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정신없는 육아로 티브이를 못 보지만, 나는 KBS1 <아침마당>의 애청자다. 특히 목요일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나와서 해당 주제를 자신의 인생과 엮어 이야기를 전한다. 몇 년 전, 뇌 전문의가 나와서 이야기를 전했다. 일반인들에게 의학 용어나 법, 경제 용어는 어려울 수 있기에 나 역시 ‘의학 강의인데 재미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초반 5분 동안은 색안경을 끼고 들었다. 그런데 강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분명히 어려운 의학 용어인데 굉장히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청중이 의학 분야와는 거리가 먼 것을 알고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준비한 것이다. 충분히 전문 용어로 설명할 수 있었음에도 청중을 배려한 모습에 감동했다.
우리가 글을 쓸 때도 이와 같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글인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어려운 단어를 섞어 쓴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마음에 상처를 입어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자랑만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꼴은 아닐까? 일단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나 혼자 읽고 서랍 속에 넣어 놓는 일기가 아니라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글은 곤란하다. 아무리 해당 분야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해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글이 아니라면 이기적인 글이 되기 십상이다.
1. 쉽게 읽히는 글
나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갈 길이 아~주 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냥 글쓰기가 재미있어서 꾸준히 쓴 것뿐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때마다 ‘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단어를 알지?’, ‘뭔가 되게 있어 보이는 글이다.’와 같은 생각을 하며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내가 쓰는 글은 특별히 어려운 문장이나 용어가 없기 때문에 내 눈에는 그게 부러워 보였던 거다. 그런데 블로그를 하면서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지니 님의 글은 부담이 없어 좋아요.”, “글이 참 쉽고 좋아요.”라는 댓글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글에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글을 못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에게는 편안하고 쉽게 읽히는 좋은 글이구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을 쉽게 써야 읽는 사람이 잘 이해하고, 잘 이해해야 공감할 수 있다. 나 (글쓴이)만 알고 있는 단어와 말투로 빼곡히 한 장의 글을 채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그 글은 타인이 아닌, 나만을 위한 글로 묻히게 될 것이다. 전공 서적이 아닌 이상, 글은 중학생이 읽어도 한 번에 이해가 가도록 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해당 주제가 무거워 어쩔 수 없다는 글은 이해하지만, 되도록 쉽게 풀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괜히 어려운 단어 사용으로 있어 보이는 척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면 좋겠다.
2. 상대를 배려한 글
몇 년 전,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이의 글쓰기를 봐준 적이 있다. 매주 한 번씩 아이의 집에 가서 독후감이나 일기, 기행문 등의 다양한 글을 봐줬는데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아이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쌓인 정도 있고, 말도 참 잘 듣던 착한 아이여서 아쉬움이 더욱 컸다.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 미리 준비해 간 선물과 편지를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 나한테는 쉬워 보이는 단어나 문장도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아직은 버거울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요했다. 편지를 쓸 때는 유치해서 오글거리는 문장도 있었지만, 아이의 시선에는 좋을 것을 알기에 꿋꿋하게 쓴 기억이 난다. 당시 또래 아이들이 즐겨 보는 만화 주인공 이름까지 섞어서 쓸 정도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글을 쓰기 전, 읽는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써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인지, 중·고등학생인지, 나와 같은 또래인지, 아니면 한참 연배가 높은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써야 실수하지 않는다. 그래야 상대방 기준에서도 쉬운 글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공감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진다.
3. 친절한 글
나는 3년 동안 중국에서 살았다. 1년은 하얼빈(哈爾濱)에서, 1년은 상하이(上海)에서, 나머지 1년은 칭다오(靑島)에서 보냈다. 중국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다. 중국어가 좋아서 어학연수를 갔다가, 그 나라 문화에 빠져 다시 가서 살아보기로 하고, 더 깊이 중국을 느끼고 싶어 취업을 목적으로 또 한 번 가게 된 것이다. 귀국한 지 이미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TV에 중국이 나오면 바로 달려가서 볼 정도로 관심이 많다. 지금은 아니지만, 초반에 블로그를 운영할 때만 해도 내용의 대부분은 중화권과 연관이 있었다. 중국에서 3년 동안 생활한 걸 제외하고 홍콩, 대만으로 여행도 여러 번 다녔기 때문에 여행 일지도 꽤 적혀 있다. 자연스럽게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이웃들은 중국어 혹은 중화권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미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되기 때문에 많이들 찾아와 주신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이웃이 중화권에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남긴 포스팅 내용 중에서 중화권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동네 어른들은 마장 (麻将)에 정신이 팔린 듯해 보였어요.”라는 글만 보면 ‘마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글귀에 사진을 꼭 첨부한다. 만약 사진이 없다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라도 정확한 뜻풀이를 적는다. 이렇게 하면 중국 문화에 관심이 없거나, 생소한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글쓰기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나만 알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생각은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없다. 이렇듯 쉬운 언어로 공감을 산다는 것,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어려운 단어는 쉬운 말로 풀어쓰거나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상대방의 연령이나 지위에 맞게, 유행어나 이슈를 언급할 때에는 시대 상황에 맞는 것으로 해야 함을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