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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Mar 11. 2024

<소설>에서 못다한 이야기가 <청소년 소설>에 있다

슈트름 운트 드랑-독일어로 '질풍노도'라고 한다.

질풍노도란 청소년기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다.

또 괴테와 쉴러가 만든 새로운 문학 운동이기도 하다. 이성적인 문학에 반기를 들고 감성적인 문학을 완성한 작품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요즘 청소년 소설들을 읽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도 모르게 '이게 왜 청소년 소설이야? 어른도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정말 많다.

장르도 다양하다.

SF소설, 판타지, 로맨스, 추리 등등.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은 이꽃님이다.

http://aladin.kr/p/jPmV6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흡입력에 놀랐고, 누군가의 죽음 이후의 내뱉는 언어들이 생생해서 신기했고, 마지막에 반전에 뒤통수를 맞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요즘 청소년들, 혹은 우리의 이야기다 싶었다.


다음은 정말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SF소설, 최영희 작가의 '너만 모르는 엔딩'

http://aladin.kr/p/xLTnN

단편 소설집인데 한편 한편이 주옥같다.


'중2 때문에 외계인이 쳐들어 오지 못한다'는 얘기를 단편 소설로 실현했다. 그 외에도 '삼선 슬리퍼'가 지구 최후 종말의 사인이라던가 하는 재미있는 설정과 반전이 있는 스토리 전개가 뛰어나다.


http://aladin.kr/p/NydtI

순례 주택은 이름이 순례인 할머니가 나온다. 이 할머니는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라는 철학을 가진 분이다. 어렸을 때의 인연으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아온 수림이는 가족들의 오만과 과시를 고쳐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는 중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다.


나는 초중고를 아주 무난히 보낸 편이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고 또 조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이 있어서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대학까지 진학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삶의 균열이 조금씩 생겼다.

그 균열이 점차 큰 틈이 되고 나를 두 동강 낸 것은 삼십 대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들은 말이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다. 어렸을 때 지랄 맞은 애는 커서는 괜찮고, 또 그 반대로 어렸을 때 괜찮았던 애는 나중에 속 썩인다고.

그런데 이 말이 위로가 되기보다 슬픈 건, 인생의 굴곡이 당연히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이혼, 재혼, 입양, 암까지 난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가 그냥 넘긴 사춘기의 질풍노도가 뒤에 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춘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지나온 어른들, 평탄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그 인생이 삼사십 대에 흔들리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인생이란 시기와 관계없이 늘 그 시기의 문제들을 안고 산다.


사춘기를 지나 어른으로 맞이하는 인생 문제들이 더 버거워서 질풍노도라 하면서도 '사춘기'란 말은 싱싱하고 통통 튀는 발랄함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소설은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다.(개인적으로 꼭 수상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최초 이민자들의 이야기, 사진 한 장으로 하와이로 시집간 여자들의 이야기, 지금은 사춘기라 하는 그 시기에 먼 타지에서 노동과 육아를 힘겹게 견디어 낸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http://aladin.kr/p/MNR23

나에게 어떤 미래가 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사춘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저 나는 그때가 가장 좋은 때라고. 그 한 마디 해주고 싶다.

나는 그때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싶지만.

나에게 슈트름 운트 드랑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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