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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Sep 02. 2020

꿈을 이룬 아내 뒤엔 '돕는' 남편이 있다

넷플릭스 실화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보고 ① [영화 칼럼]

넷플릭스 실화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보고 ① [영화 칼럼]






최근 책 작업, 글쓰기 강의, 공모전, 다음 책 준비로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TV 오락 프로그램은 잘만 챙겨 보는데 말이다. 가끔은 영화와 단둘이 데이트하는 게 꿀맛 중 벌꿀 맛인데... 그리하여, 어젯밤에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데리고 왔다. 2009년에 개봉한 <줄리 & 줄리아>가 그것이다. 관람 전, 내용을 전혀 몰랐다. 아는 거라고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그리고 요리를 다룬다는 것까지만.









외교관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오게 된 미국인 '줄리아'. 남편이 직장에 있을 때면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야말로 철창 없는 감옥신세를 맞는다. '먹는 것'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그녀는 외로운 시간을 요리에 투자하기로 한다. 급기야 프랑스 명문 요리 학교에 진학해 제대로 요리를 배운다.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미국 퀸즈에 살고 있는 '줄리'는 회사 업무에 치여 늘 녹초가 되어 돌아온다. 무의미하게 흐르는 삶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기분전환으로 블로그를 시작한다. 키워드는 '요리'다. 줄리아가 만든 요리 책을 보며 1년 365일 동안 524개 레시피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와 함께 시작된다.






영화를 본 후 격하게 공감한 두 가지를 포스팅하려 한다. 그중 오늘은 하나만.





줄리아 : 우릴 싫어해요

남편 : 누가?

줄리아 : 휴튼 미플린

남편 : (출판사에서 보낸 피드백을 보며) 그렇지 않아

줄리아 : 싫어해요, 틀림없어

남편 : 책은 좋다고 썼군

줄리아 : 출판은 못한다잖아요

남편 : 출간하기엔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군

줄리아 : 요리책에 쏟은 8년이 무용지물이 됐어요. 세상 빛도 못 보게 됐어. 참... 처랑햐죠? 이젠 뭘 하죠?

남편 : 당신은 선생이야, 요릴 가르쳐. 알았지? 집에 돌아가면

줄리아 : 집이 어딘데요? 어디 살 건데요?

남편 : 우리가 있는 곳이 집이야

줄리아 : 맞아요

남편 : 알았지? 길이 있을 거야, 우린 끄떡없어. 부엌에서 가르쳐도 되고

줄리아 : 맞아요

남편 : TV에서 가르쳐도 되고

줄리아 : 맞... (말도 안 된다는 듯이) TV에서요? 내가요?

남편 : 그래

줄리아 : 폴

남편 : 당신은 TV 요리사로 제격이야, 진심이야

줄리아 : (빈말이라 해도 기분 좋은 듯 웃으며) 폴!

남편 : 난 믿어

줄리아 : 놀리지 마요

남편 : 놀리는 게 아냐, 절대로. 누군가 당신 책을 출판할 거고, 당신 책을 읽고 진가를 깨달을 거야, 당신 책은 훌륭하니까. 당신 책은 천재적이고, 당신 책은 세상을 바꾸게 될 거라고. 내 말 믿지?

줄리아 : (감동의 눈시울을 붉히며) 정말 자상하다니까. 당신은...가장 좋은 남편예요

남편 : (줄리아 이마에 입맞춤한 뒤 거절한 출판사 담당자를 향해) 됐다 그래



자막 : 넷플릭스








꿈을 이룬 아내 뒤엔 '돕는' 남편이 있다




1940년 대 반의 줄리아, 2000년 대 초반의 줄리. 두 여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인이라는 것, 무료한 일상에 요리를 시작했다는 것, 아내가 하는 일을 믿고 지지해주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미혼이 아닌 이상 전적으로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 결혼하니 정말 그렇다. 미혼일 때는 멋대로였다. 밤을 새워도, 이른 새벽에 해도, 종일 책상 의자와 붙어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가끔 엄마의 잔소리가 귓가를 때릴 뿐.



중요한 건 집안일인데, 미혼일 때는 청소나 끼니는 좀 미루면 그만이거나 부모님이 하시니 패스다. 하지만 결혼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 혼자가 아닌 남편이 함께 있다. 여기에 아이까지 있으면... 우와... 난 아직 모르겠지만 장난이 아닐 듯하다. 여하튼, 남편의 배려가 없다면 나 같은 애는 절대 해낼 수 없다.



최근 네 번째 산문집 <힘든 일이 있었지만 힘든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를 준비하면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서재에서 보냈다. 거기에 도서관 글쓰기 강의 제안까지 연이어 오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부쩍 늘었다. 밥을 먹거나 씻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서재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책이 출간된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내년 봄부터 시작할 개인 수업 커리큘럼과 다섯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매일 해야 하는 독서 및 필사도 예외가 아니다.



나도 집안일을 하지만 이렇게 일이 밀려 들어온 시즌엔 남편의 몫이 커진다. 자신의 일도 있으면서 세탁, 방 청소, 분리수거, 욕실 청소, 식사 준비 등을 하는 남편이 너무나 고맙다. 심지어 살며시 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쉬엄쉬엄해요."라며 따뜻한 루이보스티와 반듯하게 자른 사과를 내민다. 남편의 배려가 없었다면, 일에 몰입하기 힘들었을 게 뻔하다.








배려에 이은 다른 하나는, 누구보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줄리아'가 출판사의 거절을 맛본 후 좌절할 때 그녀의 남편이 안겨준 반응과 같다. 내가 쓴 글의 1순위 독자는 남편이다. 잘 썼든 아니든 "글이 점점 성장하네! 역시 우리 이지니 작가는 멋져!"라며 듣기에 예쁜 말만 골라 담는다. 고생해서 다 쓴 원고가 60여 군데 출판사에 모두 거절당했을 때는"낙심할 거 없어. 자기 글의 진가를 몰라서 그런 거야."라며 그냥 해주는 말임을 알면서도 내 맘을 샤르르 녹인다. 그의 예쁜 언행(言行)이 연애 때는 그렇다고 해도 결혼해서도 이어질까 했는데, 변함없는 모습에 고마울 따름이다.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의 9할은 남편이다. 내 꿈에 닿을 수 있도록 돕고 배려하며, 행여나 기운이 빠질까 늘 힘이 되는 말을 건네주는 남편이 있기에 가능하니 말이다. 감사한 마음을 안고 오늘 저녁은 매콤 달콤한 고등어조림을 해줘야겠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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