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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Dec 06. 2022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서른일곱 번째 시

2022. 9. 14.

김경주,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물고기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은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내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 일을 오래 슬퍼하다 보니


물고기는 침을 흘리며

구름으로 흘러가고

햇볕은 살이 부서져

바람에 기대어 떠다니고


꽃은 하늘이

자신을 버리게 내버려 두었다


슬픔이 내 몸에서 하는 일은

슬픔을 지나가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


자신을 지나가기 위해

슬픔은 내 몸을 잠시 빌려 산다


어린 물고기 몇 내 몸을 지나가고

구름과 하늘과 꽃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슬펐던 이유다


슬픔은 내 몸속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친다, 구름이 하늘에 흘러간다,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는 게 일상적인 표현인데요. 시인은 물고기가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이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이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고 합니다.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조그만 물고기와 구름과 꽃이 단번에 커지고 주체적인 의지와 생명력을 얻습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는 게 아니라 물고기가 물을 흘러가게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헤엄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흘러가게 한다.


구름이 하늘에 흘러가는 게 아니라 구름이 하늘을 흘러가게 한다.

우리가 생 속에 흘러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생을 흘러가게 한다.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 꽃이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우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저 바람이 흘러가게, 지나가게, 몸을 빌려줄 뿐이다.  


시의 앞부분과 달리 슬픔이 등장하는 부분은 부드러운 이해가 어려워 한참 머물렀습니다. 슬픔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나에게 종속되어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나와는 상관없이 그냥 주체적인 의지가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려니 그게 어려워서요. 슬픔이 내가 느끼는 게 아니라, 그냥 어디인가 홀로 존재한다고? 그런데 이해의 실마리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내가’ 그 일을 오래 슬퍼하다 보니, 물고기는 더 이상 물을 흘러가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구름이 되어 흘러가 버립니다. 햇볕은 살이 부서져 버린 모습으로(살이 부러진 햇살을 생각하자니 단번에 슬퍼져 버리네요), 바람을 흘러가게 하는 게 아니라 바람에 기대어 부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꽃은 그저 단절되어 스스로 소외의 길을 걷고요.


그러므로 시인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국 슬픔을 지나가게 두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나와의 연결성을 끊으면, 슬픔도 지나가게 할 수 있다는 것.

슬픔 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슬픔이 지나가게 몸을 빌려주고 길을 내주라는 것.

슬픔은 내가 낳은 나의 아이가 아니라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생명체 같은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

그렇게 잠시 몸을 빌려주고, 그렇게 슬픔을 한 번 앓고 나면 다시 나 스스로 물을, 하늘을, 바람을 흘러가게 하는 존재로 다시 설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슬픔을 지나가게 두는 것’이 말 그대로 그저 지나가게 두는 게 아니라는 것은 맨 마지막 문장에 슬프게 들어있습니다. 슬픔은 내 맘속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몸의 통증처럼 ‘내가’ 구슬프게 앓고 나야 그 슬픔은 나와의 연결을 끊고 바람이 되어 지나간다는 역설이 거기에 있습니다.


이 시를 앞에 두고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슬픔을 '생각한다'는 것은 좀 묘하구나 싶었어요. 슬픔은 온몸으로 두들겨 맞고 ‘느끼는’ 거라서 사실 그 슬픔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린 더 이상 그렇게 슬프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느끼게 되기 전에 이렇게 충분히 그 메커니즘에 대해 생각해 두면, 조금은 덜 아프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라고 9월에 글을 써두었는데, 덜 아프게 되는 그런 슬픔은 없더군요. 슬픔은 그냥 아픈 것이더라고요. 큰 사건일수록 말을 얹기가 조심스럽고, ‘내가 슬프다’는 말은 ‘슬프다’보다 ‘내가’가 드러나는 느낌이라 더 저어하는 마음이 생겨요. 슬픈 분들의 몸에서 슬픔이 천천히 지나가는 날이 부디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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