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는 그 말에 걸맞게 내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문을 두드린다. 일주일 전, 여느 때와 같이 메일함을 열었는데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천 서구에 위치한 OO 도서관 행사 담당자 OOO입니다. 작가님의 블로그를 보고 온라인 수업으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고 싶어 연락드립니다."
문뜩 3년 전 일이 떠올랐다. 첫 책 <꽂히는 글쓰기의 잔기술>을 출간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 온라인 글쓰기 강의를 제안받았다. 신인인 내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다. 지금 같으면 넙죽 절이라도 하며 당장 하겠다고 했을 테지만, 당시 나는 감사함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강의하다가 버벅거리면 어떡하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몇 날 며칠을 끙끙댔다. 마치 애인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끼니도 거른 채 방 한구석에서 걱정과 고민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거절'의 최후를 택했다. 이후에 후회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터. 좋은 기회를 내 발로 찬 것 같은 죄책감에 고개마저 숙여지는 날이 적잖았음을 고백한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도전'이란 마냥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일단 첫 발을 내딛는다면, 다음 스텝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 담당자와 몇 번의 교류를 마친 뒤 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뒤로 물러설 수 없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 다행이다. 이제 강의 준비에만 신경 쓸 수 있으니. 내 안에 더 이상 두려움 따위는 없다. 아자 하자!
"사람 인생, 아무도 모른다"
한 주에 서너 번은 친정댁에 가서 점심을 해결한다. 누가 "엄마한테 딸은 꼭 있어야 해!"라고 했던가. 나 같은 딸 하나만 더 있어도 친정댁 거덜 내는 건 시간문제다. (언니는 멀리 살아서 자주 못 옴) 걸어서 7분 거리라 차도녀(차 없는 도시의 여자)인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날은 엄마에게 '도서관 글쓰기 강의' 제안을 자랑하고 싶었다. 바로 말하면 재미없기에,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엄마, 나 학교 다닐 때 공부 지지리도 못 했던 거 알지?"
"그래? 난 너 잘한 줄 알았는데?"
세상에... 아무리 피가 물보다 지나다지만, 막내딸 수준을 새까맣게 잊고 계시다니... 어차피 지난 일이니,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더욱 거침없이 늘어놓았다.
"무슨 소리야! 국어랑 한문을 제외하고는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였는데. 킥킥. 수학은 4점짜리 두 개 맞아서 8점인 적도 있은걸? 한 번호로만 찍어도 20점은 넘었을 거야, 아마?! 하하."
'아이고, 그래 자랑이다' 어릴 적 실력(?)을 몰라주는 엄마에게 더욱더 피부에 와닿도록 설명을 이었다.
"성적표에 하도 양, 가만 있어서 엄마 몰래 도장도 찍고, 엄마 글씨체 흉내 낸답시고 '부모님 말씀'에 글도 대신 적었지! 심지어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 후에 담임 선생님이 따로 남으라고 하시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꼴등부터 뒤에 다섯 명을 부르신 거 있지. 소위 '날라리' 애들만 있는 틈에 나름 얌전한 내가 껴 있길래 이상하다 했는데... 하하하 (웃음이 나오냐?-_-) 성적순이었어."
"세상에, 어지간히 못했구나... 난 그런 줄도 몰랐네..."
"그런 내가 이번에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맡게 됐네!"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이 내게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꿈이야 생시야를 논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진실과 마주 하고픈 엄마는 연신 "뭐라고?" "네가?" "정말?" 이라는 말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뱉어냈다.
"널 보면서 느끼지만, 정말 사람 인생은 하늘 외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 너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아시면 깜짝 놀라시겠다!"
은근슬쩍 딸이 자랑스러우신 모양이다. 엄마 말처럼 학창 시절의 나는 부모님 외에 어느 스승의 기대도 받은 적이 없다.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뭐 하나 뛰어나게 잘하지도, 잘 놀지도 못한 아이가 나였다. 이런 내가 감히 누군가를 가르치다니.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게 되다니.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닐 수 있지만, 내게는 램프의 요정 지니의 도움이 온 것 마냥 놀라운 일이다.
나의 과거 때문인지 학업 성적에 왈가불가하는 학부모나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안 좋다. 공부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분명 재능의 한 부분인 것을. 무조건 "공부, 공부!"할 게 아니라, 그 아이가 정말로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이 인생을 위한 길임을.
새삼 '네 멋대로 해라' 식의 부모님 교육에 빛이 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준비물, 과제 하나 신경 쓰지 않으셨다. 혹자는 '그것은 무관심이야!'라 여기겠지만, 아니. '자립심'을 키워주신 것이다. 수없이 실패하고 넘어져도 하고픈 길에 단 한 번도 반대가 없으신 나의 부모님.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 진짜 값진 경험이고 인생임을 알려주신 두 분께 감사드린다.
고로 나는, 황금같이 찾아온 이번 글쓰기 수업의 기회를 제대로 살려볼 작정이다. 늦어도 내년 초부터 개인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려 했는데, 이번 기회가 발판이 된 것 같아 더욱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