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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ie Feb 01. 2023

8888 번호의 비밀

행운은 준비된 그릇에 채워지는 시간의  축적이다.

 "Wow, Your phone number is so awsome. "

 "You got so much luck"

운전면허증을 갱신하기 위해 차량국을 방문했다가 전화번호를 받아 적는 Cashier의 놀라운 한마디다. 내 전화번호, xxx-xxx-8888는 그저 기억하기 쉬운 번호이기도 하지만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사업가들에게는 상당히 탐나는 번호이기도 하다. 


'8'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행운의 숫자로 알려져 있다. 중국어로 8자는 ba로 발음되는데, 재산을 모은다 (·facai)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발(發)의 발음인 fa와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행운'이란 무엇일까?

남녀노소 무론하고 누구나 행운을 기대하고 서로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어떻게 하면 행운을 듬뿍 소유한 사람이 되는가에 대한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젊은이들은 삶의 행운을 찾아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실리콘벨리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주위에 꽤 있다. 하지만 벨리안에서 지켜본 성공적인 은퇴세대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배우자의 도움 없이 나만의 수익창출 능력 소유, 하우스 페이먼트가 걱정 없는 자산구조 형성, 치아가 튼튼하여 음식을 잘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과 체력, 삶을 공유하며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배우자, 독립한 자녀의 성공과 건강한 손자녀들, 특별한 날에 자손들에게 현금을 나눠줄 만큼의 재정적 여유, 넉넉하게 베풀 수 있는 마음,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적갈등을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이며 새로운 문화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할 줄 알며, 통역도움 없이 상용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로 러키퍼슨이라 지칭한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부터 나는 K회장님과 산에 올랐다. 두 아이의 육아가 끝난 어느 날, 문득 이제라도'홀로서기'에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막 생겨날 무렵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K회장님을 찾아갔다.


사실, K회장님은 우리 가족의 전담 헤어디자이너로서 30여 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어른이다. 남편의 볼링 동우회에서 처음 만났던 K회장님의 포스는 여느 성공한 기업가의 CEO처럼 당당한 자신감과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동석했던 몇 분의 친구분들이 '회장님'이라 깍듯이 존대하기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기업 회장님(?)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친구분들은 모두 이 지역에 미용분야, 동종업계에 종사하면서 이민생활의 외로움과 사업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누어주는 '큰 언니'같은 K 회장님에게 '회장님'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회장님'이라는 애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K회장님은 20대에 이민 와서 50여 년 세월을 엮어내어 이젠 실리콘 벨리의 성공한 이민세대, 70대 중년의 모습으로 여전히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손자 녀석의 <All A+ > 성적표를 카톡에 담아 뿌듯한 자랑을 하는 할머니이며, 아직도 애착인형들을 침대 머리맡에 나열하는 순수한 소녀감성의 중년이다. 100세 인생에 필요한 자산축적, 페이먼트가 마무리되어 가는 하우스, 아직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남편, 건강한 정신으로 독립하여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딸과 사위,  올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손녀와 고교 우등생 손자, 캐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 통역 없이 관공서 업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어디든 자가운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체력, 이쯤 되면 진정 K회장님은 '행운아'가 아닐까.  K회장님의 이 모든 것들, 행운 같은 현실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K회장님의 인생이야기는 매주 산을 오르며 수강하는 '특별한 수업' 같은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20대의 꿈 많은 간호학과 학생이 홀로 도미하여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놓였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배워야 했다. 영어를 먼저 배워야 했다. 실제적인 미국인들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입주 베이비 시터를 하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에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아이셔츠를 다리던 실력으로 부업까지 생기면서 차차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을 좀 더 밀도 있게 터득해 나갔다. 


CA에는 여러 인종이 다양한 문화를 소유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메인 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인들의 삶은 대개 미리 계획하고 관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보편적인 사회형식도 그 흐름이었지만 개인적인 삶도 냉정하리만치 정확한 플랜과 관리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사회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을 현금으로 환산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어린 K 회장님은 스스로의 명석함과 센스와 부지런함으로 그들의 라이프 형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스며 들어갔다. 소셜미디어가 없던 그 시대에  K회장님 스스로  <삶의 관리>에 훈련되었다면 적어도 50여 년을 앞서 나갔던 셈이다.


아메리칸 라이프 방식은 시간관리에 철저하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학교나 기타 서비스업등 모든 라이프는 Due Date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어서 시간이 하나의 약속처럼 운영되고 있다. 물론 Grace Period라는 것이 있어서 예외적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통상적으로 시간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특히 모든 서비스 업계는 예약제로 운영되며 경영자가 시간관리에 철저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고객들 간의 혼선은 물론이고 자칫 지속적인 서비스업을 진행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생활을 통해 몸소 단련된 K회장님의 시간관리 개념은 아주 정확하다. 예를 들어 하이킹을 위해 아침 8시에 만나기로 했다면 그 시간에 Traffic time까지 감안하여 약속장소에 그만큼 빨리 나와 있다. 성공적인 이민사회 사업가를 소망한다면 철저한 시간관리는 꼭 소유해야 할 덕목이다.  

 

2008년 서프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나면서 이곳의 소시민들 사이에 적지 않게 나타났던 현상은 미처 자산관리에 훈련되지 않았던 주부들이 갑작스러운 경제혼란에 당황했었던 점이다. 미국은 해마다 세금보고라는 제도가 있어 자산관리를 회계사를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은행 statement이 소비지출을 알려주고 있어 가계부 사용의 중요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주부들도 많았다. 게다가 영어가 쉽지 않은 점도 있어 대개 남편들이 자산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해마다 늘어가는 부채와 각종 페이먼트에 허덕이면서 불안함과 막연한 미래에 대해 삶의 의욕조차 잃어가는 주부들도 있었다. 그 후 각 가정의 재무구조를 정리해 주는 자산관리사가 생기기도 했지만 꼭 전문가들이 아니더라도 가정주부들은 그제야 재무구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 시작했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철저하게 자산을 운용한 결과 빠져나가던 자산을 지켜낸 억척 주부들도 여럿이 생겨 났었다.


돈에 대해서, 자산관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배우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을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려면 지출에 앞서 먼저 저축습관을 길들여야 한다. K회장님은 처음 페이 받던 날부터 저축을 시작했다. 들어온 모든 현금을 다 쓰지 않고 소액이라도 일부를 남겨 놓는 습관은 심적로도 부자의 마음을 제공할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큰돈이 되더라는 것이다.  


1 페니만 없어도 100만 불은 될 수 없다. 99만 9천9백9십9불 9전과 100만 불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1 페니의 가치를 알고 존중할 줄 알아야 돈도 나를 귀하게 따라붙는다.


또한 내 돈도 소중한 내 시간과 수고의 결과물이고 타인의 돈도 또한 그처럼 귀하다. K회장님과의 식사를 할 때면 언제나 누가 음식값을 지불하든지 간에 필요 이상의 지출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서버에게는 당당하게 서비스를 요구하고 그 서비스에 대해 아낌없는 팁을 지불한다. 참 멋진 돈 사용법이다.

  

K회장님과 산에 오르다 보면 온갖 잡념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 개운하게 비워진 마음이 된다. K회장님이 목사님도 스님도 신부님도 아닌데 말이다. K회장님의 한마디는 언제나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K회장님의 하루는 명상의 말씀으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시작된다. 그렇게 준비된 K회장님의 마음 끝에는 하루종일 타인의 아프고 상처 난 마음까지도 안아줄 수 있는 따스한 공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연로한 노인들의 헤어를 손질할 때면 고객이 아니라 부모님처럼, 때로는 친할머니처럼 진심으로 정성을 다했다던 그  심성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겸허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삶의 철학이 확고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진정한 '어른'으로 느껴진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 각종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울창한 그 숲 사이로 하이킹하는도 시간이 주는 축복이라 하며 행운을 걷어들이는  K회장님의 마음은  진정한 부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유혹, 이겨내기 힘든 유혹은 무엇일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혀끝의 맛'이라고 말은 쉽게 한다. 머리로 알고 있고 마음으로 그 혀의 유혹을 이겨내리라 다짐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K회장님의 건강관리는 무서우리만치 철저한 결단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대의 젊은 날에 길들여진 아메리칸 입맛을 하루아침에 단절하고 건강을 만들어가는 식습관의 실천은 오늘의 건강을 만들어 냈다. 그 풍부한 식탐을 스스로 제어하며 철저한 체중관리와 꼼꼼한 식습관으로 모든 행운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건강한 삶'을 만들어 낸 것이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K회장님의 헤어숍에는 지적인 향기가 풍성하게 스며 있었다. 머리카락 한 톨 없는 헤어숍에는 일반 병동에나 있을 법한 소독집기들이 한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헤어손질을 하는 동안에 K회장님의 입담을 통해 흘러나오는 해박한 이민생활정보는 서비스를 받는 고객에게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헤어관리의 전문적 정보를 연구하고 독서하고 깔끔하게 실천했던 K회장님의 모습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백인 부유촌에서 40여 년을 겪어낸 원동력이었으리라.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고객과의 신뢰관계이며 사업가로서의 큰 자산인 셈이다.

 

K회장님과 나는 한 세대가 차이나기도 하지만 함께 산에 오르면 세대차이는 물론이고 생각의 차이도 느낄 수 없다. 쿨한 아메리칸 스타일이 익숙한 탓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앞서 간 세월의 경험자로서의 따뜻한 조언이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세대 간에 열린 마음으로 공유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K회장님의 손길이 닿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넉넉해 보였다. 풍성하게 쌓여있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사용처가 분명한 것들만 단정하게 정리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색하거나 궁색한 것은 절대 아니다. 절제미가 풍부한 삶이라고 할까.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의 구분은 꼭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시간활용의 정리정돈은 부지런함을 수여하고, 자산관리의 정리정돈은 불확실한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준다.

마음의 정리정돈은 하루의 시작을 긍정에너지로 가득 채워주고 건강식습관의 정리정돈은 자신감을 회복시켜 준다. 배움의 자극은 자존감을 향상해 준다. 그래서 스스로 성장하는 성숙한 삶의 주인공이 되며 또한 하늘이 내리는 운을 넉넉히 받아 채울 수 있는 행운의 그릇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까지 K회장님의 인생이야기를 듣다 보니 행운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본다. 저절로 생겨난 이 아니라 떠돌아다니는 행운 에너지를 주워 담을 그릇을 부지런함의 시간으로 잘 관리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다. K회장님의 오늘의 성공적인 모습은 50여 년 동안 한 올 한 올 쌓아 올린 시간의 축적이다. 아픔과 외로움과 인내와 헌신과 노력의 결과물이 행운으로 이미지화된 것이다. 


xxx-xxx-8888번의 전화번호는 50대에 꿈을 꾸고 도전하는 내게 K회장님께서 나의 성공적인 삶을 기대하고 응원하며 물려주신 핸드폰 번호다. 8888 번호를 생각할 때마다 K회장님의 부유한 삶의 철학과 긍정적 에너지도 함께 물려받은 느낌이 든다. 


이 번호를 물려받은 후에 내 삶의 패턴이 달라져 가고 있다. 우선 하루의 일과를 적고 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항상 적체되어 있던 잡무들이 시원하게 해결되어 심적으로 많은 여유가 생겼다. 자신감도 붙기 시작하며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까지 생겨 행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매일 일과가 끝나는 시간에 감사함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 내게 다가오는 행운이라는 에너지가 감사함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지는 노트를 보며 부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K회장님에게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시간'이라고 한다. 내게 펼쳐져 있는 이 '시간'이라는 공간에 복이 채워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 행운이 담길 그릇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오늘 나의 다짐이다.  그리고 이 다짐이 내게 행운을 가져다줄  8888 번호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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