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번째 시
2023. 2. 2.
안미옥, ‘식탁에서'
시집 <온(창비시선 408)> 중에서
내게는 얼마간의 압정이 필요하다. 벽지는 항상 흘러내리고 싶어 하고
점성이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냉장고를 믿어서는 안된다. 문을 닫는 손으로. 열리는 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옆집은 멀어질 수 없어서 옆집이 되었다. 벽을 밀고 들어가는 소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게
다리가 네개여서 쉽게 흔들리는 식탁 위에서. 팔꿈치를 들고 밥을 먹는 얼굴들. 툭. 툭. 바둑을 놓듯
첫 연이 인상적이었어요.
편안한 일상의 공간에서, 그 일상의 점성에 대해 이토록 소박하고 우아하게 말할 수 있다니.
점성이 다해 버린 벽지.
닫혀 있어야 하는데 자꾸 열리려고 하는 냉장고 문.
아무리 단속해도 열리는 문이 꼭 마음 같죠.
머리로는 닫아야 하는 걸 아는데, 그래서 닫은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다시 슬그머니 열려있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안에 냉기를 가득 품고 있는 상황에서 문을 열고 나가 따뜻한 공기와 섞이고 싶은, 그렇게 온기를 희구하는 마음일까요.
냉장고를 믿어서는 안된다.
나를, 내 마음을, 이 약속을 그냥 믿어서는 안 된다.
흔들리고, 빗장이 풀리고, 흘러내리는 관계.
툭. 툭.
연결되어 있지 않고 바둑알처럼 툭 놓이는 관계.
옆에 있다는 게 살갑고 따뜻하게 서로 부비며 옆에 있는 게 아니군요. 옆집은 그저 "멀어질 수 없어서 옆집이 되었다"는 말이 시 속에서 다루는 관계의 방향성을 짐작케 합니다.
"믿어서는 안된다"는 원래 '안 된다'로 띄어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시인이 붙여서 쓴 의미도, 식탁 의자 다리도 '네 개'라고 띄어 써야 하는데 "네개"라고 붙여놓은 의미도 왠지 생각해 보게 돼요.
원래 '되다'와 상반되는 내용이라면 '안 된다'로 띄어 쓰고 '잘되다'와 상반되는 내용이라면 '안된다'로 붙여 씁니다. "먹으면 안 돼?"라는 문장을 생각해 보면 쉬워요. 뜻을 뒤집으면 '먹어도 된다' vs '먹어도 잘된다'가 되죠? 의미상 전자가 적절하니까 띄어서 써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제가 띄어쓰기를 격렬하게 잘하고 그런 인간은 아닙니다. 띄어쓰기는 정말 인류... 가 아니라 한국인의 최대 난제인 것 같아요.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냉장고를 믿으면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섬세한 이유라도 담아둔 걸까요.
다리가 넷이면 안정적으로 받쳐줘야 하는데, 시인은 “다리가 네개여서 쉽게 흔들린다”고 합니다. 이 식탁 다리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의미를 가진 걸까요? 아니면 처용가의 "가라리 네히어라"에서의 그 다리 네 개의 의미라도? 네개, 네게, 내게, 이렇게 읽어보기도 합니다.
흔들림은 식탁 다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부엌이란 공간 자체의 바닥이 기울었든, 가난이 스며든 식탁 자체가 낡았든 말이죠. 사실 이도저도 아닌데, 시인이 그냥 자유롭게 쓴 부분에 제가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생각을 고무줄처럼 늘여보는 게 시 읽는 재미 중 하나니까요.
점성이 없는 관계.
매끄러운 흑과 백의 바둑돌 놓듯 툭툭 말을 던지고 존재하면서, 알록달록 끈끈하게 섞이려고 하지 않는 관계.
흔들리는 식탁을 외면하고 그저 팔꿈치만 들고 밥을 먹는 관계.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간단히 피하려고 하는 너와 나.
자, 이제 압정을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요? :)
여러분께는 벽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켜 줄, 튼튼하고 뾰족한(!) 압정이 있나요?
덥고, 힘들고, 사건 사고도 많은 여름입니다.
무탈히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미국에 있어요. 시아버님 고희를 맞아 온 가족이 모였거든요. 든든하게 놓인 다정한 식탁에서 마음의 점성을 높이고, 오랜 시간 버텨줄 압정들도 충분히 얻고 있어요.
새로운 소식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내일부터 브런치에서 새로운 기능을 선보이면서 몇몇 작가들에게 파일럿으로 시범 연재 제안을 주셨는데요.
저는 <독일에서 전하는 단어들>이라는 제목으로 화요일 연재를 맡게 되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매주 월요일에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새로 연재할 글들은 저의 다음 책 원고이기도 해요. 함께 보고 싶은 독일어 단어를 골라 그 안에 든 의미를 살펴보고, 그런 단어들을 유리구슬 삼아 양쪽 사회를 비춰보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다음 회차에 프롤로그 올리면서 정식으로 소개드릴게요.
새로 만든 매거진에서 일정 회차 이상 연재해야 해서, 당분간은 여기에 집중하게 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매거진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그럴 리가) 미리 양해 부탁드릴게요.
브런치에 ‘응원하기’라는 기능이 새로 생긴다고 합니다. 고민은 좀 있었지만 해보기로 했고요. 다른 부분에 연연하지 않고 일단은 하던대로 제 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고, 풍경이 약간 바뀌는 거겠지 생각하고 있어요. 이 기능이 부디 이곳의 풍경을 해치지 않고 건강히 잘 안착하기를 바랍니다.
새 연재는 늘 설렙니다.
정성껏, 성실히 써 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