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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10. 2021

#6. 잿더미 소복한 울타리에도,

구상  <초토의 시>


“와아아아아!”     


앞에 걸어가던 동네 아이들이 갑자기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다리 건너에는 시멘트로 대충 발라진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3000 미터가 넘는 산자락의 작은 마을에 있는 유일한 슈퍼였다. 이름 그대로의 구멍가게, 간판 하나도 없어 마을 사람이 아니면 이곳이 가게인지 아무도 모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가게에 들어가는 문도 없이 테이크아웃 전용의 푸드트럭에나 있을 법한 작은 창문 같은 선반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먹이를 물고 온 어미 새를 향해 고개를 내미는 듯, 아이들은 자신들의 어깨보다 더 높은 선반에 까치발로 팔을 기대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과자라도 사려는 걸까.’


그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는데 무리 중의 아이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이방인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인지, 아이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두 눈은 커질 대로 커졌고 옆에 있는 친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나의 등장을 인지하지 못했던 다른 녀석들도 그제야 하나둘씩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겁을 먹었구나!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어 나는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쥴레(Julley)~”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은 나를 빤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쥴레~”     


무리 중 키가 가장 작은 꼬마 아이가 대답했다. 인사를 하자마자 어색한지 ‘씽긋’ 웃더니 키가 큰 형의 뒤로 얼굴을 숨겼다. 얼굴뿐 아니라 온 몸을 거의 다 감추었다. 이어서 한두 명의 아이들이 더 인사를 했고, 몇몇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국경지대. 자신들이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지프를 예약하려 들른 여행사 직원은 “멋있고 아름답지만, 국경지대라서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강조했었다. 퍼밋은 이 땅이 처해있는 불안함과 위험성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 특히 마을의 어른들은 여행자인 나를 거리를 두고 대했다. 눈을 잘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에 혹시 찍히기라도 할까 봐 늘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나 내 소품이 궁금해서 몰려든 아이들에게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 언어로 말했다. “빨리 집으로 가” 혹은 “그 사람한테서 떨어져!”라고 하는 듯, 정색이 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총과 폭탄의 두려움을 오랫동안 겪었고 지금도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는 ‘무력 충돌’의 공포에 대비해야 하는 그들에게 이방인은 그런 존재인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들의 태도에 서운해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밭에서 일을 하든, 개울에서 빨래를 하든, 또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밥을 짓는 모든 순간에도 언제든지 찾아올지 모르는 ‘전쟁’이라는 두려움을 예상하며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그들의 불완전한 삶을 관망하며 걸어가던 중 파란 창틀이 있는 어느 집 앞에서 온몸이 저리도록 떨렸다. 그리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비바람만 겨우 피할 수 있는 허름하고 작은 집의 창가에는 금계국처럼 생긴 샛노란 꽃이 피어 있었다. 어디에서 주워온 듯한 깡통에는 ‘Have a nice day!’라고 삐뚤삐뚤한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깡통 화분에 피어 있는 보랏빛 코스모스 한 송이에, 눈이 시리도록 쨍한 히말라야의 파란 하늘에 내 마음이 함께 젖어들었다. 이렇게 고운 풍경과 달리 늘 긴장과 공포 속에 살아가야 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가슴이 답답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때 울타리 대신 줄지어 심어놓은 작은 나무들 너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쥴레~”

“쥴레~”


손자를 안고 있는 이 집에 살고 있는 듯한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품에서 세상의 걱정 따위는 알지 못하는 듯, 아이는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아이의 미소에, 정겨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문득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 '쥴레'는 인도의 북쪽, 히말라야 산자락 '라다크' 지방의 '라다키'들의 인사말이다.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전쟁의 이야기.     


“느그 아빠가 징하게 이빼서 미군들이 다 만져볼라고 그랬제. 나는 애기 뺏길까봐 억지로 길을 ‘삐잉’ 돌아서 멀리 걸어댕겼단마다. 시상이 그라고 무서웠응깨. 일본놈들 나가고 난깨, 인자는 빨갱이네 뭐네 함시로 동네 사람들끼리 송사를 하고 난리를 치든마는. 또 장승 만한 미군들이 찌푸를 타고 들어와서 여기저기 서 있고. 참마로 뒤숭숭했제. 그런 시상을 살었단마다 우리가. 그래도 으짜겄냐. 자식 새끼들 델꼬 살었어야제. 우짜든지 살었어야제.”    

 

먹을 게 없어 재를 몇 개나 넘어 있는 친정에 가서 보리쌀 한 되를 얻어 머리에 이고 오면서, 등에 업은 아빠의 온기에 의지하며 무서운 산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는 그 히말라야 높은 산자락에서 다시 생각이 나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지팡이를 짚고 선 채 마당에 핀 꽃을 보며 한참 동안 바라보시던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오늘은 6월 25일. 한국전쟁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할머니에게 들은 전쟁 이야기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로, 누군가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총과 폭탄, 탱크와 트럭이 사라지고 그 땅에 불타는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나는 날이 속히 오기를. 아픈 기억과 평온한 나의 일상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 오늘의 아침, 자꾸 이 시가 머릿속을 맴돈다. 종군기자 출신으로 참혹한 전쟁의 현실을 경험했던 시인은 얼마 전 영국 콘월에서의 대한민국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감사할 것이 참 많은 만큼, 더욱 돌아보아야 할 이웃의 슬픔도 결코 쉽기 지나칠 수 없는 오늘의 삶. 깨어 있어야 할 우리의 사명.




「초토의 시 1」     


                           구상(1919~2004)     


판잣집 유리 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다.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소녀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  시인 구상  [출처 : (사)구상선생기념사업회]
▲ 1956년 출판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초토의 시>  [출처 : TISTORY  '권영민의 문학콘서트']


* 총 15편의 연작시로 된 이 작품의 배경은 한국전쟁이 빚어낸 참혹하고 비극적인 현실이다. 이 시는 그중 첫 번째. 다른 시들도 꼭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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