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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10. 2021

#5. 쫓기는 새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그 동네가 재개발이 될 줄 상상이나 했겠어?”

“아니, 그래서 그 이불집 사장은 아파트를 두 채나 샀다는 게 사실이야?”    

 

길음동이 재개발 대상으로 선정된다는 소식에 서울이 온통 떠들썩했다. 학교에 가는 버스에 타면 아주머니들은 언덕을 따라 작은 상자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동네를 내다보며 수군거렸다. 강북에서도 발전이 더디기로 소문났던 동네. 지하철에서 “아저씨, 이 차 길음으로 가요?”라고 물으면 “아니, 이 사람아! 지하철이 어떻게 기름으로 가나! 전기로 가지!”라는 농담을 했던 지하철 4호선의 길음동. 그 동네에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파란색과 초록색의 지선, 간선 버스 체계가 아니었던 시절, 나는 대부분 361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지하철을 타면 길이 막힐 일도 없이 좋았지만, 버스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이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나의 통학 길은 엄청난 교통 정체를 통과해야 하는 코스였는데, 지금도 교통 사정이 좋지 않은 삼양, 미아, 그리고 길음동을 지났다. 버스는 출퇴근 시각 여부에 상관없이 늘 사람들로 꽉 찼다. 때로 시장에 무리 지어 가는 아주머니들과 동승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아주머니들은  라디오 사연에서도 듣기 힘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마늘을 하루에 몇 쪽씩 구워 먹으면 그렇게 몸에 좋대. 마늘 한 접씩 사자. 응?.”

“올해 꽃게는 경동시장 말고, 소래포구까지 가는 게 낫겠어. 어때?”      


상기된 목소리로 대화하는 아주머니들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이어폰도 없었을뿐더러, 사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이 참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음동 일대가 ‘뉴타운’으로 지정된다는 뉴스가 보도된 것이다. 자식 얘기, 남편 얘기, 시댁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아주머니들이 창밖의 ‘달동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묵을 이어갔다. 그러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기 사는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았네.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고생하더니 잘 됐지 뭐. 그 코딱지 만 한 구멍가게가 이렇게 노다지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내가 뭐라 그랬어. 뭐니 뭐니 해도 부동산이 최고라니까. 잘만 사놓으면 오두막이 아파트로 뻥튀기하는 시대야.”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내 몸 보다 훨씬 큰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덩그러니 서울 거리에 서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리무진 버스는 나를 도로 한복판에 떨구었고, 나는 도로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버스 승강장의 행렬에 꽤나 놀랐다. 늘 타던 361번 버스가 사라진 충격적인 거리. 그곳에 혼자 서 있던 나는 캐리어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여기에서 집에 가는 361번 버스가 있었는데, 당황스러웠지만 어서 집으로 가야 했다. 휴대폰도 없었고, 어디에 물어볼 상황도 아니었다.

      

겨우 버스 안내판을 찾아 내가 타야 할 버스가 104번이라는 걸 알았다. 놀란 토끼처럼 사방을 예의 주시하며 의자에 앉았다. 다행히 미아리고개는 그대로였다. 익숙한 길이 나오자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찰나! 다시 나는 엄청난 창밖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달동네는 ‘뉴타운’이 되었다. ‘길음 뉴타운’이라는 어색한 이름처럼 동네의 풍경은 생경했다. 언덕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작은 집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아파트들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방 메고 뛰어가서 줄을 섰던 문방구도, 아줌마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던 이불집도, 골목 어귀에 누군가 갖다 놓은 짝이 맞지 않은 낡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부채질을 하던 할머니들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버스 안의 분위기도 달라져 있었다. 이어폰을 낀 채 창밖 풍경에도 무관심한 듯, 아무 생각 없이 버스 정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 도쿄 신주쿠의 한 공사장 풍경


지난 주말, 신주쿠 시내 한복판에서 보게 된 공사장 풍경은 그 시절의 길음동을 떠올리게 했다. 또 얼마나 달라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너무 쉽게 사라지고 설 자리를 잃어간다. 그때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부동산에 열광하고, ‘재개발’에 목숨을 건다.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는 이웃에게는 온갖 횡포와 폭력을 주저하지 않으며...  

   

공사현장을 보니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떠올랐다. 과연, 비둘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편안한 곳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에게 다시 사랑을 받고 있을까? 아쉽지만 그들의 형편은 수십 년 전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2021년, 성북동 비둘기는 어디에나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려 엄청난 예산이 투자되고 있는 북인도 라다크에도, 올림픽 성공 유치로 회생의 기회를 만들려는 도쿄에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주택청약에 수 백 명이 몰려드는 서울에도.

     

비둘기는 도시 고가의 구석에 둥지를 틀고 몸을 비비며, 사람들이 던진 과자 부스러기를 오늘을 산다.     


우리 조상님 때는 말이야.
우리가 평화를 상징하고.
올림픽 개막식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 옛날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구구구 구구구’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월간문학](1968. 11)-     


*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귀국해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김광섭 시인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1941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3년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을 당시의 시인의 모습(아래 두번째 사진)에 절로 숙연해진다. 우리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일까!


▲ 김광섭 시인   [출처] 일간투데이


▲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전후면 김광섭(1904~1997), 독립운동가 김광섭 당시 39살. 1942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작성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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