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도슨트 임리나 Aug 15. 2023

내 책이 제목만 읽힐 확률은?

제목부터 써라 4

사람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자신의 과거는 덮인 책처럼 닫혀 있고,
친구들은 단지 제목만 읽을 뿐이다.
-버지니아 울프


책을 서너 권 출간했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책을 일단 구매한 후, 혹은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 얼마나 '안(혹은 못)'읽는지 몰랐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집으면 웬만해서는 끝까지 읽는 성실한 독자이다. 쭉 그렇게 독서를 해왔기에 모든 사람들은 책을 읽기로 결심하면 대부분은 완독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물정을 몰랐던 것처럼 책상물정을 몰랐던 것 같다. 이런 나의 순진한 추측이 깨진 것은 유명 시인의 북토크에 참여했을 때였다.


정말 유명한 시인이었고, 나도 꼭 한번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찾아갔었다. 그리고 거의 10년 만에 나온 신작이라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 시집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작가의 북토크니까 당연히 책을 읽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두꺼운 시집을 밤을 새우며 꾸역꾸역 읽고 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감사하게도 나의 독자들은 책을 완독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밑줄을 그으며 두세 번씩 읽는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몇 페이지의 몇 째 줄의 의미에 대해서도 묻기도 했다. 심지어 나의 독자들은 책에 있는 내용을 질문하기라도 하면 '책에 있다'라고 나 대신 답을 해주기도 했다.

그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다룬 주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초창기 책들은 '남녀관계'에 대한 책들이었는데 그 책들은 도서관에 가봐도 책이 닳도록 읽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내 책 두 권외에 다른 책들도 사람들이 독서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나였기에 다른 작가분의 북토크에 참여할 때 당연히 책을 읽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토크를 시작한 그 시인은 그동안의 경험과 내공으로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

제 책을 읽고 오신 분?

 나는 부끄러워서 손을 들지 않았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딱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 시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박수 쳐줍시다. 세상에 제 책을 읽으셨다니요!!!"

이렇게 단 한명의 진정한(?) 독자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관록의 시인이 책을 읽은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자연스럽게 칭찬하는 분위기를 연출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 시집은 그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출판업계에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가장 많이 안 읽힌 책이라는 말도 있다. 판매와 독서는 별개라는 얘기다.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책의 완독률은 통계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1년 대한민국 대표 서점 예스24의 무제한 전자책 구독 플랫폼 북클럽에서 완독률을 조사했는데 16.4%였다고 한다. 전자책에서 자동 추적한 결과이니 만큼 책을 안 읽고 읽었다고 대답할 수 없는 정직한 통계라고 볼 수 있다.


책상물정을 알게 된 나는 이 정도로 이제 놀랍지 않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이다.

나는 요즘 책 읽기나 글쓰기에 대한 강의, 독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소규모 그룹에서 얼마나 책을 읽는지 실제로 체감하고 있다. 솔직하게 '다는 못 읽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그것도 읽은 거라고 칭찬을 한다. 그때 그 시인에게 배운 이후로는.


이렇듯 대부분의 책은 제목만 읽힐 확률이 높다. 아니 제목만 읽혀도 성공이다.

그렇다고 제목만 열심히 고민하고 책의 본문을 대충 쓰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작가로서 제목을 등한시 말자는 얘기다.  내가 열심히 쓴 내용이 읽힐 낮은 확률 속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 글을 읽어줄 독자를 만나는 접점은 제목'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얘기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내 책을 제목만 봤더라도 정말 감사한 일이고, 제목에 끌려 1/10만 읽어봤다고 한다면 완독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초보 작가가 아니면 자신의 책이 잘 팔린다고 해도 다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북토크에 참여해 보면 작가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 준비해온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Q&A시간에 책을 읽은 독자에게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한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 제목을 '내 책이 제목만 읽힐 확률은?'이라고 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론에 이르고 보니 '제목만 읽혀도 성공이다.'가 더 정확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처음에 제목을 정하고 쓰지 않았다면 이런 결론에 이를 수 있었을까 싶다. 내가 글을 '제목'부터 쓰는 이유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제목을 수정하지 않기로 한다.


이전 15화 문장 제목의 유형들: 평서문, 명령문, 의문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