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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Jan 17. 2021

어느 멋진 일요일(3)

피오나의 단편소설

서진은 금방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내 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이야."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서진을 기다리며 서진과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하려고 했던 말이 백단어쯤 되는 것 같은데 막상 만나고보니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잘 지냈어?"

다시 서진은 그렇게 물었다.


아마도 내가 기대한 재회는 조금 더 과장된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가 포옹을 하며 키스를 하며 헤어졌던 5년 전처럼 감격스럽게 재회를 하리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았다.


서진의 태도가 지금 우리는 형식적인 인사를 하는 사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서진을 만나자고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판단이 서지 않았다.

옛애인과 단순한 재회....?


그러기엔 나는 많은 것을 희생하고 와 있는 것이다.

남편과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고 아들마저도 떼어놓고 왔다.


무엇을 위해서 였을까?

단지 서진의 얼굴을 한번 더 보기 위해서?

갑자기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서진은 여전히 내 기억속과 같은 모습이었다.

4살이나 많은 나에겐 이미 지나온 청춘이지만, 서진은 그 청춘 속에 살고 있는 멋있는 청년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듯했다.


이제 추억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멜번에서 서진과 있었던 일들이 한국에서 다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착각마저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먹고 싶은 거 없어? 일단 공항에서 나가서 뭐 좀 먹을까? 나 차 가지고 왔어."

나는 5년전처럼 자연스러워지고 싶었다.


멜번에서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나는 서진의 학교 앞에서 서진을 기다리다가 학생들과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다가가서 그렇게 물었다.


'우리 뭐 먹으러 갈까?'

그때 서진의 대답은 뻔했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거라곤, 맥도날드, KFC, 헝그리잭......

가난한 유학생인 서진과 여행 기간을 억지로 늘리고 있는 내가 갈 수 있는 음식점이라면 그 정도 뿐이었으니까...


"KFC"

서진은 5년전처럼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서진의 대답에 웃고 말았다. 서진도 기억하고 있다니...


"그땐 너한테 치킨 실컷 사주는 게 소원이었는데...너 떠난 다음 날 한국에서 용돈이 왔어. 혼자 KFC를 갔는데...우리가 치킨 나누어 먹던 생각이 났어...."


서진은 내가 떠난 후의 일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불꽃놀이를 했어. 멜번 축제가 있었거든....혼자 불꽃놀이를 바라보며....맥주를 마시며...네 생각을 했지..."


누군가와 이별한 후에도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잔인한 일은 없다.

내가 서진과 헤어진 후에 그리워하며 세월을 지내왔던 것처럼 서진도 그랬던 것 같았다.


서진이 말한 불꽃놀이를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고 우리는 세인트 킬다 비치에 함께 갔었다.

바다에서 일광욕을 마음 껏 즐기자고 같은 걸로 비치 타올을 사고 물병도 사고 책도 두어권 들고 모래 사장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잠이 오면 나란히 누워 잠이 들기도 했다.

햇살이 따갑다는 생각이 들어 서로의 몸에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기도 했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다가 해질 무렵이 되었고 나는 서진에게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나...15일에 한국 가....."

나는 귀국 날짜 일주일을 남겨 놓고 서진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이미 귀국 날짜를 한 달을 넘게 지나고 있었지만 이젠 결혼식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아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응."

서진은 짧게 대답했다.


"미안해."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어깨에 기댔다.

정말 서진에게 미안하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의 고통을 서진에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약혼자가 있는 여자가 혼자 여행을 간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남자가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반했다'라든가 '좋아한다'라는 고백 따위는 무시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결혼 같은 것은 무시하고 계속 이곳에 서진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었을지도....


"그거 아니? 네 말 듣기 전까지만 해도 멜번 축제가 있다는 포스터 보면서 너랑 같이 볼 수 있겠구나...생각했는데..."


5년전 내 생일인 그 날은 더 이상 서진과 내가 함께 할 수 없음을 서로가 확인하는 날이었다.


"서진아...저기 봐봐...벼룩시장 하나봐...우리 구경가자...응?"


나는 수영복만 입고 있다가 주섬주섬 먼저 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해변과 도로로 이어지는 사이에 벼룩시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해 보였다.


'서진....나 너랑 얼마남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거 너무 많아....'


서진도 방금까지의 우울한 얼굴을 지우고 나를 따라 일어났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벼룩시장을 구경했다.

서진은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정연아. 이거 물에 뜨고 향기 나는 초래. 생일 선물로 사줄게..."


나는 서진에게서 선물을 받아 들었지만, 막상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촛불처럼 불꽃이 타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초는 생일선물이면서 이별 선물이 되었던 것이다.


"여긴 한국이야...이제 KFC 안 먹어도 돼..."

서진이 'KFC'라는 대답에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어디든 가자."

서진은 나를 따라 차에 탔다.

이렇게 둘이 드라이브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5년 전엔 우리가 함께 기차를 탔던 적은 있었다. 월리엄스톤이라는 작은 마을을 여행할 때....  

https://youtu.be/SW0stgZmpFg


https://brunch.co.kr/@jinnyim/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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