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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Mar 18. 2024

나혜석을 화가가 아닌 작가로 보는 책

작가들 중에는 살아생전보다 사후에 더 명성을 얻는 경우가 꽤 많다.

그 유명한 고흐도 살아있을 때는 작품을 딱 한 점 팔았다고 한다.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은 평생 어떤 명성도 없이 죽을 때도 지방 부고란에 한 줄 이름이 올랐을 뿐이라고 한다.


또 다른 경우는 한 때 유명했으나 점점 추락해서 말년에는 비참한 인생을 보내다 사후에 화려하게 부활한 작가들도 있다.

에드가 앨런 포는 언제 죽었는지 모르게 길에서 죽어서 발견되었고, <<위대한 개츠비>>를 썼던 스콧 피츠제럴드는 첫 번째 작품인 <<낙원의 이편>>이 대 성공하는 바람에 정말 위대한 개츠비처럼 화려하게 살았으나 후속작부터는 초판도 제대로 팔리지 않아 점차 추락의 일보를 걷다 할리우드에서 생계를 위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각색을 했으나 영화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예술가나 작가들을 예를 들어서 그렇지 보통 사람들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노인이 되어 빈곤층이 급격히 늘어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렇고, 가장 많은 자살률이 노인 자살률이다.

인생은 우상향직선이 아니라 포물선처럼 절정에서 점차 하향으로 향해가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인생곡선이다.


그러니 작가라고 노후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또 명성을 꾸준히 이어가지 않는 한 인생의 말년에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충을 겪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런데 여기다 과거의 화려한 명성, 작가라는 자존심까지 합쳐진다면 말년의 고통이 더 배가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의 말년 또한 행려병자로 52세에 죽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기구한 여성의 운명으로만 바라봤다.

이혼 후, 재기하고자 했던 활동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절로 요양원으로 돌아다니다 길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거기다 나혜석은 한국의 최초 페미니스트라는 별칭까지 있으니 더욱더 여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의 말년으로만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나혜석을 화가가 아닌 작가로 다시 바라보는 관점의 책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읽으며 항상 인용되던 짧은 문구가 아닌 그녀가 썼던 소설, 에세이, 잡지 기고문 등을 읽으며 단순히 그녀가 개화기 신여성의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 단순한 해석을 탈피할 수 있었다.


http://aladin.kr/p/D1AlI

그녀는 스무 살도 전에 신문 잡지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이었다. 그리고 결혼도 화제가 되었고 더구나 세계 여행까지 다녀왔다. 그런데 지금도 세계 여행을 한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 당시라면 더욱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만이 아니라 나혜석 아들이 쓴 책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를 읽었을 때도 생각보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놀랐다.

딸을 미국 유학 보낼 때도 돈을 빌려 겨우 보냈고, 아들은 일본 유학도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http://aladin.kr/p/KFIbP

나혜석의 외도가 문제가 되어 이혼을 했지만, 집안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나혜석이 외도 상대인 최린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부터 신여성, 페미니스트 등의 프레임을 벗고 읽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신여성이나 페미니스트라는 것도 후대에 붙여진 꼬리표일 뿐 당시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본다면 부부 사이에 경제적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이혼 후, 추락의 길로 인생의 말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꼭 나혜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도 마찬가지이지 않았을까.

남편인 김우영도 다시 재기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예술가이기에 작가이기에 비참한 말로가 마치 극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건 보통 사람들도 겪는 인생의 마지막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생로병사로 요약한다면 그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사후에 그것도 세월이 흘러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나혜석의 글을 읽으며 나는 놀랐다.

그 당시 밤중에 갓난아이 우유를 먹이려면 숯불부터 피웠다고 한다.

밤중 수유를 해본 엄마들은 안다. 한 밤중에 분유를 먹이는 일이 어떤 일인지. 

지금은 전자레인지라도 있고 분유 전용 기계라도 있지만(심지어 액상분유가 있어서 바로 뚜껑만 열어 먹이면 된다.)

그 당시에 숯불부터 피웠다고 하니 그 당시 엄마들의 노동이 생생하게 전해왔다.


간혹 글을 쓸 때 집안일이나 여자가 하는 일에 대해 쓰는 것을 꺼려하거나 혹은 쓰지 말라고 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여자의 일도 당연히 쓸 수 있고, 다만 사람들이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혜석은 화가라는 직업이 있었지만 글의 소재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도 솔직한 기록들을 남겨놨다.

다만 세상에서 쉽게 인용하는 부분이 다소 자극적 일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여자들의 마음과 생활을 대변한 부분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글의 소재는 사소하거나 중요한 것이 따로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글을 쓰는 사람이 그 소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 차이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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