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용 의지력 자원의 고갈이 야간 양육 정서에 미치는 영향
남자아이를 키우며 좋은 점은 무엇일까?
"발성 연습을 할 수 있다"며 농담을 던져본다.
소리를 치지 않는 하루가 없을 만큼, 정말 매일 혼내거나 다그치는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돌정도까지는 나의 기본적인 수면욕, 식욕, 청결욕(?)을 뒤로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21개월까지 키우면서 이미 나름 포기할 건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요즘, 오전에 나는 거의 ‘보살’에 가깝다. 아이가 아침을 먹다가 우유를 엎질러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같이 닦자~”라며 다정하게 웃어보며 눈을 맞춘다. 이렇게 되기까지도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스포츠 심리학을 통해 갈고닦은 ‘자기 조절’ 능력이 21개월 만에 드디어 빛을 발하는 건가.
하지만 점심에도 아이가 밥을 먹다가 자기가 주스에 빨대를 꽂겠다며 가져가놓고 떨어뜨려서 바닥에 흘렸다. 짜증을 낼뻔했지만, 다행히 소리치기 전에 목구멍에서 막아본다. 그래도 걸레를 가져와 닦으면서 한마디 한다.
"이게 대체 몇 번째니... 에휴..."
그렇게 해가 지고 저녁 9시, 남긴 저녁밥은 식탁 위에 차갑게 식었고, TV 속에 다음 뽀로로 영상을 틀어달라며 이를 닦으려 하지 않는 아이를 마주하면 내 안의 보살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괴물이 고개를 든다.
분명 아침에는 인내심이 넘쳤는데, 왜 점점 밤이 되면 나는 다시 인격 파탄자가 되는 걸까?
예전에 심리학 시험공부 노트에 적어놓고 헷갈려서 틀렸던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이 비로소 내 거실에서 증명되는 순간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통제력은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소모되는 자원의 일종이다. 아침부터 아이의 투정을 받아내고,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나는 이미 ‘의지력’이라는 이름의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저녁 9시의 나는 이미 팔 굽혀 펴기 10개를 50세트 한 것만 같은 멘탈의 ‘오버트레이닝’ 상태인 셈이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화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선 아이에게 버럭 한 자신을 자책한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이건 당신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 단지 오늘 하루 당신의 ‘의지력 배터리’를 다 썼다는 신호일뿐이다.
사실 아침부터 소리를 쳤든, 낮에 소리를 쳤든, 밤에 소리를 쳤든 상관없다. 그때 당시 그만큼 자신의 의지력이 떨어지고 피로도가 쌓여있었다는 것뿐이다.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에게 왜 당장 스쿼트를 못 하냐고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매일매일 육아라는 고강도 훈련을 마친 우리에게 ‘천사 같은 미소’나 '예수님의 포용력'을 기대하는 건 가혹한 일이다.
오늘 밤도 나는 아이를 재우고 침대에 쓰러져 버럭 화냈던 하루를 생각한다.
‘그래, 오늘 나의 의지력 근육이 비명을 지를 만큼 열심히 훈련했구나.’
자책 대신 남편과 함께 단백질 셰이크 같은 맥주 한 캔을 따며 나에게 말해준다.
□ 오늘 내가 예민한 이유가 나의 인성이 아닌 ‘에너지 고갈’ 때문임을 인정했나요?
□ 의지력 배터리가 0%가 되기 전, 나만의 '충전 시간'을 5분이라도 가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