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병민 교수는 한국인이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영어 단어의 양으로 충분히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영어가 어렵고 힘든 걸까요?
제 일화를 하나 소개해보려 합니다.
미국에 가기 전에 영어를 곧잘 하고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have + p.p. 가 중요하다고 그걸 외우고 갔었구요. 초록색으로 된 문법책을 외우고 공부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니 전혀 한국 문법이 필요 없었어요.
사춘기 시절에 미국을 가게 되어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의 범주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결정적 시기의 사춘기 아이들은 영어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시기의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영어로 말하면 내가 틀릴지 불안하고 내 말을 못 알아듣게 되면 수치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이 영어를 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린아이들보다 영어를 하는 데 좀 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미국에 가니 한국말로 역사를 외우는 것도 싫어서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가 미국 역사를 달달 외워야 했었구요. 무엇보다 제가 다닌 학교의 전교생이 4명이 있다가 두 명이 되었습니다. 저포함요.
그러다 보니 벙어리처럼 산 세월이 많이 있었고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고 좋아하고 동아 프라임 사전의 발음기호를 보며 흥미롭게 외웠던 기억이 있는 제게는 모든 게 한계로 다가왔습니다.
하루는 영어를 하기가 너무 싫어서 화장실에 앉아 있었어요. 다행히도 저희 학교는 시설이 좋아서 제가 한두 시간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거뜬하게 버틸 수 있었어요. 오히려 향긋한 냄새가 난 걸로 기억해요.
교감선생님은 "Are you there? Jinny, are you there?" 이라시며 저를 찾으러 다니셨는데 아마도 제가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걸 아셨는지 그 후 별 탈 없이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게 되었어요. 차로 10분 가는 거리가 걸으니 2시간이 걸렸지만 제 마음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날은 꽤 추운 한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구요.
매번 스쿨버스를 집 앞에서 타는데 스쿨버스 기사님과 대화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친구들도 제법 생겨서 영어로 떠듬떠듬 말이 가능할 때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번 기사님들과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야 했었어요.
매번 "Where do you live? Where do you live at?"이라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며 ‘음~ 이번에는 한방에 알아 들었어!’라고 생각하며 제가 사는 주소를 말씀드렸어요.
29 North Hillside Ave.
위 주소는 혹시 거기에 지금도 친척분들이 사실 수 있기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zip code(우편번호)도 외울 정도로 열심히 그 주소를 외웠던 기억이 있어요.
버스 기사님들은 보통 히스패닉분들, 가끔은 다른 백인들이 많으셨는데 그분들의 특징은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제 말을 못 알아듣는다로 기억해요.
매번 위의 주소를 읊으며 천천히, 다소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제 말을 잘 못 알아들으셨죠. 왜 그런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쉼 없이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