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기 좋아하고 중요한 날 어머니가 조금만 주는 용돈을 모아서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를 하고 가야 직성이 풀리던 내가.
집과 가까운 압구정에 가면 잡지에 사진이 찍히던 나는 아이를 내 삶보다 먼저 뒀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니까.
막내를 낳고는 연세대학교가 팔자에 없었는데 남편 때문에 쇼크를 먹고 그 학교 문턱을 넘어버렸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뭔가 되어 보려고 노력을 하다가 몸이 약한 막내를 사립초에 보내 놓고는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나는 연구가 진행 중에 교수님께 아무 말도 못 하고 휴학을 해버렸다.
(아참, 조기영어교육학과 나를 뽑아주신 교수님께 논문 지도를 받으려는 생각을 안 한 이유는, 내 꿈 때문이다. 나는 다른 조영과를 만드신 교수님을 찾아가서 이 학과를 만든 이유를 물어보고 지도를 받으려 한 건 새벽예배 후 교수님이 내 꿈에 나와서다. 그런 객기와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어지간히 사람 만나는 거 귀찮아하고 나대는 것도 잘못하고 안 좋아한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선교사로 갈 계획도 없던 내가 뻘떡 일어나서 서원을 한 그날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며 코에서 방귀가 나온다.
왜냐하면 팔자에 없던 공부를, 공부를 어지간히 싫어하던 내가 엄마로 교사로 가방 끈이 길어졌으니 기가 막혀서 콧방귀가 나올 것만 같다.
내 상황이 얼마나 속상한지 교회에 가면 눈물이 났다. 어린 막내는 질질 짜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그래서 두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플러스 다른 하나가 덧붙어서 내 커리어는 제대로 아이들 둘을 낳고 끊겨버렸다.
이 녀석 둘을 한국 땅에서 나처럼 되지 않게 키우려 팔자에 없는 보육교사부터 공부를 시작으로 나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조기영어교육학 석사를 받았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며 콧방귀가 난다. 나도 기가 막힌가 보다.
내가 왜 글을 쓰려 하는가?
사실 쓰기 싫다. 그렇다고 정보를 주는 수많은 책을 쓰느니 그냥 안 쓰고 싶다. 뭣하러 그런 글을 쓰려 하나?
왜? (자문자답 중)
많지 않은가! 좋은 거 죄다 짜깁기해서 쓰면 될 책을 뭣하러? 내가 쓰는가. 팔 아프게.
여튼 하나님은 나에게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꽤 많은 축복을 주신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네가 나와 한 그 하늘에 한 약속을 지켜라. 이렇게 말하고 계신 거 같아서 나는 다시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 책을 읽으러 가보려 한다.
음.
자랑. 내 성질과 많이 다르고 또 아이들을 키우며 자랑을 한 적이 없어서 사뭇 어렵다.
물론 엄마들과 어울려 다닌 적도 없고 (사실 그런 걸 되게 싫어한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거.)
엄마들이 궁금한 것도 관심도 없고 그렇다.
그래서 죽기 전에 글을 쓰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환경이 이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에게 좀 미안하고 마음이 아플 거 같다.
무엇보다 내가 하늘에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 같아서 하늘에 가서 (죽은 후 말이다)
"네가 뭐 하다 왔느냐? 나와 한 약속을 지켜야지? 까먹었느냐?"라고 되물을 것만 같다.
그래 함 해보자.
재능은 뭐 뇌가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직 재능이 없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해보면 되지. 뭐. 안되면 그때 내 머리를 쥐어짜고 '너는 재능이 없었던 거야. 그래도 인생에 한번 그런 뻘짓을 해볼 만은 하지 않니?'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려나 그냥 쾍 죽고 싶어 지려나. 거기까지는 가봐야 어떤 마음이 들지 좀 알지 싶다.
그래서 좀 릴스로 제대로 자랑을 좀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자랑을 보고는 또 떠나겠지만.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 나도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걸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언팔로잉을 한다.
왜? 부럽지는 않은데 그냥 보기 싫으니까.
여튼 난 그냥 함 해보려고 한다. 미루던 이 책을 오늘은 좀 잘 읽어 보련다.
아이들 뒤치닥 거리는 이제 그만.
큰 아이가 막내 잘 챙기겠지. 이제는 좀 지친다. 이만하면 엄마노릇 열심히 한 거 같다.
아침에 엄마 사라졌다고 놀라지 말고 연락도 삼가하고 오늘 하루를 잘 보내거라. 너희들이 소중하지만 이 엄마는 현타가 좀 왔구나. 옷정리 잘하고 캐리어 정리 잘해놔라. 안 그럼 꿀밤 한 대 꾹 누르고 싶어 질지 모른다.
덧, 사실 오늘 아이들과 엄마의 상태와 바라는 바를 열심히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역시 내가 생각하던 대로다. 역시 그러하다.
글쓰기 상을 많이 받았던 아이들도 내가 쓰는 책은 도와줄 수가 없다는 그 사실을 나는 알아 버렸고 나는 카페에서 책들을 읽는다. 책 읽기를 즐기는 나의 모습을 몇 개월 만에 본 큰 아이는 어색해했다. 음.. 나는 책 읽기도 글쓰기도 초보자다. 역시 그러하다. 인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