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민 May 28. 2024

나무의 꿈

쉰아홉 번째 시

2023. 8. 23. 

손택수, ‘나무의 꿈' 


[나무의 꿈]


자라면 뭐가 되고 싶니

의자가 되고 싶니

누군가의 책상이 되고 싶니

밟으면 삐걱 소리가 나는 계단도 있겠지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다락방

별빛이 들고 나는 창문들도 있구나

누군가 그 창문을 통해 바다를

생각할지도 몰라

수평선을 넘어가는 목선을 그리워할지도 몰라

바다를 보는 게 꿈이라면

배가 되고 싶겠구나

어쩌면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아궁이 속 장작으로 눈을 감을지도 모르지

잊지 마렴 한 줌 재가 되었지만

넌 그때도 하늘을 날고 있는 거야

누군가의 몸을 데워주고 난 뒤

춤을 추듯 피어오르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다만 네 잎사귀를 스치고 가는

저 바람 소리를 들어보렴

너는 지금 바람을 만나고 있구나

바람의 춤을 따라 흔들리고 있구나

지금이 바로 너로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도토리가 생각나는 시였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능태(可能態)'와 현실태(現實態)’라는 철학용어를 언급할 때 도토리가 등장해요. 가능태는 '사물이나 존재가 지니고 있는 내재적인 힘이나 능력', 현실태는 '사물이나 존재가 자신의 본질을 완전히 실현한 상태'를 말하는데요.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얘기는 아닙니다. 동그란 도토리 하나와 참나무 한 그루를 떠올려 보시면 돼요. 작은 도토리 안에는 참나무가 될 가능성이 들어있고(가능태), 도토리가 참나무가 됨으로써 도토리의 고유한 본질이 완전히 발휘된 상태가 현실태죠. 

   이 시에서는 나무라는 단어 자체가 또다시 가능태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네요. 의자, 누군가의 책상, 삐걱 소리가 나는 계단,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다락방, 별빛이 들고 나는 창문들... 시를 읽으면 왠지 엄마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요.
 아기 나무의 꿈을 엄마 나무처럼 응원하고 싶고 동그란 나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지는 시. 특히 도토리 같은 (극사실주의적 헤어스타일) 저희 아이들을 떠올리며 읽게 되는 시였습니다. '가능태'라는 철학 용어를 시적인 언어로 한 마디로 표현하면 '꿈'이 아닐까요?

 

   "너는 꿈이 뭐야?" 하고 물어주는 사람이 곁에 계신가요? 제 경우엔 성인이 된 후로는 저렇게 물어봐 준 사람이 열 명이 채 안 되는 것 같아요. 성인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꿈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되면 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왠지 성인에게는 잘 묻지 않게 되는 질문. 아이들에게만 묻는 질문이 아니라, 계속 나에게도 묻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물어주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조금 편해지면, 그 사람의 꿈과 그 사람의 낙이 제일 궁금하더라고요. (그간 깨닫지 못했는데 이 문장을 써놓고 보니 저는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궁금해하는 거네요.)   


   이 시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사실 마지막 부분이었어요. 지금이 바로 너로구나. 나중에 그 무엇이 되든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지금 네 모습 그대로 너라는 것. ‘미래의 어떤 이상적인 모습으로서의 나, 무엇이 된 나’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 말이죠. 꿈은 중요하지만 그 꿈이 현실의 나를 그보다 못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는 것. 의자나 책상, 배나 장작이 되는 것도 좋지만 꿈이 없어도,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지금 살아서 춤추고 있는 네 모습 그대로 꿈처럼 아름답다고요.  


   마지막으로 야무진 꿈을 가진 독일의 쓰레기통을 소개합니다.
   "나는 커서 쓰레기 차가 될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