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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Jan 02. 2023

대학수능시험, 눈물 젖은 점심밥을 먹은 사연 외

대학수능시험, 눈물 젖은 점심밥을 먹은 사연 외 [글쓰기강

대학수능시험, 눈물 젖은 점심밥을 먹은 사연 외













눈물 젖은 점심밥을 먹은 사연






짧은 글 한 줄에 좌절의 순간을 이겨냈거나,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나요? 나는 대학 수능 시험을 치르던 날, 처음으로 짧은 메시지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날은 수학 능력 시험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2000년대 초만 해도 ‘수능 한파’라고 불릴 정도로 매년 시험 때만 되면 바람이 살을 뚫는 것처럼 지독하게 추웠어요. 엄마는 평소처럼 도시락을 손에 쥐어주시며 별말씀 없으셨고, 나는 해당 학교로 갔지요. 1교시 언어 영역, 2교시 수리 영역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됐습니다. 엄마가 새벽부터 준비해 주신 도시락 주머니를 여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시험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어. 엄마는 건강한 우리 막내딸이 더 좋아!’



눈앞에는 작은 메모지가 있었고 단 한 줄의 글귀가 적혀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또렷한 기억으로 남을 만큼 내 마음을 울린 엄마의 쪽지입니다. 짧은 글에서 나오는 힘은 대체 무얼까요?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은 “글을 쓸 때는 더 넣을 것이 없나를 고민하기보다는 더 뺄 것이 없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체로 편지의 길이가 길수록 더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위 메시지처럼 단 한 줄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울리는 경우가 있죠.









주저앉은 나를 일으키는 힘!





광고 카피의 세계는 한 줄의 힘을 무엇보다 중요시합니다. 중국어 교육 회사 마케팅 팀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은 기사 작성, 중국어 콘텐츠 제작, SNS 관리, 광고 카피 제작 등이었어요. 특히 온라인 홈페이지나 지면 광고에 들어갈 문구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고 또 짜내던 기억이 생생해요. ‘이미 만들어진 교육 상품을 어떻게 하면 한두 줄의 문구로 학습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또 했습니다. 온갖 책과 신문, 잡지, 영화, 심지어 내 귀에 들리는 모든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찰나의 순간에 오는 경우가 많아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죠. 하루는 머리를 감다가 생각하지도 않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샴푸도 덜 된 상태에서 방으로 가 휴대폰 메모장에 적기도 했고, 잠을 청하려 누웠다가 떠오른 문구에 불을 켠 적도 수차례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적지 않으면 영원히 내 기억에서 지워질 수 있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안 돼요.




광고 카피처럼 목적을 위한 메시지와는 달리 자신의 삶에서 저절로 나오는 주옥같은 말이 있습니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명언’이요. 단 한 줄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만큼 명언의 힘은 대단합니다. 아마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전해져오는 지혜의 말이기 때문일 거예요. 2015년 12월, 내 이름으로 낸 첫 번째 저서 《간체자랑 번체자랑 중국어 명언집》 안에는 인생, 성공, 인내, 시간, 기쁨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각 주제와 연관된 중국어 명언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소개한 책이에요. 50개의 명언을 번역해서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까지 정해진 기간 안에 해야 했기에 며칠 동안 하루 15시 간 이상을 작업했습니다. 목과 허리가 아파올 때면 ‘오늘은 좀 쉬었다가 내일 다시 할까?’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마다 ‘단 1분 도 천금과 같이 귀하다’라는 명언이 내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50개의 명언 덕분에 작업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더 힘을 얻은 기억이 납니다. 짧은 글의 힘은 이처럼 대단해요.




주옥같은 말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을 받았어요. 그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도, 순탄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을 지나왔죠.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의지도 보통을 넘어섭니다. 한 예로 피겨여왕 김연아는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부당한 점수 때문에 흔들려서 스케이팅을 망쳤다면 그것이야말로 나 스스로 지는 결과가 아니었을까. 나에게 닥친 시련을 내가 극복하지 못했다면, 결국 내가 패하기를 바라는 어떤 힘에 스스로 무릎을 꿇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김연아 역시 스스로와의 지독한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피겨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앞으로도 영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언을 만든 사람이 정작 자기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애초부터 그 말은 명언이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찢어지게 힘든 가난, 도망치고 싶은 상황이나 시련을 극복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한 그들이 던진 말이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말로 많은 이에게 응원, 위로, 희망이 되는 듯합니다. 나 역시 목표를 향해 가다가 포기하고 싶고,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면 일부러라도 좋은 명언이나 글귀를 찾아봅니다. 힘들다고 주저앉는다면 금쪽같은 시간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까요. 당장은 힘들어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방송국에서 작가로 근무하던 시절, 대학교를 졸업 후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환상도 잠시, TV에서만 보던 즐겁고 유쾌한 상황은 온데간데없고 삭막한 분위기만 맴도는 사무실이 무서웠습니다. 무슨 일이든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기는커녕 도망가고 싶었으니까요. 어느 날, 담당 PD가 엄청나게 화가 난 목소리로 복도에서 마주친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쳤어요. “당신이 뭔데 일을 망치는 거야! 다음부터 똑바로 안 하기만 해 봐. 그때는 정말 가만히 안 있어!”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알고 보니 녹화가 들어가기 전에 수정된 대본을 넘겼어야 했는데 아직 여유가 있는 줄 알고 처리하지 못한 채로 진행된 거예요. ‘아니, 그렇다고 방송국 직원과 연예인들이 다니는 복도에서 삿대질하며 욕을 할 필요는 없잖아…’, ‘역시 방송국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운 곳이었어…’라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뛰어갔어요. 그러곤 휴지로 입을 막은 채 엉엉 울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실수한 나 자신이 미웠고, 한 번은 봐 줄 수 있을 법 한 일에 크게 화를 낸 담당 PD가 야속했습니다. 그렇게 10분을 울었나 봐요. 정신없이 울고 난 후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문 앞에 적힌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봐요. 실컷 욕을 먹고 나서 본 저 글귀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렇죠. 말로만 꿈을 꾸는 사람보다 실수는 했지만 '방송국 작가'라는 도전을 한 내가 낫지 않나요. 나는 다시 일어나 말끔히 세수하고 PD에게 정중하게 사과한 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서론, 본론, 결론의 나열이 아닌, 한두 줄의 짧은 글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짧은 글쓰기를 하면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되고, 그만큼 생각 주머니도 한 뼘 커지게 됩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전해주기도 하고요. 군더더기가 가득한 글이 아닌 한 줄의 강력한 메시지를 써 보세요. 당신이 쓴 글로 어쩌면 닫혀 있던 상대방의 마음이 눈 녹듯이 녹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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