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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Oct 26. 2020

2016년 가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나는 행운아다

2016년 가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자기계발에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일만 한 것 같은데, 벌어놓은 돈은 다 어디로 간겨?”



엄마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무색하게 현실은 씁쓸했다. 내 나이 서른넷까지 모은 돈이라고는 겨우 천만 원이 전부였기에. 호감을 느끼고 만나는 남자 하나 없이, 번듯한 직장 하나 없이, 그렇다고 이렇다 할 경력을 쌓은 것도 없이, 나는 그저 노랫말에 곧잘 등장하는 ‘루저’였다.



대부분 여자와는 달리 명품에 관심도 없고, 화장품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미용실 방문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잡채처럼 1년에 손꼽았다. 다만, 배우고 싶은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면 구멍 뚫린 모기장 안으로 벌레가 들어오는 것처럼 지갑 문이 스르륵 열렸다. 좋게 말하면 ‘배움’에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노랫말이 좋아 작사 학원을 반년 동안 다녔고, 지성인이라면 악기 하나쯤은 다뤄야 할 듯해 우쿨렐레를 구매해 배웠으며, 고급 중국어를 원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귀도 얇은 것이, 의지는 왜 이리 박약인지 시작의 열정은 가마솥 부럽지 않게 뜨거웠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작가가 되기로 하다





이런 내게 최대의 투자처가 나타났다. 바로 ‘책 쓰기’다. 지금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서야 그 비싼 수업료를 낼 수 있나 싶지만, 어지간히 꿈에 갈급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니 짠하다. 뭐에 홀리지 않고서야 전 재산에 육박하는 금액을 덜커덕 내밀 수 있을까 싶다. 나는 분명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방송작가의 길에서 무참히 퇴장한 후, 속 빈 강정처럼 영혼 없는 삶을 살았다. 나이가 들어도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십수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운명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수강 날, 전 재산을 들고 센터에 갔다. 다른 이들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간절함과 절박함’을 안고 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모든 걸 걸었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해서 공짜로 책을 내주진 않았다. 결과는 오롯이 자신에게 달렸다.



첫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역버스 안에서 눈물과 콧물이 섞인 액체가 쏟아졌다. 창밖으로 내리는 비로 감성이 더해진 것만은 아니리라. 얼마나 간절했으면, 절박했으면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에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었다. 내가 쓴 책이 출간되는 날, 모든 설움의 구정물이 말끔히 씻은 듯 사라질 거라 믿으며 휴지로 얼굴을 닦았다.









무언가에 간절할 때 사람은 독해진다





매주 주어지는 과제는 남들보다 2배는 더 했다.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나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이 길에서만큼은 단단한 소나무처럼 우직하게 해내고 싶었다.



센터를 오가는 왕복 4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떠오르는 글감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귀가하면 파 뿌리가 된 몸을 가누기도 힘겨웠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나만의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 하루 서너 시간만 자도 버틸 수 있음이 신기했다. 난생처음이었다. 새벽까지 불이 켜진 내 방에 놀란 엄마는



“아이고,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자는겨? 글쓰기도 좋지만, 몸 사리지 않고 하는 건 반대여. 건강이 최고로 중한겨. 어여 자!”



눈꺼풀이 반쯤 덮인 채 말을 건네는 엄마에게 이 정도는 거뜬하다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다시 진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 길에서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 당신이기 때문이다. 기필코 자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보이리라 다짐했다.










“띠리릭”



카드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수업료 외에 필요한 책과 생활비 때문에 대출을 받았는데, 달마다 갚으라고 야단이다. 뭐 어떠하랴. 지나면 추억이 되리. 훗날 이만한 일화도 없이 과거를 회상한다면 재미없지 않겠나. 이것도 시련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리. 살면서 간절하고 절박한 꿈을 만난 건 축복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행운아다.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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