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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대신 부동산 계약서 쓰는 그녀, 이제는

19년 차 직장인의 브런치 입문기

by 행복한워킹맘

2020년 경자년, 올해 저는 19년 차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처음 문을 두드린 그 회사에서 19년을 다니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참 오래 다녔죠? 저도 제가 이렇게나 오래 다닐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추억이 많습니다. 회사에서 쌓인 추억도 있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까지요. 신기한 것은 송곳으로 내 마음을 찌르던 일들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라는 면사포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웠던 그 밤들 이제, 기억나는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수십 번 깨서 우는 둘째를 달래다 베갯잇을 적시던 눈물과 함께 했던 그 새벽 4시도. 팀장님을 앞에 두고 보고 자료 수정하던 속 타던 그 새벽 2시의 기억들까지 말이지요.


5년 전, 지긋지긋한 회사를 벗어나고 싶어 부동산 계약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내 손으로 일군 뒤 멋지게 사표를 던지려고 41살 늦은 나이에 시작한 부동산 투자는 주행거리 30만을 훌쩍 넘긴 차에 새 엔진이 되어 주더군요. 예상치 못한 결과였지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새 엔진을 장착하고 5년을 신나게 더 달렸습니다.



작년 4월에는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에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내가 작가가 되었다고? 기술보고서나 쓰고 발표 자료 PPT 헤드 메시지 2줄을 쓰던 내가?


회사 생활 20년을 늘 숫자, data로만 분석하고 연구하던 저에게 200자 원고지 5장을 채우라지 뭡니까. 그나마 책을 꾸준히 읽던 습관이 지푸라기가 되어주었고 19년의 회사 생활과 사표 대신 계약서를 썼던 지난날이 글의 소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글을 올리다 보니 조회수 1000, 2000, 3000을 넘어 몇십만 명이 제 글을 읽어 주셨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18workingmom

사표 대신 계약서 쓰는 워킹맘


제가 처음으로 만든 브런치 북입니다.

읽어 주신 독자분 그리고 댓글로 용기와 응원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번만 홍보하고 갈게요. 저에겐 세 번째 자식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나, 글 쓰는 작가야!' 어깨에 들어갔던 뽕은 브런치 북 공모전에서 쭉 미끄러지며 사라졌습니다. 기적은 없었지만 희망 보았습니다. 브런치 입문 7개월 차에 누적 조회수 100만을 넘었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감을 잡는 한 해를 보냈으니까요. 어느새 제가 브런치를 분석하고 있더군요. 19년 차 연구원 답지요?





사표 대신 부동산 계약서를 쓰던 워킹맘 그녀는 브런치에서 글을 쓰 있습니다.

올해도 저는 사표는 쓰지 않을 예정입니다. 사표는 커녕, 글쓰기라는 패가 더해져 회사를 더 오래 다니게 될 판이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니 돈을 주고서라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사고 싶어 집니다. 브런치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회사는 온갖 인물 궁상들과 에피소드가 넘치는 곳이더군요. 멘탈이 탈탈 털린 엊그제 보고도, 와이프(제가) 회식하고 늦게 와서 화가 난 남편과 한 달째 이야기 안 하고 있는 지금 상황도 글로 푼다면 재밌는 에피소드가 될 것입니다.

회사 다니며 글을 쓰게 되니 사람들의 작은 몸짓 하나에, 퇴근길에 들리는 작은 소리 하나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부장님의 잔소리를 잔뜩 끌어안고 퇴근하는 직장인의 지친 발걸음 소리, 아픈 첫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노심초사했던 워킹맘의 깊은 한숨 소리 같은 것들 말이지요.


사표 대신 글을 쓰게 되었다 자랑질하러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표 대신 부동산 계약서를 그리고 글을 쓰면서 회사 다니기에 한결 숨통이 트였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숨통을 돌리는 다른 일을 찾아도 여전히 회사 오는 것이 지옥과 같다면 과감히 사표를 던지셔도 됩니다.


'사표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던지고 싶을 때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중 평일 5일, 71%를 회사가 하라는 대로 맞추어 살고 있는데 내가 나가는 날도 맘대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너무 슬픈 새드엔딩이 아닐까요?


해피 엔딩을 위해서는 좋은 패 최소 한 개 정도는 들고 있어야 합니다. 풀 하우스까지는 아니더라도 퀸 원 페어쯤은 들고 있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저는 아무 패가 없는데도 뻥카를 칠 만큼 포커페이스가 아니어서 2개의 패를 가지게 되었나 봅니다.

여러분들은 몇 개의 패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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