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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니 Dec 11. 2022

1994년, 그놈의 '키높이 운동화'가 뭐길래

글쓴이의 성격과 성향이 묻어난 글

1994년에 유행한... 그놈의 '키높이 운동화'가 뭐길래







우리는 가끔 상대방의 발언에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고, 말 그대로 혼(魂)이 빠진 사람처럼 반응할 때, "영혼이 없네."라고 말합니다. 글에도 영혼이 없는, 그야말로 죽은 글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죽은 글은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격식을 차린 글. 둘째는 본인 사연이지만 거짓이 들어간 글. 셋째는 어디서 가져온 글. 넷째는 타이밍을 놓친 글. 다섯째는 생동감이 전혀 없는 글이에요. 결국 글에는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혼을 담아 써야 하죠. 즉, 생생하고 솔직하게요.







키높이 운동화가 뭐길래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는 굽이 4~5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높이 운동화’가 유행이었다. 일명 '빠른 생'으로 7살에 입학한 터라 키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키순으로 전교 1번이면 말 다 했으니 말이다. 6학년이라고 해봐야 여전히 키순으로는 5번 이하를 면하지 못했다. 키높이 운동화는 나의 꿈이자 이상(理想)이었다. 무조건 '키가 커 보이는' 운동화를 신어야만 했다. 어느 날, “엄마, 저도 키높이 운동화 갖고 싶어요.”라며 불쌍한 눈망울로 애원했다. 막내딸의 절실한 애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집에 있는 운동화도 한두 켤레가 아닌데, 얘가 뭘 또 산다는 거야?”라며 곧 내리칠 것 같은 도끼눈으로 단 번에 거절하셨다.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해 주시지... 야속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엄마의 마음은 곧게 뻗은 대나무보다 단단했다. ‘아, 전략을 바꿔야겠구나. 우는 아이에게 젖 더 준다는 말처럼 제대로 떼써야지.’라는 뜨거운 결심을 했다. 엄마의 우직한 마음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 셈이다. 금식을 선언함과 동시에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사람이 무언가에 간절하고 절박하면 보이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 그때 내 마음도 동일했나 보다. 덮고 자는 이불보를 다 뜯어냈다. 하얀 솜털을 세상 밖으로 인도하듯 모조리. 억울한 사연을 안은 한(恨) 맺힌 여인처럼 펑펑 울면서 말이다. “키 작아서 서러운데 운동화 하나도 안 사주고! 엉엉. 사 주면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는데, 엉엉.” 최대한 가엾고 불쌍한 톤으로, 거실에 있는 엄마 귀에 들리도록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학교에 갔다. 오후가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책상 위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상자 안에는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키높이 운동화가 들어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고 싶어 내 볼을 꼬집었다. 운동화 위에 놓인 메모지를 보고 나서야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니야, 네 간절함이 통했나 봐. 엄마가 일찍 사주지 못해 미안해. 예쁜 운동화 사줬으니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열심히 하렴.’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도 잠시,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울고 말았다. 어린아이처럼 떼쓴 내 모습에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운동화를 얻어낸 날을 떠올리니 코끝이 찡해졌다. 바로 사줄 수 없던 엄마의 속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릴 때 우리 집 형편은 가난까지는 아니지만, 부유하거나 넉넉하지 않았다. 평균 이하(?)라고 해야 하나. 전기료와 수도료를 아끼려 고군분투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밤새 화장실 욕조에 수도꼭지를 살짝 틀어놓고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을 받던 엄마다. (이렇게 하면 수도료가 납부되지 않는다는 말이 그때는 있었다. ㅎㅎ;;) 버스로 10개 정거장 이내는 도보를 택하실 정도로 돈을 아끼셨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악착같이 살던 엄마인데, 갑자기 키높이 운동화라니... '그까짓 운동화 한 켤레가 몇 푼이나 한다고...'라는 생각이 드는가? 누군가에게 '그까짓' 같은 돈이 당시 우리 엄마에게는 몇 십만 원 이상으로 큰돈이었을 거다. 새벽 1시 20분을 향하는 이 밤, 키높이 운동화를 사기 전까지 며칠 동안 고민했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길이가 짧든 길든, 되도록 살아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위 이야기처럼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창피한 순간이나 부끄러운 사연도 공개를 하는 이유는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마치 이야기 속에 있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생생함을 느끼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내가 했든, 타인이 했든 입 밖으로 뱉은 말인 대화체를 글에 녹여 보세요. 화가 나면 화난 대로 쓰고, 기쁘면 기쁜 그대로를 대사로 푸세요. 당시 혹은 현재 가진 속마음을 솔직하게 꺼내 보세요. 글쓴이의 성격과 성향이 묻어난 글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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