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이들 점은 몇 살부터 뺄 수 있나요?"
피부과에 들른 김에 첫째의 얼굴에 급격히 늘어난 점을 언제 없앨 수 있는지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아이가 원하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아..."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지만 어떤 의미인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점을 빼려면 아이가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야 하고, 끈적한 마취 크림을 바르고 기다려야 하고, 따끔한 레이저를 참아 내야 하고, 그다음에 일주일 정도는 잘 관리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아이가 기꺼이 참아낼 수 있을 때, 그때 점을 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부모가 원할 때'가 아니라 '아이가 원할 때'이다.
그런데 이게 비단 점 빼기만 해당하는 말일까.
아이가 어릴 때야 부모 뜻대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그럴 수 없다.
"엄마 뜻만 중요한 게 아니야! 내 의견을 들어줘!'라고 아이가 외친다.
처음에는 이 반항이 당황스럽지만 사실 아이 말이 맞다.
우리 집의 정해진 규칙 외에는 아이가 무엇인가 견뎌내야 하는 결정이 있다면 아이 의견대로 하는 게 맞다.
점을 빼는 사소한 일부터, 공부에 관련된 일까지, 아이가 커가면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다.
인생을 먼저 살아 본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인데, 아이가 싫어한다고 해서 안 하는 게 맞는가?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범위를 잘 정해야 한다.
첫째는 어릴 적부터 나의 모든 제안에 "싫어"라고 대답하던 아이였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싫다는 아이를 설득해서 끌고 가려면 아주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고, 그게 심지어 여러 번 해야 하는 것이면 그때마다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아이가 6살 때 수영을 배우러 다녔었는데 싫다는 아이를 데리고 갔더니 갈 때마다 많이 울었다.
그때는 '아이가 싫다고 안 하면 앞으로 뭘 배우겠어!' 이런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싫다는 아이를 기어이 데리고 1년 반을 다녔다.
매번 우는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가면 아이는 선생님이 시키는 동작을 잘 따라 하지 않았고 그래서 배움이 정말 더뎠다. 1년 반을 해도 자유형 하나를 제대로 못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자연히 수영 수업을 그만두고 나서 고민이 깊어졌다.
그럼 난 어느 범위까지 싫다는 아이를 강제해야 할 것인가?
여러 날을 고민 끝에
학교 생활 + 아이 건강을 위한 루틴은 반드시! 나머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다른 활동은 아이가 요청하기 전까지는 언제까지고 기다릴 것!
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다른 친구에 비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자전거도 못 타고, 악기도 할 줄 아는 게 없고, 운동도 잘 못한다.
가끔씩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다 보면 마음속에 불안이 고개를 든다.
이대로 괜찮은가? 내가 아이를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아이는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히 자라난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걸 스스로 어떻게든 찾아낸다.
얼마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 친구한테 넌 뭘 할 때 행복해?라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도 못하더라"
"그래? 넌 그 질문에 10개도 넘게 대답할 수 있을 텐데? "
내 말을 듣더니 첫째가 씩~웃는다.
"엄마 그거 알아? 내 친구들은 부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아, 말도 거의 안 한대"
"정말? 다른 집도 너처럼 엄마랑 뽀뽀하고 날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러는 거 아니었어?"
중1인 첫째는 여전히 여가 시간이 많고, 취미도 많고, 날마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못하는 것도 많지만, 잘하는 것도 분명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분명하다.
나서기 싫어서 발표도 안 하던 아이가 갑자기 반장 선거에 나가 보기도 하고, 경쟁률이 만만찮은 인기 동아리 면접을 준비해서 합격하기도 한다
그저 기다리면서 응원하는 엄마는 아이의 이런 시도와 성장이 늘 신기하고 놀랍다.
내가 주도해서 이끌었으면 끝내 보지 못했을 모습일 것이다.
아이가 견뎌내야 하는 것들은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
그게 점 빼기든 무엇이든.
물론 꼭 해야 하는 예방 접종을 안 하겠다고 버티거나,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면 단호하게 하는 게 맞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이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 선택해야 과정을 견딘다. 그래야 진짜 배움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