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애도합니다

by 나무엄마 지니




사전적 의미의 '애도(哀悼)'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고 한다.

나는 최근 다른 sns에 올라온 꽤 오래전 나와 아이들의 사진들을 봤다. 기록이 좋은 건 가끔 이렇게 내가 지나간 길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녀왔다. 보통 온라인으로 듣는데, 동생이 "언니~ 예배는 꼭 직접~ 예배당으로"라는 말을 잔소리처럼 했다. 한참 어린 동생 말을 잘 듣지는 않지만 나보다 늦게 믿음 생활을 시작한 동생이 교회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내게는 영적 멘토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말을 듣고 좀 생각하다가 교회를 주일날 나간 지 좀 되었다.

교회에 가서 역시나 정말 찐 스토리텔러 목사님 말씀을 열심히 적고 고개도 끄덕이며 나는 어느새 웃음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목사님께 목례도 하게 되었다. 보통은 반대편에 앉는데 죽 이어지게 내려가는 길에 목사님이 서서 인사를 한 명씩 다 하고 있었다. 나는 먼발치에서 두 손을 모으고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대뇌이며 인사를 했다.


sns에서 지난 세월호 참사에 1인 시위를 했던 나의 모습들이 기록처럼 올라왔다. 나를 세월호 참사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전직 중학교 수학선생님께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샘 계정으로 들어갔을 때, 샘은 이태원 참사로 바쁘신 것처럼 보였다. 자주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애도가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 봤다. 교회에서 오는 길에 대형서점에 들러서 이 책을 카페에서 읽기 시작했다.

옆 아줌마들이 너무 떠들어서 얼마나 집중력이 흐려지던지.. 역시 아줌마들은 말이 많고 카페에서 너무 크게 떠든다.. 혹, 이 글을 읽는 아줌마들이 있다면 카페 매너를 좀 익히시면 좋겠다. 내 앞에 있던 어느 젊은 친구는 참다가 짐을 챙겨서 나가버렸다.

만일 내 동생이라면 "야! 좀 조용히 해라!"라고 말하겠지만, 내 동생들이 아니니.. 내가 초반에 속상해서 좀 씩씩거리며 읽었더니 이 책 제목을 보고 저러는지 어쩌는지 몸을 아예 내 쪽으로 돌려서 블루투스 이어폰 음량을 최대치로 올렸는데도 귓구멍에 때려 박듯 아줌마들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잠깐 들렸던 이야기들은,
"아이들이랑 소통이 어렵다" 뭐 학원 이야기.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큰 아이가 요즘은 책을 예쁘게 꾸며주는데 오는 길에 큰 아이에게 보여주니, 거기 시간이 꽤 늦었는지 내일 하면 안 되겠냐고 내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오면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카페에 앉아서 열심히 몇 시간 동안 이 책을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애도를 해보려 한다. 그게 힘이 될지, 안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이렇게 함께 멀리서도 바라보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알려주고 싶다.




...


이태원은 내게는 꽤 먼 동네가 아니다. 지리적인 것보다, 내 심적으로. 나는 미팔군 내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 물론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은 또 해외로 나갔고 다른 친한 친구 한 명도 지금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핼러윈(Halloween)' 또한 내게 어색하거나 낯선 개념의 문화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Trick or Treat이라며 집집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사탕이나 여러 달짝지근한 간식거리를 받는다.

나는 내 친구처럼 한 적은 없지만, 미국에 사는 한 교포 친구가 참 부러운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결혼하고 남편과 친구들과 핼러윈 복장을 하고 이웃들에게 돌아다니는 사진들을 올려놓는데 그게 참 하고 싶기도 했고 좋아 보였다. 이제는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이웃들에게 방문해서 사탕도 받고 파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한남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거기 계신 이촌동에 오래 산 영어샘은 거기 있는 학부모들을 참 많이 아셨다. 보통 거기는 외제차가 즐비하게 오고 가는 학부모들이 많이 왔다.

거기서 하나 기억나는 게 있는데 한남동에 있는 꽤 유명한 5 성급 호텔에서 아이 생일날 풀 파티(pool party)를 한 학부모도 있었다. 거기에 나는 영어샘으로 함께 했는데 주제를 모르고 예쁘게 옷을 입고 가방을 갖고 간 걸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픽~ 난다. 그 엄마가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철없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영어를 담당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샘들(거기는 영어샘들은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았고 해외에서 오래 산 분들이었다)과 플랜을 하나 짰는데, 원래 없던 문화체험을 아이들에게 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게 핼러윈 파티였다.

말이 핼러윈 파티지 아이들이 다양한 옷을 입고 와서 샘이 준비한 사탕을 받고 영어로 몇 마디 하는 걸 우리는 문화체험이라고 꽤 거창한 타이틀을 걸었다.

아이들은 꽤 멋지게 입고 왔다. 해리포터 차림에 자루걸레(mop)를 가져온 아이도 있고 공주부터 왕자까지 정말 다양한 차림의 아이들이 있었다. 큰 아이는 공주 차림으로 가서 엄마한테 사탕을 받으니 그렇게 좋은지 입이 귀에 걸린 사진도 있다.

만일 큰 아이가 회사 일로 바쁘지 않았고 막내가 입시 준비로 바쁘지 않았고, 내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나는 아이들과 이태원에 핼러윈의 여러 길거리 풍경을 보며 한참 즐겁게 웃다가 왔을 것 같다.

만일 큰 아이가 친한 친구들이 여기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도 이태원에 가지 않았을까 싶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어머니가 나를 찾으러 한참 삐삐를 한 걸 보면 많은 걱정을 했을 것 같다.

어른들의 안일한 반응과 대응, 통제를 해야 할 때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이건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렇다.

꼭 내 큰 아이 또래 아이들이 많은 일들을 겪는다. 세월호 참사에도 그 긴 영정사진들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파서 아이들과 함께 많은 곳을 다녔다. 이번에는 막내가 시청에 청소년 의회 활동을 해서 그 앞에 있던 국화를 막내와 함께 가지고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인사만 하고 온 게 기억난다.

어떻게 그 유족들에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줄 수 있는 말도 없고 그리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해외에서는 그리 관심을 갖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한국 언론들은.. 언론이 많이 깨어 있어야 좋은 사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은 생존자들도 참 많이 힘들구나.. 싶어서 글을 읽으며 휴지를 들고 고인 눈물을 훔쳤다.. 저렇게나 많이 아플 수 있구나.. 그래도 주변에 좋은 분들이, 그리고 도움을 주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생존한 분들은 끝까지 생존해서 잘 살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산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마음이 아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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