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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Aug 03. 2021

원고료 수백만 원을 괜히 준다는 게 아니었어

정부 기관의 단행본 원고 청탁을 또 한 번 거절하며

원고료 수백만 원을 괜히 준다는 게 아니었어










과거, 원고 청탁을 거절하다




지난 2월 5일, K 출판사에서 보낸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하는 외국인 주민 관련 책자를 기획 중인데, 외국인 주민의 스토리를 잘 살려 글을 작성해 줄 작가를 컨텍 중이라고요.



원고 청탁은 몇 번 받은 적이 있지만 정부 기관에서 내는 단행본 의뢰는 처음이었어요. 재미있게 작업할 것 같았으나, 육아는 물론 당시 《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 의 출간 준비와 일주일에 4번씩 진행되고 있는 글쓰기 수업까지 하고 있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죠. 완전히 불가능한 스케줄은 아니었지만, 출산한 지 두 달이 안 되던 때라 무리할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쉬워요.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요. 물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요.













또 다른 곳의 제안





그 후로 약 5개월이 지난 6월 22일, H 출판사에서 보낸 메일이 왔습니다. 역시나 정부 기관에서 내는 단행본 원고 청탁이었어요. 나는 자세한 내용을 듣기도 전에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원고료가 꽤나 많았거든요. 지금껏 받은 어떠한 금액보다 월등했습니다.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연세대학교 송도 캠퍼스에 있었어요. 튼튼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 중이었거든요.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한 후에 답장까지 하느라 튼튼이와 시간을 보내기는커녕 어미는 이미 메일 보내기에 정신이 빠진 지 오래였지요. (열심히 일하려는 엄마를 튼튼이도 이해하겠죠?)



출판사 담당자와 몇 번의 이메일이 오갔습니다. 내 글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써야 하기에 새로운 도전이에요. 심지어 책 한 권 분량의 긴 글을 써야 합니다. 솔직히 작가 이지니의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정부 기관에서 내는 단행본을 집필하는 동안 원고 방향을 위한 회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꾸린 자문단이 내 글을 마음에 들어 할 때까지 여러 번 수정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고요.








샘플 글을 쓰다가 멘붕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샘플 글을 부탁하시더라고요. 나 또한 필요하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써 봤더니... 세상에! 딱딱하고 어려운 용어가 투성인 협약서를 '읽기 쉬운 글'로 고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요. 협약서 1조에 있는 3줄을 바꾸는 데만 30분이 걸렸으니까요. 여하튼 담당자에게 수정한 글을 보냈습니다. 몇 시간 후에 온 답변이,



"아, 제가 설명을 제대로 안 드린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 아니라..."



하여, 출판사가 원하는로(정부 기관이 바라는) 수정했습니다. 그런데... 좀 전에 쓴 것보다 두세 배의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자세히 글을 공개하지 못하는 점, 이해해 주셔요)



'돈이고 뭐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내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이건 아니다!'












그 돈을 괜히 주는 게 아니야






담당자에게 일을 맡지 않겠다,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작업에 들어가면 약 3달은 협약서 및 관련 에피소드 글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차라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낫지, 협약서를 정부 기관 자문단의 입맛에 맞게 쉽게 풀어쓰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200여 일이 지난 아기를 육아하는 나로서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거절하고 싶거든요. 무엇보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내 본캐인 글쓰기와 부캐인 글쓰기 강의를 거의 다 내려놓아야 하니...



'수백만 원을 괜히 준다는 게 아니었어!'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요. 그만큼 1원 하나 버는 것도 힘들고요. 이번 원고료가 자그마치 수백만 원이었는데, 그래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날름 하겠다,라고 했는데... 그만한 돈을 괜히 준다는 게 아니었어요.






내게 더 맞는 일을 할래




액수가 커서 힘들어도 하려 했는데, 그러기엔 포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더라고요. 얼마의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몇 달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하고 싶진 않네요.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에 더욱 몰입할래요.



거절할 때만 해도 돈 수백만 원이 끝까지 아쉽더라고요. (돈 앞에 약해지는 나란 인간)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주문했습니다. '잘했어!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 거야!' 네, 맞습니다! 그 후로 여러 도서관에서 글쓰기 및 책 쓰기 수업 제안이 왔어요. 3달의 강의료를 합하니 제안을 거절한 곳의 원고료와 비슷하네요. 와우! 원고 청탁을 거절하길 잘했습니다. 그럼에도 내게 제안을 준 출판사 담당자님께 감사하고, 또 죄송하네요. 글쓰기 역량이 있는 다른 분과 즐겁게 작업하시길 바라요. 5년 차 무명작가의 새로운 도전이 될 뻔한 이번 사건! ㅎㅎㅎ 역시나 거절로 마무리가 됐네요.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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