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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12. 2021

무서운 적응력

뭐야, 잘할 거면서!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2020년 여름에 작성한 것임을 밝혀 둔다.


아침형 인간임을 자부했던 나의 하루는 달라진 지 오래이다. 8시가 되어서야 몸을 뒤척이며 겨우 눈을 뜬다. 밤 10시가 되면 내려앉는 눈꺼풀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던 내가 새벽 1시, 2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요즘이다.

생각해보니 그때부터이다. 나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한 날. 2020년 3월 6일.

코로라 나는 엄청난 녀석이 2020년의 모든 풍경을 바꾸었고, 나는 회사를 떠났다. 계획대로라면 3월에 나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잠시 멈추고 사람들의 부러움과 응원을 받으며 떠나야 했다. 하지만 계절 감기인 줄만 알았던 코로나는 하늘길도 바닷길도 모두 막고 말았다. 녀석의 위협에 맞서 마스크로 얼굴을 감싼 채, 나는 여전히 이곳 서울에 머물고 있다.

2월까지의 나의 일상은 제법 순조로웠다. 물론 회사를 다니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이 고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매일 밤,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주말에도 게으름을 피울 여유는 없었다. 어학 공부, 입학시험 준비. 20여 년 만에 그토록 바라던 공부를 위해, 다시 학생이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대학원 합격자 발표가 있던 지난겨울 12월의 오후, 그 해 겨울 들어 최고의 한파라 떠들썩한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추운 줄을 몰랐다. 얼음물이라도 깨고 들어가고 싶을 만큼 신이 났다. 가슴이 뜨거웠다

새해가 되었고 동료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공부한 팁을 알려달라며 조용히 연락하는 상사도 있었다. 3월 첫째 주, 정든 사무실 동료들과 조촐한 송별회를 가졌다.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회사를 정리했다.

집에 돌아와 출국을 준비했다. 짐을 싸고,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하기 위해, 집주인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내 몸도 들어가는 커다란 박스에 짐을 넣으며 다가올 새로운 계절들에 대한 상상으로 행복했다.

하지만, 3월 6일. 생각지도 못한 뉴스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발행된 모든 비자에 대한 효력 정지가 발표되었다. 코로나 확산 위험에 따른 조치였다. 갑작스러운 조치로 사람들은 패닉이었다. 당장 항공권을 취소하고, 진행 중이던 이사 준비를 일단 연기했다.

 "이러려고 하나님이 사람 콧구멍을 두 개로 만들어 놨나 보다."

기가 막힐 때마다 우리 앞에서 농담하시던 중학교 때 선생님의 말이 절로 생각났다.


당초 대학원 입학은 4월 1일, 일본 현지의 무서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입학일은 22일로 연기되었다. 도쿄에는 유래 없는 긴급사태가 선언되었다. 코로나를 막기 위해 각 나라에서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코로나는 예상할 수 없는 속도로 퍼져갔고, 모두의 삶을 정지시켰다.

수업이 진행될 수 있을까! 출국은 가능할까? 걱정으로 잠을 뒤척이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결국 입학은 5월 11일로 연기되었다. 입국 금지는 풀리지 않은 채였다. 학교에서는 해외에서 들어오지 못하는 ‘학생들의 동등한 학습권 보장’을 강조하며 봄학기를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도쿄에 내려진 '긴급사태 선언'으로 '학교 캠퍼스 전면 출입금지'라는 엄청난 발표가 이어졌다. 도서관이며 식당, 강당 등 모든 시설 역시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 처음, 실시간 온라인 수업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매일 내 방의 pc앞에 앉았다. 줌(zoom)이라는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는 어느새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학교 홈페이지의 '마이 페이지' 코너에 들어가 새로 올라오는 공지를 확인하고, 수업자료들을 내려받아야 했다. 오로지 학교와 나를 잇는 것은 '인터넷' 뿐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가장 많이 접속한 웹사이트는 아마도 학교, 일본 외무성과 정부 기관의 홈페이지가 아닌가 싶다.

皆さん、初めまして。
金と申します。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이라고 합니다.

화면 속에 보이는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어색하고 쑥스러운 첫인사를 했다. 실시간 수업인 터라 수시로 보이는 내 얼굴은 부끄럽고 불편했다. 자꾸 고개가 숙여졌다.

"수업시간은 마음이 편해야 제일 좋은 거니까, 비디오를 꺼도 좋아요."

나와 같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한 교수님은 먼저 제안했다. 너도나도 얼굴을 가렸다. 나 역시 좋아하는 라다크의 파란 하늘 아래 풀을 뜯고 있는 양 떼 사진으로 전환했다. 하루는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본인 얼굴 외에 '고양이', '꽃', '와플', '강아지',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으로 도배된 화면을 보고 웃음이 터진 교수님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꽃밭에 동물들과 사람 한 명 뿐이네요?”

그분을 제외하고 다른 교수님들은 얼굴을 내미는 걸 '예의'라 여기셨다.

사람은 투덜대면서도 금세 적응하는 동물이던가! 인간의 적응력은 참 신기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불편하고 어색했던 온라인 수업이 어느새 편했다. 아침에 일어나 '전차(電車, 덴샤)'를 타러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집안 어디에서든 일어나 책상 앞으로 이동하면 나의 학교 생활은 시작되었다. 화면에 보이는 내 얼굴을 의식하느라 말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던 처음과 달리, 어느새 웃고 떠들며, 때론 턱을 괴고 수업을 듣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지도교수, 연구실 학생들과 직접 인사 한 번 하지 못한 채, 한 학기가 지났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계절이 지나고, 첫 방학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했다. 일본어로 발표해야 하는 터라 긴장이 컸던 수 차례의 세미나 준비를 하며 수없이 사전을 뒤적이고 또 뒤적였다. 그렇게 많은 새벽을 뜬 눈으로 맞으며 나는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 듯 신났다.

뭐야, 이렇게 적응 잘할 거면서.
뭐야 뭐야.
▲ zoom으로 진행한 수업의 한 장면. 화면 속의 내 얼굴을 마주하는 건 지금도 어색하다.
▲ 꾸미지 않은 누군가의 공간을 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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