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아빠와 함께 운동화를 사 왔다.
아뿔싸. 끈을 묶어야 하는 운동화다.
첫째는 운동화 끈을 묶지 못한다. 알려주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매번 싫다며 따라 하지 않았다.
난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끈을 묶을 필요가 없는 신발만 골라서 샀다.
그런데 신발 구입을 아빠와 아이에게 맡겼더니 이런 상황은 고려 없이 끈이 있는 운동화를 사 왔다.
신발끈이 풀어지자 아이는 끈을 묶지 못하고 대충 신발 어딘가에 끈을 찔러 넣고 신고 다녔다.
아니 이런 것도 가르쳐야 아는 것일까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가 중1이 되도록 운동화 끈도 못 묶는 건 내 탓도 있기에 그냥 두었다.
얼마 전에 교복을 맞추러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단추를 잠그고 푸는 걸 힘들어했다.
헐렁한 단추는 시간이 걸리긴 해도 잠그고 풀 수 있었으나 청바지처럼 좌우를 당겨서 해야 하는 경우는 너무 어려워했다.
이후 아이는 엄마가 고르고 고른, 매우 부드럽고 입고 벗기 쉬운 옷들만 입었다.
아이 대신 단추를 잠가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단추 앞에서 쩔쩔매며 짜증 내는 아이의 모습은 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교복을 입어봐야 하는 상황이 왔다.
아이는 교복 판매점 탈의실에서 10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못했다.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잠그고 치마의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잠가야 하는 미션 앞에서 쩔쩔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아이는 겨우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두 사건을 겪으면서 '아이의 어려움을 없애주려는 부모의 사랑은 옳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야 부모가 아이를 전적으로 도와주는 게 맞지만 아이가 크면서는 서서히 아이가 혼자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기저귀 떼기처럼 큰 발달과제들은 신경 써서 챙기지만 그 외 세세한 것들은 의외로 별생각 없이 부모가 대신해 주거나 아예 아이의 어려움을 없애 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아이는 혼자 해낼 수 없게 된다.
답답하고 오래 걸려도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끙끙대는 애가 안쓰러운 건 둘째치고 답답하고 속이 터진다.
한 두 번만에 잘할 리 없으니 몇십 번이고 기다려야 하는데 출근 시간이 임박한 상황처럼 시간이 없을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심지어 아이가 스스로 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기다림이 너무 버겁다.
대신해 주는 게 쉽다. 그러다 보니 계속 대신하게 된다
대학생 아이 대신 교수님들에게 전화를 하는 부모나 , 직장에 늦거나 결근한 자녀 대신 직장 상사에 전화를 하는 부모들이 멀리 있지 않구나 싶었다.
그들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작은 어려움들을 치우며 살다 보니 그곳까지 도착했던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부모가 생업에 바빠서 아이를 보살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옷이나 신발의 선택도 제한적이라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모가 아이의 일상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길 수도 있고, 열심히 검색하면 아이의 불편함 정도는 얼마든지 없애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이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 혼자서 해내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저귀 떼기처럼, 부모의 도움 떼기도 발달 과제가 되어버렸다
'뭘 더해줄지' 말고 '뭘 뺄지'를 고민해야 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