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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알 Sep 11. 2021

살기 위해 걸어야 한다

뼈 사진을 본 적이 있나요?


“아… 이건 70~80대 할머니의 척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양이에요. 환자분은 아직 나이도 어리신데…….”


2020 4, 올해 나이 마흔이다. 병원에만 오면 어려지는 마법을 경험한다. 그것도  살이나. 진료 카드에 적힌 '서른여덟'이라는 기분 좋은 숫자를 보며, 병원에  왔는지를 잠시 잊은  철없이 웃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정신 차리라는  의사 선생님이 말을 걸었다. 본격적인 진찰에 앞서 미리 찍은 엑스레이 화면을 보다 걱정스러운 나를 돌아보았다.


선생님의 심각한 얼굴을 보니 심장 박동이 요동을 쳤다. 뭐가 잘못된 걸까! 긴장하며 화면을 응시했다. 평생 적지 않게 엑스레이 촬영을 했지만,  몸의 뼈가 어떻게 생겼는지 유심히 관찰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척추 사진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2 전의 그날 이후로 오랜만이다.




때는 2018년 5월, 당시 담당하던 사업의 위탁사업자 선정 심사를 마치고 회의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잘 작동하던 프로젝터가 말썽이었다. 기계는 내 키보다 훌쩍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아무리 리모컨을 눌러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시설물 관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모컨이 안되면 그냥 손으로 전원 버튼을 끄세요. 것 참! 요즘 자꾸 프로젝터가 말썽이네."


그는 급한 일이 있는지 본인의 할 말만 무심하게 전화를 '뚝' 끊었다. 어쩔 수 없었다. 회의실을 사용한 사람은 그곳에 있는 테이블, 의자는 물론 전자기기 등 장비까지 모두 원래의 상태로 정리해야 했다. 담당자의 다소 퉁명한 대답에 더 이상 도움을 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누구에게 도와달라 부탁하는 걸 어려워하는 별난 성격인 터라, 직접 상황을 해결하기로 했다.


천장에 달린 프로젝터의 전원을 직접 꺼야 했다. 하지만 높은 천장까지 팔이 닿을 리가 없었다. 뭔가 딛고 올라설 물건이 필요했다. 회의 탁자는 튼튼해 보이지만 차마 발을 딛고 올라가기 부담스러웠다. 결국 근처에 놓여있는 바퀴 달린 의자를 들고 왔다. 의자를 프로젝터 바로 아래에 놓고 그 위에 올라섰다.


프로젝터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재생 버튼, 일시 정지 버튼을 차례대로 눌러보았지만 어느 것도 반응하지 않았다. '역시 강종(강제 종료) 외엔 답이 없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 버튼을 눌렀다. 마찬가지였다. 프로젝터는 '위이잉' 소리를 낼 뿐 어떤 반응도 없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결국 다섯 번 만에 전원 버튼의 파란 불이 깜박이더니 기계는 요란한 움직임을 멈췄다. 작은 키로 높은 곳까지 낑낑 대느라 팔이 저릿했다.


'휴… 다행이다. 전원은 껐네.'


안도하며 내려오려던 찰나, 갑자기 의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퀴가 달려있던 의자는 손을 쓸 새가 없이 쭈욱 미끄러졌다. 동시에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회의실 바닥으로 '쿵' 떨어지고 말았다. 오른쪽 어깨와 허리, 옆구리, 발목까지 가누기 힘들 정도의 통증으로 바닥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회의실 구석에서 음료를 정리하고 있던 동료 K가 놀라 달려왔다.


"어머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어떡해."

"괘… 괜찮아요. 아악!"


깜짝 놀란 K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겨우 일으켰다. 너무 부끄러워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충격이 컸는지 몸이 딱딱하게 굳은 것 같았다. K의 어깨에 기대 회사 앞 동네의원(정형외과)으로 향했다. 진료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그제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아까 아무도 안 봤겠죠?"

"아, 지금 그게 중요해요? 정말 안 아파요? 괜찮겠어요?"


K는 딸의 등짝을 내리치듯 '으이그' 하며 내 등을 때렸다.


"아아아. 이게 더 아파요."


엄살을 피우는 나를 보며, "괜찮을 거예요."라며 등을 쓰다듬었다.


10분 만에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타박상이 든 것 외에 뼈는 이상이 없었다. 처방한 약봉지를 들고 멋쩍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날 의사는 말했다.


오늘 사고도 사고지만,
척추가 많이 약한 건 본인이 잘 알고 있죠?
앉아있는 시간을 줄여야 해요.

통증이 심할 때에는 늘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스트레칭도 틈틈이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느 정도 몸 컨디션이 회복되고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지면 나는 소중이 다뤄야 할 척추를 또 혹사시키기 시작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 생활하는 나에게 척추는 언제부턴가 주기적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1년에 한 번씩은 목과 허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아, 지금 아프면 안 되는데.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아픈 것도 힘들지만, 학기를 시작하는 이때 몸이 아프면 얼마나 곤란할지 잘 알기에 속상한 마음이 더 컸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병원에 가보자. 빨리 처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병원을 예약하고, 이른 아침부터 집 근처 종합병원에 온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내 척추는 조금 이상했다.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흔하게 보던 척추의 이미지나 모형과는 확실이 달랐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비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나의 척추는 어딘가 불편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 속의 척추와 의사 선생님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척추 모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른 점이 보일 수록 걱정이 되었다. 척추와 관련된 각종 질환이 떠오르고, 몇 해 전 극심한 고통으로 꼼짝할 수 없어 며칠 째 자리에 누워있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잘 보세요. 여기 네모난 부분이 우리의 척추 마디마디예요.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연골이 있는데, 아래로 갈수록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게 보통이에요. 그런데 환자분의 경우 어떤가요? 여긴 위쪽보다 아주 조금 더 크지만, 바로 밑의 부분은 아주 많이 좁아져 있죠?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어요. 첫 번째, 평생 척추를 많이 써서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70~80대 노인들의 경우, 다음으로는 무리하게 척추에 힘이 가해져서 연골 부분이 찢어지거나 터져서 흘러내리는 경우예요."


앞이 깜깜했다. 내 나이 서른여덟. 몸을 쓰는 노동을 하는 직업도 아닌 내가, 벌써 척추에 무리가 온다는 게 말이 되는지! 의사 선생님은 이어, 터진 연골이 옆으로 흘러나와서 이 부분이 더 얇아지면 생활하는 중에 엄청난 통증이 올 거라고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눕는 게 제일 힘들겠지만 일단 일어나면 오히려 걷는 것은 더 나을 거라고. 정말 그랬었다. 허리가 아플 때면 나는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바지와 양말을 입고 신는 것은 물론이고 허리는 마른 막대기처럼 뻣뻣해져 조금이라도 굽힐 수가 없었다.


"맞아요. 맞아요. 아플 때는 정말 그렇게 아파요."


"1~2주쯤 지나면 또 통증이 가라앉죠? 그건 터졌던 부분이 다시 아물어서 조금 나아져서 그런 거예요. 연골은 한 번 망가지면 절대 재생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조직이라, 통증이 발생하면 지속되었다가 나아지다가 만을 반복할 뿐이에요."


허리와 목에 처음으로 이상을 느낀 건, 2014년이었다. 새로 신설된 과에 인사발령을 받고, 점심시간 외에는 책상 앞에서 자리를 뜨지 않을 정도로 일에 시간을 쏟던 시절이었다. 전날 밤 10시까지 야근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사지를 누가 짓누르는 듯 묵직하고 불편했다.

 

당시 살던 곳은 서울의 수유1동. 삼양동과 미아, 길음을 지나는 2차선의 좁은 길로 아침마다 수많은 출근 행렬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7시 반만 지나도 숨 막히는 버스에서 한 시간 반 가까이 되는 시간을 줄곧 서서 출근해야 했다. (출퇴근 시각이 아니라면 4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런 탓에 야근을 하더라도 반드시 집을 나서는 시각은 아침 6시, 일이 많은 때에는 5시 반에도 버스에 타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몸을 혹사하며 일하던 어느 날, 평생 처음 겪어보는 허리 통증에 아침부터 엉엉 소리 내 울고 말았다. 옆 방에 있던 동생이 놀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지만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은 온 척추는 물론 목, 허리, 다리까지 온몸을 완벽하게 짓눌렀고 나는 무방비상태로 견뎌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통증은 온몸의 신경들은 경악했다. 찌릿찌릿 통증이 심해지면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엄마…너무 아파. 엄마……." 작은 소리로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큰 소리나 기침, 울음 등 작은 진동에도 나의 척추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의 고통의 시간을 며칠 동안 병원 치료실에 누워 견뎠다. 나는 남들보다 척추에 더 신경을 쓰고 아껴야 한다고 울며 다짐했다.




하지만, 몸이 조금 나아지면 왜 바보같이 금세 잊어버리는지. 허리가 다시 일상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어지면 나는 평소처럼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은 채, 책상 앞에 앉아있곤 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의사의 주의를 잊은 채, 나쁜 습관을 반복하며 척추를 혹사시킨 결과가 오늘 또 나타났다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선생님, 그럼 혹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필라테스라든가 요가라든가. 허리에 좋다는 운동이 인터넷에 보면 많이 나와있던데. 추천해주실 만한 운동이라도 있나요?"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다. 손에는 노화로 찾아오는 '허리병'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들에게나 처방해 준다는 독한 '진통제'가 줄줄이 적힌 처방전을 들고 있었다.


'근육을 키우면 허리에 좋다고 무조건 운동하라고들 하는데, 잘못된 근육운동을 하면 오히려 허리에 큰 무리가 갈 수 있어요. 많이 걸으세요. 걷는 것만으로도 허리의 미세한 근육에 자극을 줄 수 있어요."


"걷기요? 걷기는 유산소 운동이라 들었는데. 코어를 강화하는 운동이 좋다고 하던데……."


"환자분, 욕심내지 마시고 많이 걸으세요. 환자분은 다른 근육운동 많이 하시면 안 되는 상태예요."


의사는 나에게 거듭 당부했다. 많이 걸으라고.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척추 아래쪽에 가해지는 압력은 엄청나니, 운동을 할 때에는 가급적 서서 하거나 누워서 하는 운동을 하라고 했다. 무거운 것을 들고 당기고 하는 근육(기계) 운동은 하지 말고, 천천히 걷는 운동으로 허리 주변을 단련하라는 것이었다.




약국에서 근육 신경 진통제와 위장 보호제 등이 담긴 한 꾸러미의 약봉지를 들고 나왔다. 약사는 하얀 통에 담긴 진통제를 가리키며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에만 최소한으로 섭취해야 한다"라며 강조했다. 아주 세고, 독한 녀석이라고. 약국을 나오는데, 내 앞으로 백발에 구부정한 허리로 힘들게 걸어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가느다란 두 다리는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다른 한 손에는 약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순간 아찔했다. 저 할머니의 모습이 미래의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아파서 강제로 바른 자세로 걸을 수밖에 없는 허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가슴 쫙 펴고 반듯하게 걷는 나를 누군가 보았다면, “저 사람 자세 참 바르다.”라고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내 속사정은 누가 알까. 괜히 서러워 눈물이 났다.


바른 자세, 평상시의 자세와 생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한 번 깨달은 날이었다. 더 나빠지기 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적절한 휴식과 운동으로 내 척추를 아껴야 한다. 통통한 것보다는 날씬하게 좋다는 세상이지만, 척추만큼은 누구보다 두툼하고 튼튼하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연골이 빠져나가기 전에 잘 살펴야겠다.


그래서 오늘부터 열심히 걸으려 한다. 집 주변, 골목 구석구석, 산바람 강바람 느낄 수 있는 둘레길까지 차근차근 걸어보겠다. 언제라도 구부정해지는 내 모습을 보면 큰 소리로 상기시켜 달라고 남편에게 알렸다.  


“허리! 바로 세워요!”  

▲ 사진에 모두 담지 못한 이름도 낯선 약. 다행히 아직까지 약을 먹은 적은 없다.
▲ 한국에서 그대로 들고 온 약봉지 속에는 반가운 한글로 적인 붙이는 파스가 있었다.
▲ 파스가 남은 줄도 모르고 집 앞 약국에서 얼마 전에 산 일본의 파스. 효과는 비슷하다.
▲ 곡선은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3개의 C자!   [출처 : 프리미엄조선]
▲ 이상적인 척추 모양  [출처 : 자생한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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