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도슨트 임리나 Jan 17. 2021

어느 멋진 일요일(1)

피오나의 단편 소설

"난 말야. 그런 꿈을 꿔."


"어떤?"


"아주 늙은 사랑 말야."


"늙은 사랑?"


"응. 내가 70살이 되면 달나라 여행이 가능하겠지? 지금도 갈 수는 있다고 하니까."


"그렇겠지."


"그때 누가 옆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그 사람과 달나라 여행을 다녀올거야."


"마지막 여행이라....하긴 나도 때론 내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보곤 하지.

가장 웃긴 생각은 인생의 마지막 섹스가 언제일까 생각해보곤 해.

죽기 직전이면 가장 좋겠다...라고 생각하지."


"그렇다면 난 내 인생의 마지막 섹스를 우주 비행선 안에서 하고 싶어.

아님 달나라 호텔도 좋겠지....”


"달나라 여행이라..."


"너 그거 기억하니? 우리가 처음 키스를 하던 멜번의 거리에서  어느 레스토랑에서 나오던 음악...

그 노래 가사가 뭔지 아니? Fly me to the moon...나를 달나라로 데려가달라는 뜻인데...

그게 다른 말로 하면 I love you래....그 때 생각했어.

언젠가 너랑 달나라로 가고 싶다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텔레비전 화장품 광고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Fly to the moon' 때문에

나는 서진이 한 말을 기억해내고 말았다.

그 후부터였다. 그 노래가 마법을 건 것처럼...매일같이

그와 함께 했던 3개월의 시간들이, 쉽게 잊으리라 생각했던 그 기억들이

밤마다 꿈에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피어났다.


그땐 '여행에서 만난 짧은 사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약혼자가 있던 나에게 잠시 찾아온 유혹이었을 뿐이라고....

더구나 4살의 연하인 그 남자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도 못했다.


사랑은 늘 불명확하다.

사랑을 할 때조차 스스로 사랑이라고 단정짓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무심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그게 '사랑'이었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아무런 계획없이 일단 서진을 찾기로 했다.

서진의 학교와 학번으로 인터넷에서 찾아내 서진에게 메일을 보냈다.

서진의 회신이 도착한 것을 확인했을 때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는 것 같아 멍하니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었다.

멜번에 있던 그가 일주일 후면 한국에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서진이 그 노래에 마법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에 나와 서진을 만나게 하려고....

결심했다.

서진과 달나라 여행을 가지는 못하겠지만, 꼭 한번은 만나야겠다고.

그래서 서진이 오는 날....공항으로 간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이다.

보통 때라면 아이의 찡얼거림에 졸리운 눈을 억지로 뜨고는

옆에 깊은 잠에 빠져 누워 있는 남편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거실로 나와 아이를 달래고 우유라도 챙겨주며

'언제나 나에게 일요일다운 일요일이 올까...'라고 짧은 한숨을 쉬며

창밖으로 보이는 앞동의 아파트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느즈막히 눈을 뜬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

남편은 일주일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몽롱한 표정으로 밥과 국을 몇 번 번갈아 떠 먹다가 거실의 텔레비전 앞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리고는 칭얼대는 아이를 잠시 안아주다가 다시 잠들었다.


나는 그가 아이를 잠시 안아주는 사이 빨래를 했다.

남편이 잠들어 아이가 울면 다시 간식거리를 주고는 남편이 틀어놓고 잠든 텔레비전 앞에서

리모콘을 만지작 거리며 채널을 돌려보며 아이를 재우곤 했다.


그러다 초저녁이 되면 남편에게 마트에 같이 가달라고 했다.

남편이 없는 사이엔 차도 없어서 혼자 아이를 안고 장을 보고 짐을 들고 올 수 없어서였다.

남편은 마지못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따라나섰다.

그리고는 휴일에 차가 많이 막힌다는 몇 마디를 한 후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를 따라 마트 안으로 들어와서는 내가 무엇을 사는지 멍한 눈길로 바라보다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면 하품을 하며 차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내가 만들어 주는 저녁을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하나의 주말 프로그램이 끝날 때 맞춰 나는 저녁 식사를 차렸다.

저녁 식사 후에 두 세개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남편은 컴퓨터를 키고 잠시 무언가를 한 후에

'아. 피곤해'라고 말하며 침대로 돌아갔다.


나는 거실에서 아이를 재우며 깜박 졸다가 책이라도 읽으려고 작은 방에 갔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놀라 다시 나와 설잠에서 깬 아이를 재웠다.


아주 무미건조한 일요일이 내 인생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나...오늘만은 달랐다.

아이가 깨기도 전에 먼저 일어났다.

아이방으로 가서 아이의 기저귀와 옷 몇가지 그리고 작은 장난감들을 챙겼다.

흥얼흥얼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바삐 움직였다.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다 줄 작정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내가 예측한 시간에 눈을 떠 쉽게 우유를 먹일 수 있었다.


"연우야. 오늘 할머니한테 가는 거야...알지? 이모랑 삼촌이랑 맛있는 거 먹고 재미있게 놀아...."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은 했었지만, 이모와 삼촌이란 말이 꽤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평소에도 이렇게 말을 잘들었다면....'


아이들은 왜 엄마에게 일요일을 만들어주지 않는 걸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조용하게 잠도 많이 자고 엄마 말고 다른 사람과 즐겁게 놀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짧은 휴식이라도 준다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텐데....


다행히 남편은 나의 소란스러움에도 끄떡없이 잠들어 있었다.

그가 늦게라도 눈을 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전기 밥통에 밥을 가득 해두고

또 반찬은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내 먹으라는 메모도 남겨 두었다.

그러나 그것도 귀찮다면 짜장면이라고 시켜 먹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옷을 입히고 요구르트를 하나 손에 들려 연우를 데리고 현관문을 나서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홉시를 약간 지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연우를 데려다 주고 나면 서진이 도착한다는 10시반에는 공항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https://youtu.be/ZEcqHA7dbwM

https://brunch.co.kr/@jinnyim/130



        

작가의 이전글 달콤한 작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