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세까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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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도서관장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에게 책을 읽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할 때쯤 접한 말이 '책육아'였다.
처음에는 '책육아'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정도라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책육아'에 대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디.
'지금 힘들어도 책을 많이 읽어주면 똑똑하게 자란다'라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책을 읽어주는 게 뭐가 힘들단 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고
'좋은 대학을 가는 아이들의 바탕에는 독서가 있었다'라는 입시에도 유리하다 얘기를 듣게 되면 독서가 결국 대학을 가기 위한 건가? 싶었고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서 유리하다'라는 이야기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엄마들이 솔깃할 이야기기도 했다.
책이란 것도 사람마다 가지는 의미나 환상이 달라서 틀린 말은 아니고 책을 읽으면 나쁜 건 아니니 그러려니 하면서 나는 '책육아'에 대해서도 별 다른 생각을 못하고 내가 책을 읽는 것과 동일선상에서 생각했다.
하루에 한 권 읽을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열 권을 읽을 수도 있고 어떤 날은 한 권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내가 생각한 '책육아'는 보통 엄마들이 하고 있는 지금 시대의 '책육아'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건 단순한 '책육아'가 아니라 단순한 독서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점에 가서 혹은 인터넷 서점에서 한 두권 아이의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전집을 구매하는 게 '책육아'의 시작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전집 영업사원들을 만나 그곳에서 대량 구매를 하거나 또 아이를 낳고 집에 있는 엄마들을 방문해서 출판사 영업사원의 홍보를 듣고는 결혼 예물로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아 책을 샀다는 엄마도 있었다.
그 책들은 유명한 몇몇 권의 책이 아니라 0살부터 읽어야 할 책들의 리스트가 있었다.
각 연령 발달에 따라 읽어야 할 책들이 있었고 심지어 출판사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수학동화, 과학동화도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책육아 강연'이란 것도 있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고 어떤 방법으로 읽어주는지에 대한 책이었는데
책을 읽어주면 아이에게 좋겠다는 건 알겠는데 정작 읽어줘야 할 '책'의 공급에 대해서는 주로 '구매'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최소 200만원의 책을 사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깜짝 놀랐다.
그래도 나를 머리를 써본다고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돈이 없어서 남들 200만원어치 책을 살 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다니나 싶어서 청승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엄마가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아 책을 샀던 그 엄마의 딸은 지금 여자 축구 선수가 되어 있으니 그 때 그 구매가 잘한 것인지는 다소 애매하다. ㅎㅎ
'책육아'는 '마케팅'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단행본을 파는 출판사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책을 대량으로 팔 수 있는 전집 판매를 하는 출판사는 꽤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전집은 어른에게 팔기는 어렵고 아이들에게 교육의 목적으로 팔기 쉬운 책이기도 하다.
'책육아' 강연이나 '독서'에 관한 책은 책을 읽으면 좋다는 얘기나 어떻게 책을 읽어주라는 방법 등을 알려주지만 정작 중요한 책구매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보통 전집 하나에 10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하는 경우에는 쉽게 구매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고전집을 판매하고 또 전집을 대여하는 사이트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알기까지도 시간이 필요했다.
도대체 이런 전집들을 쉽게 살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엄마들은 '책육아'를 하겠다고 도서관에서 모든 가족의 대출증을 만들어 몇 십권씩 대출을 하거나 중고서점을 해매거나 새로운 책은 할부 구매도 하는 치열한 전쟁터에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하는 것만큼 여유 시간에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한가롭게 책을 읽는 것 같은 여유는 없다. 기본적으로 많이 읽혀야 하니 하루에 몇 권 읽었나 권수를 세가며 읽히기도 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독후활동도 해야 하고 연계독서도 해야 한다.
다른 아이보다 조금 더 단계를 빨리 넘어 글밥이 많고 두꺼운 책을 읽을 수록 똑똑한 아이로 보이니 책 읽는 것을 쉴 수도 없다.
물론 아이가 책을 많이 읽으면 좋고 부모로서 즐겁지만 그 만큼의 책을 조달해 주려면 위에서 열거한 방법들을 매일 반복하고 있어야 한다.
이쯤 되면 책육아는 더 이상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작정을 하고 달려들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실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 좋다'는 다소 우아하고 고고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책 읽기에 도전하다가 구매 부담과 또 그 구매한 만큼 읽혀야하는 수고를 감당하지 못하고 금방 포기하게 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책을 대체할 영상이 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대부분 짧고 권수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권에 5천원만 잡는다고 해도 하루에 10권을 읽으면 5만원이 된다.
그러나 영상은 손쉽게 볼 수 있도 장시간 봐도 그리 돈이 들지 않고 또 부모도 귀찮게 안하니 경제적이고 편한다.
단순히 부모가 생각이 없어서 영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영상을 안보고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경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니 아주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책과 가까워지기는 힘들다.
아이에게 책을 읽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한다. 집에 책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려면 그 환경을 조성해주는 엄마는 어디서 책을 공급해야 하는 걸까?
왜 그 이야기는 아무도 안하면서 거실을 서재로 만들라 하고, 또 책이 많은 집이 부럽다고 얘기하는 걸까.
멋진 책을 소개해주고 이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똑똑해진다고 말해주기 전에 책을 구매하려면 얼마나 들고 중고서점이 어떤 게 있고 심지어 대여도 가능하다는 점을 같이 알려주면 안되는 걸까?
내가 '책육아'를 들으며 가장 감동을 받은 분은 책육아 자체의 강연보다 소개하는 책 중에 도서관 라벨이 붙은 책이 있어서였다.
아 저 분도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는구나.
모든 책을 척척 사는 분이 아니구나.
(물론 그 분은 책을 많이 사는 분인 건 맞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도서관책인지 구매한 책인지 가리지 않고 소개해줬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책육아'에 대해 마음이 편해졌다. 아니 편해지기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책육아를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책육아를 열심히 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다행히 아이는 책에 흥미를 갖고 있고 엄마와 책 읽는 시간도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그림책에 대해서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계속 책을 즐겨 읽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노력하기로 했고 방법에 대해선 여러 가지 고민해 보기로 했는데 우연찮게 아파트 안에 있는 '작은도서관장'을 하게 되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해서 사서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도 한 몫했지만, 아이 엄마로서 도서관을 아이에게 하나의 책 읽는 환경으로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일을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아이에게 꾸준히 책을 읽히려 오는 엄마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또 우리 아이만이 아니라 내 이웃의 아이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구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는 환경 중에 집에 책을 많이 구비해놓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도서관을 잘 활용하는 법은 '책육아'의 필수가 아닐까.
다소 공공도서관이 멀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가까운 작은도서관은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의 명언이 떠오른다.
아무리 도서관에 책이 없다 해도 우리 집보다 많다
엄마라는 게 어쩔 수 없단 생각이 드는 게 내 일이지만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꼭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동인 아이는 집만이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공간도 얻고 도서관의 친구 언니 오빠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도서관장 엄마를 둔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