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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Sep 13. 2022

스밈

서른네 번째 시

2022. 8. 1.
장세정, ‘스밈'

시집 <전봇대는 혼자다(사계절(2015)> 중에서


[스밈]


배추흰나비 한 마리

세상을 날 확률 100분의 1


말썽꾸러기 용재

세상에 올 확률 2억분의 1


여름날 유채밭에서 놀던 100분의 1이

집에 가던 2억분의 1 손등에 내려앉았다


2억분의 1이 걸음을 뚝 멈추었고

100분의 1은 살풋 날개를 오므렸다


햇살이 숨을 참고

바람이 몸을 낮춘 오후


2억분의 1 속으로 100분의 1이

100분의 1 속으로 2억분의 1이


스몄다

스미었다





불가에서 인연이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 옷깃이 스치려면 필요한 인연을 세는 단위가 ‘겁’입니다. 겁은 무려 우주의 시간을 재는 단위예요. 한 우주가 개벽해서 다음 우주가 개벽할 때까지의 시간이니, 단위에서부터 이미 아득해집니다. 어릴 때 어린이 불교학교에서(이런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커다란 바위를 백 년마다 한 번씩 비단 옷자락으로 쓸어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도 겁은 아직 끝나지 않는 거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500겁이 되어야 옷깃을 스치게 된다니, 그야말로 겁이 날 지경입니다.


그저 나비 한 마리가 우연히 꼬마 손에 앉았다가 가는 찰나, 시인은 그 만남이 얼마나 우주적인 것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우리는 흔히 귀한 인연을 만날 때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운명적이었는지를 논하며 가슴 벅차하곤 하잖아요.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그렇듯이요. 하지만 숨어있는 무수한 확률을 손에 쥐고 돌아보면, 세상천지에 연인 같은 운명적인 만남이 아닌 존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내 주위에 귀하지 않은 것이 단 한 개도 없죠. 하지만 이런 사실은 아주 가끔씩만 바늘에 찔리듯 깨닫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그렇게 성심껏 귀하게 여기며 살기에는 제 그릇이 너무 작아서요.


이 어마어마한 '확률'에 덧붙여, 우리가 겹겹이 쌓아온 '의지'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시를 필사했던 8월의 첫날, 저녁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의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은 사실 엄청난 확률과 의지의 결합이구나. 즉 시에 언급된 확률뿐 아니라, 인류가 쌓아온 의지가 겹겹이 쌓여 나의 생활을 이루고 있다는 거요. 한국인이 독일에 와서 위협받지 않고 평안히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사람들, 여자가 민소매와 반바지를 일상복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싸워온 무수한 사람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의지와 정성이 제 평범한 삶에 스며있는 거죠. 이렇게 보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이 세상에 평범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가끔 인류애가 바닥날 때 오늘날의 우리에게 평안을 선사한 이름 모를 무수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스미다’라는 말의 어감이 좋아요. 특히 “스몄다, 스미었다”로 말을 살짝 늘려서 여운을 주는 마지막 부분이 참 좋더라고요. 화선지에 먹물 한 방울 똑 떨어져서 스미는 것처럼, 먹물이 확 번지다 속도가 풀리면서 천천히 종이에 스미는 그런 느낌. 이런 표현은 시에서만 볼 수 있으니까요.


‘스며든다는 것’에 대한 두 혜령 님의 단상이 참 좋아서 여러분께도 소개합니다.


묻은 것은 닦아내고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데, 스며든 것은 그럴 수가 없지요. 용재와 나비는 서로 스며들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진정한 만남은 그런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서 어떤 존재를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바꿔놓는 것.

그리고 그 스밈의 순간에 대한 묘사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걸음을 뚝 멈추고, 살풋 날개를 오므리고, 햇살이 숨을 참고, 바람이 몸을 낮추고... 아아, 두 존재뿐 아니라 만물이 숨죽이는 만남의 순간에 마음이 몽글몽글 설레네요.

(이혜령)


어떤 사람은 나를 부드럽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나를 깨닫게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단순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나를 춤추게 하죠.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나는 내가 살아가는  아니라 타인을 통해 내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오롯이 나도 아니고, 타인도 오롯이 별개의 존재가 아닌 거예요. 스미고 스며들어서 서로가 서로를 가꾸고 돌보는 경계 없는 하나가 아닐까.

(김혜령)


시가 스며든 일상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당신이 내게 스며든 삶을 살 수 있어서 기쁜 날.

모두에게 예쁘고 청량한 것들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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