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민 Sep 03. 2024

9월도 저녁이면

예순한 번째 시

2024. 9. 2. 강연호, ‘9월도 저녁이면’
시집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중에서


[9월도 저녁이면]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괄호 속의 숫자놀이처럼

노을도 생각이 많아 오래 머물고

하릴없이 도랑 막고 물장구치던 아이들

집 찾아 돌아가길 기다려 등불은 켜진다

9월도 저녁이면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푸른 산그늘 골똘히 머금는 마을

빈집의 돌담은 제풀에 귀가 빠지고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살갗의 얼룩 지우며

저무는 일 하나로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밥상 물리고 이부자리를 편다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

손바닥에 하나 더 새겨지는 손금 같은 것

지난 여름은 어떠했나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오랜만입니다. 제 글이 뜸했지요. 어쩌다 보니 이쪽저쪽의 사정이 몰려 단행본 두 권을 동시에 마감하는 극악무도한 8월을 보냈답니다. 한 권은 출간 마감, 다른 한 권은 초고 마감. 보통은 화이트 와인을 총명탕처럼 마시면서 글을 쓰는데, 마감을 못할까 봐 제가 글쎄 절주를 했다니까요. (스스로 대견함 :D)


   다행히 조금 넉넉하게 잘 마무리하고 8월을 보내는 마음이, 꼭 이 시의 첫머리에 나온 이분쉼표의 느낌이었습니다. 4분의 4박자의 일상에서 반 마디는 여전히 바쁘겠지만, 이제 반 마디 정도는 조금 느긋할 수 있겠다. 이제 조금은 느긋하게 주변도 챙기고, 꼭 이분쉼표같이 생긴 모자 눌러쓰고 산책도 더 많이 해야지.   


   8월 말에 마감을 마치자마자 다시 시작한 것이 시 필사입니다. 고맙게도 예전에 같이 필사 모임을 하시던 분들이 그 자리에서 계속 시를 나누며 동그랗게 걷고 계셨고, 돌아온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어요. 그렇게 복학생(...)이 되어 9월에 처음으로 받아 든 시입니다. 9월의 첫머리에 여기 계신 분들과 나눠도 참 좋겠다 싶어서 가져와 봤어요.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오래간만에 문장을 주워 주머니에 넣는 이 뿌듯하고 간질거리는 마음.
  

   9월이라는 단어를 손에 쥐어봅니다. (8월은 쥐어볼 새도 없이 끌려갔어요.) 9월만이 주는 느낌이 있지요. 직선으로 뜨겁게 내달리는 것만 같던 여름이 속도를 약간 늦추고 기어를 바꾸는 그 미묘한 순간은 꼭 9월 어딘가에 들어 있으니까요. 하늘이 예고도 없이 저 위로 높아져 있는 것을 보고 어, 하게 되는 순간. 뭔가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출근길 아침의 모든 이들이 함께 감각하는 순간. 그렇게 잠시 멈칫하는 순간에 뭔가가 조용히 새어 나와 '습자지에 물감 번지듯' 세상도 우리들도 촉촉하게 물들이곤 합니다.


   아직은 찬란하지만 ‘저무는 일 하나’가 남은 시간. 한 마디의 반절은 노래가 지속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쉼표로 한 호흡 내뱉게 되는 이분쉼표의 시간. 가쁜 호흡의 8분쉼표나 16분쉼표가 아니라 제법 긴 숨을 내쉴 수 있는 2분쉼표의 시간. 시인은 그게 9월이라고 말합니다.


   독일에서 9월은 지독한 겨울이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누리는 좋은 시절입니다. 독일은 겨울이 길고 어둡거든요. 10월 중순부터 4월까지 많이 춥습니다. 부활절이 지나면 날씨도 부활하듯 한기가 조금 누그러지는데, 사시사철 수족냉증이 제철인 중년 여성으로서 겨울은 나이가 들수록 한 뼘씩 더 두려워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항온성을 상실한 양서류형 인간이 어쩌다 여기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한국처럼 격하게 덥고 격하게 추운 건 아니라는 사실에 작은 위로를 받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제게는 신의 은총인 전기담요가 있으니까요.


  여름이 오로지 삶만을 감각하는 왕성한 시간이라면, 가을은 삶의 시간과 죽음의 시간 사이의 영토를 살금살금 산책하게 되는 시간인 듯합니다.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요. 그래서 시인도 "9월도 저녁이면 삶이란 죽음이란/ 애매한 그리움이란"이라고 썼겠지요.  

   

   1년 중 9월은 하루로 치면 노을이 지는 시간 같다고 생각해요. 이곳에는 실제로 밭에 탐스런 주황빛 호박이 널리는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도 땅에도 온통 노을이에요. 9월 자체가 저녁 같다고 생각하는데, 시인은 특히 그 둘을 이어 붙여 9월의 저녁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머금는 시간, 애매한 그리움의 장면들을 하나씩 보는 것이 좋네요.    


   시에서 여름이 형상화되는 모습들이 늘 엄청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황홀한 불꽃놀이 혹은 벅찬 만조가 지나고 난 뒤의 시간이, 왕성하게 우거지고 익어서 터지고 너와 내가 뜨겁게 부둥켜안았던 시간의 뒤가 살짝 헛헛하고 글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월은 이번 여름에 얻은 생의 자국을, 그 얼룩과 손금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 되어야겠네요.


   9월도 저녁이면 죄다 글썽해진다.

   무엇이 여러분을 글썽하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9월은 그렇게 누군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네요. 헛헛함이 물감 번지듯 번져가더라도 작은 행복과 감사로 글썽해지는 9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여름에 얻은 것들로 글썽해지는 9월이면 좋겠네요. 깊어지는 산그늘만큼 깊어지는 생각을, 오래 머무는 노을처럼 오래 머금어 보시기를요. 안부를 전하며 제가 있는 곳의 9월의 저녁을 보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를 만나는 새로운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