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일찌감치 롱패딩을 꺼내어 한 번 입어 봤어요. 자연스럽게 지퍼를 올리려는데.... 세상에... 지퍼가 도통 올라갈 생각을 안 하더군요. 힘으로 잡아당기면 고장이 날 듯해 신생아를 다루 듯이 살살 올렸는데도 꿈쩍을 안 하더군요.
미동 없는 지퍼
'이런, 더 추워지기 전에 매장에 가서 A/S를 맡겨야겠다'
그날 저녁,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내 패딩 지퍼는 잘 되는지 봐야겠다." 하면서 내 앞으로 가져와 입더라고요. 그러곤 지퍼를 쭉 올리려는데, 헉! 남편 지퍼도 꽁꽁 언 얼음처럼 꼼짝하지 않는 거 있죠. "1년 동안 안 입어서 지퍼가 딱딱(?) 해진 건가?"라는 말 같지도 않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은 남편은, "주중에 매장에 가서 A/S 신청해야겠다. 두 벌 다 가지고 가야겠네."라며 쌀가마니 부피와 맞먹는 롱패딩 두 벌을 주섬주섬 정리했어요.
며칠 후 저녁,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온 후 저희 네 식구는 롱패딩을 구매한 동네 아웃렛으로 향했습니다.
"두 벌의 지퍼가 다 안 돼서 A/S 맡기러 왔어요."
"두 벌 다요? 여기에 올려놔 주시겠어요?"
구세주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거대한 롱패딩 두 벌을 계산대 위에 두었습니다. "제가 한 번 볼게요!"라며 롱패딩을 집어 드는 점원. 시도해 봤자 어차피 안 될 것을 염려(?) 하는 눈빛으로 지켜봤지요. 그런데... 패딩 맨 위 있는 지퍼 하나를 집고 아래로 내리는 게 아니겠어요?
위에 또 다른 지퍼가...
헉!!!!! 아차 싶었습니다... 지금 제 상황, 이해가 되시나요? 네... 저희 롱패딩은 지퍼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가 달린 겁니다. 이중 지퍼죠.
부드럽게 잘 올라가는 지퍼 -_- ㅎㅎ
(투웨이지퍼 = 이중 지퍼) 롱패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퍼 방식. 지퍼 슬라이더를 두 개 달아 위, 아래로 여닫을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 운전할 때, 의자에 앉을 때, 바지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꺼낼 때, 큰 보폭으로 걷고자 할 때는 아래에 있는 지퍼를 위로 올리면 편리.
"아, 맞다... 이중 지퍼였지... 세상에...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나..."
미치도록 민망한 상황에 내 입에서는 온갖 핑계가 줄줄이 사탕으로 뿜어져 나왔어요. 남편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연신 쏟아냈고요. 이런 우리 마음을 알랑가 모를랑가 점원 분의 한마디...
"두 분 다 지퍼가 고장이 난 줄 아셨던 거예요?"
악! 그만! 너무 창피하다고요! ㅠㅠ'
"이중 지퍼임을 우리는 왜 잊고 있었을까?"
"그러게 말이야..."
'우린 덤 앤 더머가 확실해'를 인정하는 듯한 눈빛을 교환했어요. 더 민망해지기 전에 얼른 매장을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남편도 이중 지퍼임을 깜빡했대요. 하하..."
"두 분이 천생연분이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저희 같은 고객이 또 있었나요?"
"아뇨! 처음이에요~ 하하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놈의 오지랖 아줌마...
1절만 하지, 뭘 또 질문이라고 그걸...
2차 3차 민망해하는 나를 두고
남편은 나갈 채비를 하더군요.
(그래, 어서 매장을 빠져나가자!)
애써 웃으며 인사한 뒤,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엄마! 왜 잠바 다시 가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5개월 큰딸아!!!
그냥, 그냥...
모른 척하면 안 되겠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교훈] 아무리 살림에, 육아에, 일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해도, 정신 똑디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