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같은 회사 직원과 썸을 타고 있는 한 지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연애할 때 ‘밀땅’을 하지 않았다. 남녀 간의 관계에서 미묘한 심리 싸움은 안 한다는 말이다. 좋으면 좋은 대로 표현한다. ‘왜 이 시간까지 나한테 연락이 없지?’라며 기다리기보다 궁금하면 내가 먼저 연락했다. 한 지인은 이런 내게 “네 마음을 너무 드러내면 남자가 싫증을 느껴서 도망갈지 몰라.”라며 필요에 따라 밀땅해야 한단다. 하지만 밀땅을 안 한다는 이유로 나를 떠나는 남자라면 나 역시 한 트럭을 갖다 줘도 사양하리라!
내가 밀땅을 안 해서인지는 몰라도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괜히 안 그런 척 돌려 말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나만의 방식대로 풀어써야 직성에 풀린다. 괜히 돌려서 썼다가는 읽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지니 님의 글은 술술 읽혀요.”라는 말을 듣는다. 감사하게도 한 권 한 권 쓸 때마다 자주 듣는다. 내 글이 잘 읽힌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안 좋은 의미'인 줄 알았다. ‘글이 그렇게 쉬운가?’라는 생각에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꿋꿋하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술술 읽힌다는 말이 칭찬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술술 읽히는 글의 비법은 뭘까? 이미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글은 초보자를 위한 에세이 쓰는 법이니 언급하겠다.
첫째, 되도록 한 문장의 길이는 짧게 한다. 둘째, 부사를 시시때때로 넣지 않는다. 셋째, 한 문장에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등장시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술술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하기》의 저자 윤태영은 선택과 집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이든 말이든 전하고 싶은 모든 내용을 한꺼번에 쏟아낸다는 것은 정말로 불가피한 경우로 국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도 버려야 하고, 둘째도 버려야 하고, 셋째도 버려야 한다. 버리기 아깝더라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훌륭한 말하기가 된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가장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주제가 많아질수록 단위 꼭지의 비중은 그만큼 적어질 수밖에 없다. 듣는 사람들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용량에도 한계가 있다. 반드시 전달할 내용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내려놓고 쓰세요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가?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 다 잡으려 하다가 모두 놓친 적은 없는지? 자신의 바라는 꿈으로 가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 전에 반드시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내려놓는다는 말은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짜 내 것을 갖기 위해 잠시 인내하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글에도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이 이야기도, 저 이야기도 다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읽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해당 주제에 맞는 이야기만을 들려줘야 한다. 그래야 글이 술술 읽힌다.
어떤 책은 내가 잘 읽어보려 애를 써도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마음먹고 읽으려 했다가 괜히 머리만 깨진 적도 있다. 하지만, 내 침대에 누워 달콤한 잠을 청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 있다. 물론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고 해서 내용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다. 게다가 한창 독해력을 키워야 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는 반박의 요지가 될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독자와 통하는 글쓰기를 하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으면 한다. 해마다 독서량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꺼내는 일이 어디 쉬운가? 큰마음먹고 책 한 권 읽어보려는 독자에게 실망을 줘서는 안 되리라.
글쓰기에 유독 관심이 많은 친구가 나를 찾았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던 친구인데, 집에서 반대가 심해 몰래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글을 쓸 때마다 내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한 나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글을 봐주었다. 평소에 내게 이야기를 조리 있게 잘하는 친구라서 어느 정도 잘 쓸 줄 알았는데 완전히 내 예상을 빗나갔다. 부탁한 대로 원고를 보는데 술술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단어나 문장도 없는데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이상했다. 두세 번 더 읽으니 그녀가 글에 힘을 주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곤 이렇게 조언했다. “글 쓸 때 말이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한테 말하듯 써 봐. 네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것 같은 사람한테 하듯 말이야.”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며칠 후, 다른 주제의 글을 내게 보냈는데,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달라져 있었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이고 술술 읽히는 글이 됐다. “글이라고 느끼는 순간, 남에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쓰기가 어렵더라. 근데 네가 말한 대로 친한 친구한테 말하듯이 써 보니 훨씬 잘 되더라! 조언해 주서 정말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우리의 인생은 술술 넘어가지 않는다. 결코 물 흐르듯 순탄하지 않다. 고난과 시련이 있어야 그 안에서 배울 점이 있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중간에 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읽을 때 거치적거릴 뿐 진도가 나가지 않고 흐름이 끊겨버린다. ‘이렇게 써도 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술 넘어가는 글을 쓰자. 독자와 통하는 글은 괜히 아는 척 혹은 구구절절한 중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심플하고 편안한 글임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