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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Jan 17. 2021

어느 멋진 일요일(2)

피오나의 단편소설

일요일의 공항은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착 로비는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기쁨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외국으로 출장 갔다오는 남편 혹은 아버지, 관광을 다녀오는 부모님, 혹은 사랑하는 연인....

다른 곳보다 공항에서 만남은 설레임을 클 것이다.

먼 곳을 다녀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곳이기에...


나는 브리스번에서 출발한 KAL기의 도착 시간이 10시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출구가 D라는 것도...


서진은 멜번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는 직항이 없어서 브리스번까지 와서 KAL기를 탄다고 했었다.

이제 막 도착을 했을 테고, 입국 수속 마치고 세관을 통과하려면 한 30분 정도가 더 걸릴 것이다.


공항은 늘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이다.

출국 로비에서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눈물 어린 이별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도착 로비의 기다림이 오랜 기다림이듯, 출국 로비도 긴 이별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내는 곳이리라...

출발 로비에서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착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멜번의 공항 출발 로비에서였다.

"잘 가고, 몸 건강하고...."

서진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시작했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어깨에 팔을 올려 안고 말았다.


"우리...이제 못보는 거지?"

나는 울먹거리며 물었다.

어제 밤부터 서진과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도저히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이별도 어느 날 갑자기라면 감당하기 쉬울 것 같았다.

아니면 상대에 대한 마음의 식어 버려 이별의 절차만 남겨둔 거라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내가 멜번을 떠날 때까지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귀국 날짜를 결정 하고나서부터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카운트 다운 하는 사람처럼 공포스럽게 하루 하루가 흘러감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아침은 서로 제대로 대화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짐을 챙기고 있는데 서진은 내가 빠트린 것이 없는지 방을 둘러 보며 이것저것 챙겨주면서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서진이 벼룩 시장에서 사주었던 양초 두개를 챙겼다.

물에 뜨고 향기가 나는 것이라 물 컵에 담아두었던 것이라 물을 버리고 휴지로 조심스레 양초를 닦고 있었다.

그 양초를 받아 책상 위에 올려둘 때 영원히 그곳에, 서진이 내 곁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있기를 바랬었다.

나는 그 양초가 아까워서 한번도 불을 붙여보지 않았다.


이제 서진은 남겨두고 양초만 갖고 가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진과 함께 있을 때 불을 켜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랬다면 나는 양초를 가져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서진과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를 만나고 그와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는 것일까...


"미안하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그것 뿐이네..."

서진은 내가 양초를 챙기는 것을 보며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내겐 소중한 거야. 평생 간직할 거야."

나는 서진이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을 들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때는 진심이었으나 결국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살 집으로 짐을 챙기면서 나는 그 양초를 가져올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 양초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내가 서진에게 마지막으로 주었던 것은  무엇일까?

공항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샀던 작은 코알라 인형이었을 것이다. 'Melbourne'이라고 쓰여진...


"영원히 기억해달라고 말하지는 않을게. 다만 어디서라도 멜번을 듣게 되면 날 기억해줘."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면 그 얘기는 잔인한 얘기가 되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내가 떠난 후 지금까지 서진은 멜번에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떠난 도시에서 서진은 어떻게 살았을까....


27살에 만난 서진은 23살이었고 이제 서진은 그 때 내 나이를 넘어 28살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유리문을 열심히 쳐다 보고 있었다.

5년만에 만나는 서진의 모습을 찾느라 분주하게 여러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 지금이 아니라 그 때의 나라면 종이에

'이서진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익살스럽게 써서 들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다. 일요일에 남편과 아이를 두고 도망치듯 나온 게 아니라 사랑이 계속된 연인을 5년만에 만나는 것이라면 종이에 그렇게 적는 것은 물론 꽃다발을 한아름 사서 마치 국가 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하는 것처럼 요란스럽게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서진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정연아.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다른가보다..."

서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사랑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가는 길이 다른가보다....'라는 말이 더 크게 오래 여운을 남겼다.


언젠가 서진이 말했던 것처럼 40년 후의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달나라 여행을 함께 떠날 수 없다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출발문쪽으로 향하며 몇번이고 뒤를 돌아 서진을 보았다. 서진은 더 이상 올 수 없는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서진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마지막 호출입니다. 브리스번으로 가는 승객들은 어서 수속을 마쳐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결국 서진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서진은 문이 닫히고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무엇을 했을까....

나는 비행기에 오르며 비행기가 이륙하는 동안 브리스번에 도착하고 다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며 계속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닦아내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해 마중 나온 지금은 남편이 된 약혼자를 만났을 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남편은 자신이 반가워서 울고 있는지 알았겠지만 나는 서진과의 이별 때문에 울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쯤 문이 열리고 닫혔을까....

카트에 실린 커다란 가방에 오래된 '코알라 인형'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서진의 짐이 아닐까 생각하며 카트를 밀고 나오는 사람을 보았는데 역시 서진이었다.

서진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여러 곳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이서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서진을 불렀다.


https://youtu.be/9Hf1t_BXGfk


https://brunch.co.kr/@jinnyim/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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