었습니다. 그 책 안에서는 일상에서 무심히 곁에 두었던 사물들,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이며 채소며 과일들, 동물의 털과 광물들이 내뿜는 영롱한 빛,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에서 피어나는 잎이며 열매들이 모두 저마다 고유의 색을 담고 있었어요. 특히 머리 위에 놓여있는 하늘에는 세상의 모든 색이 다 담기는 듯합니다.


세상의 색을 인지하는 단어를 늘리는 일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는 일이고, 일상에 좀 더 다양한 색감으로 생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색을 가진 만물로 들어찬 세상을 바라보면 나라는 인간의 무채색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요.


책 속에는 꽃색도 참 많았습니다. (빨강에 자주가 더해진) 동백꽃색, (빨강에 노랑이 더해진) 참나리꽃색, (약간의 흰색이 더해진 빨강인) 장미색, (분홍에 하양이 더해진) 벚꽃색, (짙은 누런색에 붉은색이 더해진) 치자색, (노랑에 등색이 더해진) 금잔화색, (밝은 노랑에 주황이 더해진) 민들레색, (맑은 노랑을 띤) 유채꽃색, (흰색에 미색이 더해진) 백합색, (보라에 파랑이 더해진) 제비꽃색, (탁한 자주의) 창포색, (분홍에 연한 보라가 더해진) 진달래색, (자주에 밝은 분홍이 더해진) 모란색, (보라에 밝은 회색이 더해진) 무궁화색, 정말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의 색이름이 꽃 속에 들어앉아 있었어요. 이렇게 세상 색의 이름도 되어주고 또 안에 전하고 싶은 말도 품고 있는 꽃이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귀한 존재인지요.


시인은 누군가에게 나를 잊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꽃 속에 마음을 접어 넣었나 봅니다. 그러니 꽃말은 못 보고 꽃만 보는 마음, 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서 아예 꽃도 못 보는 마음, 꽃조차 전하지 못한 마음, 그리고 그 마음 사이에서 시드는 꽃의 모습이 하나하나 선명히 보였겠지요. 이렇게 마음이 시로 졸졸 흐를 거면 수줍어도 또박또박 나를 잊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라도 당신 눈에 보이는 곳에 슬쩍 놓아둘 테니 부디 알아봐 달라고 손을 모으고 있는 그 마음.

 

더불어 그런 문장으로 내가 기억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를 꽃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나의 존재 위에 어떤 문장이 지배적으로 덧씌워지는 꽃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그런 마음이요. ‘나를 잊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물망초도, 사랑 따위 믿지 않는 붉은 장미도, 지극히 이타적인 수선화도, 달님을 바라보고 싶은 해바라기도, 나에게 말을 씌우지 말고 그저 침묵한 채 꽃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꽃도 있을 테니까요.




+
알아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커버 사진이 바로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망초입니다. 저는 꽃이 참 좋은데, 이것이 식물의 생식기관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끔 움찔할 때도 있어요. 으히히. 이 마지막 문장은 안 붙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굳이 붙이는 게 저의 색깔인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