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고사리 같은 손
동구와 라미가 나에게로 와 꽃이 된 그날 이후로 그들은 항상 함께 노란 구조물 위에 앉아 있곤 했다.
한창 장난기가 넘칠 나이인 동구는 라미의 보송하고 말랑한 털 위로 물고, 뜯고, 때리며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왔다. 라미는 그런 악동구(일명 악동 동구)의 투정을 참을성 있게 받아주곤 했다.
라미는 조금 지쳤는지 모르지만 제삼자 입장에선 그러한 몸짓들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일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먹 두 개를 나란히 붙여 놓은 꼬질한 조랭이 같은 털뭉치가 또 다른 커다란 털뭉치에게 부딪히고 물고 눌리곤 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고사리밥 같은 손발을 발록발록 거리며 노랑 줄무늬 꼬리를 톡톡 건드리고, 반응이 없으면 여기저기 앙앙 깨물기 바빴다. 그러다가 결국 라미의 커다란 앞발에 찌부러지거나 목덜미를 왕 물리곤 했다. 이런 둘을 보고 있으면 어떤 격투기 경기보다 긴장감 넘치고, 그 말랑말랑함에 심장에 무리가 오곤 했다.
그러다가도 각자 가만히 앉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적막이 존재했고,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조용한 고독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그 순간들 속에서 라미의 외로움을 보았다.
라미는 왜 동구 엄마의 빈자리를 자처했을까. 왜 동구의 옆자리를 지키는 걸까.
나는 지금껏 라미가 동구의 곁을 지킨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동구도 라미의 곁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는 네가 생겼을 때 혼자라면 절대 하지 못 할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고, 아주 조그맣고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이 생기고, 힘이 생겼다고.
어쩌면 동구는 라미에게 그런 사랑과 힘일지도 모른다.
우린 아주 오래전부터 어쩔 수 없이 너무 외로워서, 그래서 사랑을 한다. 이 사랑에는 끝없는 책임과 노력이 필요해서, 그래서 다시 외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사랑을 한다. 사랑으로 인해 시작되는 이 끊임없는 책임과 노력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마침내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삶을 향유할 힘을 얻는다.
그렇게 동구와 라미는 지금도 서로의 곁을 지킨다.
둘은 동그랗게 동그랗게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