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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10. 2021

#1. 어떤 시가 좋은 시냐고?

신경림   <오월은 내게>

신경림 선생님.

그 분과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왜소한 체격에 곱슬기 있는 머리카락, 여유 있는 재킷을 툭 하나 걸치고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말똥말똥 긴장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우리들을 멋쩍게 쳐다보시더니,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날이 아직 춥네요."     


그때까지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사진으로도 접한 적이 없었다. 칠판을 등지고 서 있는 우리 동네 아저씨 같은 선생님의 얼굴이 마냥 반갑고 신기했다. 저 작은 손에서 <갈대>,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엄청난 시들이 지어졌다 생각하니, 주름진 손이 요즘 말로 ‘금손’처럼 빛나 보였다.

 

빼어난 외모나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대신, 선생님은 늘 시로 이야기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때론 매서운 겨울의 날 선 바늘이 가슴 깊은 곳까지 닿아 무참히 찌르기도 하고, 가을밤의 서늘한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기도 했으며, 청보리 익어가고 앞산 뒷산에 뻐꾸기 우는 5월의 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 신경림 선생님. 이름만 보고 여성인 줄 짐작했다는 주변인들이 많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홍명근 블로그입니다']


막걸리를 드시면 강의 때보다 더 많이 들을 수 았었던 그분의 생각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시간이다.     


어떤 시가 좋은 시냐고?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냐고?
글쎄,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시가 뭘까요.
     

너무 유명한 시들이 많지만, <오월은 내게>는 선생님의 세상을 향한 온갖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참 좋아하는 작품이다. 지금도 정치적인 이념과 이데올로기, 지역의 경계로 나뉘어 해석하고 이용되는 그날의 5월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행동해야 할까.


앞 세대에게 늘 빚진 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늘 큰 물음을 던지는 5월. 몸은 여전히 움츠러들고 교정의 나뭇가지도 텅 비어 있던 3월의 설익은 봄날, '봄이 왔다'라고 사람들은 떠들어대지만, 나에겐 아직 봄이 아니던 그날처럼 이 땅의 5월은 아직 완전한 봄을 맞지 않았는지 모른다.


4월의 달력을 뜯으며 헛헛해진 마음, 지금도 학교 뒤 <이모네>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소년처럼 웃고 기다리실 것만 같은 선생님을 떠올리며 조용히 시를 읊어본다.




<오월은 내게>


                        - 신경림


오월은 내게 사랑을 알게 했고

달 뜨는 밤의 설레임을 알게 했다

뻐꾹새 소리의 기쁨을 알게 했고

돌아오는 길의 외로움에 익게 했다

다시 오월은 내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저잣거리를 메운 군화발 소리 총칼 소리에

산도 강도 숨죽여 웅크린 것을 보았고

붉은 피로 물든 보도 위에서

신조차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오월에 나는 증오를 배웠다

불 없는 지하실에 주검처럼 처박혀

일곱 밤 일곱 낮을 이를 가는 법을 배웠다

원수들의 이름 손바닥에 곱새기며

그 이름 위에 칼날을 꽂는 꿈을 익혔다

그리하여 오월에 나는 복수의 기쁨을 알았지만

찌른 만큼 찌르고 밟힐 만큼 밟는 기쁨을 배웠지만

오월은 내게 갈 길을 알게 했다

함께 어깨를 낄 동무들을 알게 했고

소리쳐 부를 노래를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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