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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Aug 30. 2022

서리

서른세 번째 시

2022. 8. 5.

이재무, ‘서리'

시집 <즐거운 소란(2022)> 중에서


[서리]


행상 트럭 가득 실려 있는 참외들을 보면

주린 시절 서리 본능이 몰래 눈을 뜨네.

마음이 고플 때도 본능이 살아났지.

사랑을 서리하여 나는 살아왔네.

너를 훔치고, 훔치다가 마침내 만인을 훔치면

예수와 석가처럼 영생을 살 수 있지.

서리는 서럽고 달콤한 본능

참외를 보면 어질어질 노랗게 추억이 떠오르네.



앞줄을 반듯하게 맞추지 못하는 것은 지병인가

배가 고플 때는 먹을 것을 훔치고, 마음이 고플 때는 사랑을 훔치고.

가지지 못한 것을 몰래 훔치는 일.

서리라는 건 정말 서럽고 달콤한 본능입니다.


사랑이란 게 훔치고 싶다고 해서 훔쳐지는 게 아닐 테니, 아마도 그저 마음속에 훔쳐다 놓고서 그 고픈 마음을 달랜 거겠죠. 상상 속에서는 만인을 다 훔칠 수 있고, 영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어떤 한 사람을 훔치려면 세상을 다 훔쳐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어질어질 어지러운 것은 무엇이 고파서인지,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추억이 현기증처럼 소환되는 것인지.

사실 사랑도 허기도 회상도 배덕도 모두 하나같이 어지러운 일이니까요.


참외가 노랗다는 건 신호등의 노란불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어요. (자동적으로 깔리는 배경음악이 있으시죠? 가수 이무진도 어지러워 그저 눈앞이 샛노랄 뿐이라고 노래합니다.)

파란불까지는 아니지만, 위험 신호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인 것.

노란불에 서지 않고 지나갔다고 해서 경찰이 잡진 않죠.

서리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훔치는 입장이든 당하는 입장이든 어디까지나 장난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행동이라서, 완전히 빨간불은 아니니까요.


서리.

완전히 떳떳하지는 못해도 서로 눈감아주는 것.

서리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사회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말고도 이런 비슷한 행위를 단어 목록에 가지고 있는 사회들은 어떤 곳인지도 궁금하고요.

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약간의 느슨한 공간이 우리를 숨 쉬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세월은 좀 더 배고프고 힘들었어도 서리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통용되었는데, 이제는 많은 수치들이 풍요를 말하지만 오히려 서리는 더욱더 용인되지 않는 빡빡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단어가 오래오래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요.




+

같은 필사 모임에 계신 주정현 님의 단상이 좋아서 덧붙입니다.


예수와 석가모니를 '만인의 마음을 훔친 자'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제가 종교인이 아니라서 그런가 가족이나 연인에 대한 절절하고 깊은 사랑의 마음에 비해 종교적 사랑은 좀 더 서리에 가까운 마음인 것 같고요. 가톨릭이 모태신앙이지만 저는 나일론 신자라 제 신심이 깊어지는 건 그야말로 '마음이 고플 때'인데요, 현실의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마음을 어떤 절대자에게서 찾고자 할 때 아, 나는 사랑을 서리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제가 어린이가 된 거 같고, 그분은 옆집 아저씨처럼 슬쩍 눈감아주시며 다 이해해주실 것 같고 그런 마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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