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니 자기계발서 <꽂히는 글쓰기의 잔기술>
글쓰기는 결국 습관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하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의미다. 정확히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내가 했던 일은 모두 글쓰기와 연관이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글쓰기를 향한 나의 열정과 사랑은 누구보다 전문가라고 자신한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말 그대로 ‘현재’의 모습일 뿐, 과거에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이 좋았다. 여기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당시 나는 그저 좋아만 했다. 초등학교 때는 일기 쓰기와 교내 글짓기 대회를 참가하며 꾸준히 글을 썼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교환 일기와 편지, 독후감, 기행문, 감상문 등의 생활 글을 썼다. 특히 지금까지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은 풋풋했던 여고 시절에 쓴 10권이 넘는 교환 일기장이다. 친구 M양과 썼던 일기장은 1,000일이 넘게 이어졌고, 일기장만 무려 8권이 넘는다. 열심히 학업에 전념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무려 세 명의 친구와 교환일기를 쓴 것이다. 하교 후에 쓴 일기만 세 권이 되었다. 양심상 동일한 내용으로 일기를 채운 적은 단언컨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래, 자랑이다…)
쓰는 게 좋았다. 억지로 하려고 했다면 편지도 한 장 쓰기 싫었을 것이다. 꾸준히 쓰다 보니까 습관이 됐고, '아, 오늘도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펜을 쥐게 되었다. 가끔 그때 쓴 일기장을 들추곤 하는데 유치해서 봐줄 수가 없다. 하루를 나누는 일기장 안에는 당시 좋아했던 연예인을 비롯해서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라디오 등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오락실과 동전 노래방 이야기는 그 뒤를 이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어지간하게 공부 안 했구나, 싶다. 교환 일기장 외에도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비밀 일기장'도 적었다. 중학교 때 2년 동안 짝사랑했던 선배 오빠 이야기, 시험 성적 이야기, 반에서 얄미운 친구 이야기 등을 적었다. 그때도 '꿈'을 빼면 시체였던 나였기에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이야기도 단골손님이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번역 일을 했을 당시 “번역은 머리보다 엉덩이의 힘이 강한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자신이 번역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업체에서 의뢰받은 수많은 번역 물량을 감당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시간과 노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둘이 더해져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쯤 해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중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지도 벌써 11년이 지났다. 처음 중국어를 배울 때는 그저 한자(漢字)가 좋아서 거부감이 없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운 언어임을 느끼고 있다. 이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 가운데 우리말과 중국어가 5위 안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 다했다.
2005년, 중국 하얼빈으로 어학연수를 가기 전부터 스스로 독한 마음을 먹었다. 반드시 중급 이상의 회화 실력을 갖추고 돌아오자고 말이다. 중국에 도착해서 더욱 치열하게 공부했다. 아니 치열하게 중국어와 놀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난 애초부터 '공부'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 가운데 한국인 비율이 가장 많았음에도 나는 일부러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는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수업이 끝나면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중국어 실력은 물론 평생의 인연까지 만든 셈이다.
숙소에 돌아오면 중국 TV 드라마를 보며 모르는 단어나 문장을 재빠르게 노트에 기록했다. 그렇게 꾸준히 적은 나만의 단어와 문장이 7천 여 개가 넘는다. 잠들기 전에는 무조건 라디오를 켰다. 중국 라디오는 TV와 마찬가지로 뉴스, 경제, 음악, 영화 등 분야별로 채널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골라 들을 수 있어 부담이 적었다. 당시 나는 음악 채널을 듣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수업에 갈 준비를 할 때에도 어김없이 라디오를 들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외출 준비를 할 때면 어김없이 중국 라디오를 듣는다. 이 습관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한 일과가 되었다.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난생처음 '습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알게 되었다. 중국어와 10년 넘게 함께한 나는 회화를 할 기회는 자주 없지만 ‘듣기’ 습관 덕분에 중국어 영화나 드라마는 자막 없이도 90% 이상 알아듣는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꾸준히 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 ‘끈기’가 약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슴이 시키는 일, 잘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중국어가 그랬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잘 쓰고 싶은 나는 한두 줄의 메모를 시작으로 ‘습관’이라는 녀석과 친해지기로 했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내 편이 되어줄 거라 확신했다. 작가 양지숙은 《운이 따르게 하는 습관》에서 ‘습관’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하는 파트너입니다.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커다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을 승승장구시킬 수도 있지만,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충실한 종입니다. 위대한 사람의 종이기도, 타락자의 종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위대하게 된 것도, 타락자가 된 것도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계가 아닙니다. 당신은 나를 당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게도 반대로 파멸에 가까워질 수 있게도 그 어느 쪽으로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어느 쪽도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당신을 성공의 길로도, 실패의 길로도 갈 수 있게 합니다.”
‘인생의 후반부는 인생의 전반부 동안에 얻은 습관들로 이루어진다’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당신 인생의 후반부를 상상한 적이 있나? 혹시 글과 친해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습관을 들여 보라. 하루 이틀 쓰는데 그치지 말고, 100일이라도 꾸준히 말이다. 100일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습관으로 이어질 것이다. 단, 글을 쓰려는 목적이 분명할수록 좋다. 이 책을 구입해서 읽을 정도면 당신은 이미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글을 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질문에 빠른 대답을 할 수 있다면 100일은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자, 아직도 타인이 이뤄낸 결과에 부러운 눈빛만 쏘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